K형!
정상에서 서해를 바라보다 4봉을 향해 난 이정표를 보고 길을 재촉합니다.
내려가는 길인데도 만만치 않습니다.
분홍빛 꽃이 조심하라고 하면서 위로를 해 주는 것 같습니다.
개복숭아나무 같군요.
이맘때 피는 분홍빛 꽃이 비슷비슷해 매번 헷갈리기는 하지만요.
4봉을 지나갑니다.
표지석 하나씩 찾아보는 맛이 쏠쏠합니다.
바위는 있지만 이제부터는 거의 능선이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커다란 바위를 병풍 삼아 잠깐 쉬기로 합니다.
땀을 많이 흘렸으니 가져온 귤과 물로 다시 채워 주면서요.
가만히 앉아서 보니 소나무 한 그루가 근사하군요.
자세를 낮추니 비로소 보입니다.
사는 동안 너무 고개를 쳐들고 목에 힘을 주고 살았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팔봉 중에서 이제 겨우 반을 온 셈이군요.
다시 몸을 일으킵니다.
5봉을 지나갑니다.
정상 부근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중간중간 하산하는 길이 있더니만 다 흩어졌나 봅니다.
두 팀만 우리랑 오다가다 만나면서 길이 이어집니다.
너무 긴장을 풀었던 걸까요?
6봉 오르는 길에는 밧줄도 드리워져 있네요.
물론 아주 험난한 코스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생각보다 들꽃은 눈에 안 보이네요.
3월에 20도를 오르내리는 둥 기온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4월 초이니 목숨을 걸고 일찍 꽃을 피우지는 않은 모양이지요.
흰색, 보라색 제비꽃만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여기는 진달래가 이제 한창이고요.
계절이 서울보다 늦어도 한참 늦군요.
7봉을 향해 걷습니다.
설렁설렁 콧노래를 부르며 걷고 싶은 길이 나옵니다.
산길이기는 하지만 마음이 느긋해졌습니다.
7봉이 지나고 긴장이 풀린 걸 알았는지 다시 험상궂은 길이 나옵니다.
막판까지 정신을 차리라는 걸까요?
울뚝불뚝 솟은 바위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전치 4주 진단은 나오겠지요.
휴! 팔봉까지는 마음을 놓으면 안 되겠네요.
드디어 마지막 봉우리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뒤에 온 팀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습니다.
정상과 마지막 봉우리인 팔봉에서는 둘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면서 말이지요.
바로 하산길입니다.
양길리로 가는 길이라는군요.
하산길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길은 걷기 편한데 경사가 심합니다.
이쪽으로 올라오기도 쉽지는 않겠군요.
물론 대신 거리는 짧아지겠지만요.
얼마쯤 걸었을까요?
임도에 내려섰습니다.
어딘가에서 양길리 주차장 이정표가 나오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되겠지요.
임도가 만들어져서 편하기는 한데 많은 나무가 잘려 나갔군요.
임도를 만든 이유가 있겠지만 멀쩡한 나무가 잘려 쌓여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나무를 키우려면 몇 십년 걸릴텐데 말이지요.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번갈아가며 나옵니다.
갈림길에서 한쪽은 올라가는 길이기에 왼편으로 내려셨더니 거기에 이정표가 있군요.
잠깐이기는 하지만 친구는 저를 못 믿겠다면서 구시렁거립니다.
억울합니다.
전에 실수를 한 적은 있지만 이정표를 갈림길에 맞게 세워 놓아야 하는데 엉뚱한데 세워 놓아서 그런 건데 말입니다.
오르막길로 접어들자 환한 길이 펼쳐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꽃길이군요.
벚꽃이 만발한 길입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꽃나들이를 왔군요.
서산 사람들은 여기가 오기 편한 벚꽃길인지 다 아는가 봅니다.
이번 봄 동네에서 제대로 못 보고 지나간 벚꽃을 여기에서 실컷 보게 되는군요.
저절로 흥얼흥얼 노래가 나오는 길입니다.
이런 길에서는 서둘러 걷는 것이 예의가 아니지요.
흩날리는 꽃잎을 손에 받기도 하고, 꽃잎 사이로 파란 하늘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
정말 화사한 봄날입니다.
이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오늘 일정 100점 만점에 120점입니다.
기분이 좋아지네요.
오후 2시 하산을 완료했습니다.
팔봉산을 한 바퀴 도는데 2시간 40분 걸렸습니다.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가야지요.
몇 군데 식당이 문을 열기는 했는데 분위기가 썰렁합니다.
우리가 차를 세운 곳으로 가서 바로 앞 음식점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관광지 근처 음식점에서는 산채가 들어가지 않은 산채비빔밥이 가장 무난합니다.
보기에는 반찬이 모두 정갈하네요.
장아찌도 먹을 만하고요.
시장이 반찬이라고 비빔밥 한 그릇 뚝딱 해치웠습니다.
1
쓸쓸한 당신은, 배가 고프면 가까운 하늘을 비벼먹으세요. 날마다 처음 보는 세상처럼 외로운 날이면, 머리칼이 가장 푸른 바람을 잠깐 집어넣고, 깔깔 웃는 진달래도 따 넣고 벅벅 비비세요. 이 개성 있는 식당은 요즘 성업 중이라 당신의 개성은 무시해 버려요. 꼬리를 잘라버린 도마뱀의 짧은 인연도 그 상처도 아, 하늘에 올라가면 별이 되지요. 머리를 감싸거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더라도 마지막 질문처럼 허기는 찾아와요. 거울도 깊이 잠드는 밤이면 내 마음을 뚝뚝 팔다리도 뚝, 머리통도 뚝, 한 통 속에 비벼 넣어요. 자폐증의 월요일과 싱싱한 주말도 살짝 하루를 속여 넣어주세요. 압정을 밟은 듯 묵직해서 만져보면 돌아누운 한밤의 앙상한 등줄기. 저런, 저 기사 아저씨는 배고픈지 막말도 잘해. 욕도 싱겁지 않게 섞어서…… 상처도 비벼놓으면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해서 하느님도 못 알아볼 거예요. 정말 저 찬란한 아파트 불빛도 뻔한 거짓말이죠. 즐겁게 비벼드릴까요? 자동차와 당신과 즐거운 낭떠러지! 꽃피는 아침에 문득 꽃이 피었군요.
2
은하수 단지 분리수거 하는 날은 꼭 비만 오는 날. 비 오는 날 웃기는 정치인은 이쪽, 호주머니가 커다란 재벌은 저쪽 마대 자루. 아 참, 시인도 순서대로 분류해서 여기다 넣는 거 맞죠? 빈 깡통은 어디였더라…… 국물이 흘러요. 이렇게 낡은 생각도 한번 비에 젖나요. 그런데 갈수록 자루가 모자라네. 최신형 우주인이 쓰다버린 첫사랑과 그곳을 거닐던 오솔길과 새로운 농담은 버릴 데가 없어요. 이 그림은 앤디 워홀 바이러스에 심하게 감염돼 격리해야겠군요. 지식은 갈수록 다리를 절어서 돈을 주고 버려야지. 아주 오래 된 어둠은 밤에 살짝 버리면 감쪽같아. 불륜은 가져오지 마세요. 아파트 주민이 아니잖아요. 저 빗줄기 아저씨, 왜 발등을 자꾸 밟으실까. 개성도 좋지만 그렇게 급하시면, 화장장으로 해서 강물에 공짜로 띄워 드릴까요? 저런, 화단 위에 당신이 당신의 몸을 우산 없이 가끔 버리기도 하는군요. 비가 오는 날은 이쪽, 비가 오고 분리수거 하는 날은 은하수 저쪽.
최호일의 < 비빔밥과 분리수거에 관한 질문 > 전문
주차장에서 잠깐 우리가 올랐던 팔봉산을 올려다 봅니다.
삐죽삐죽 솟은 바위 봉우리들이 보입니다.
늘 그렇지만 시작할 때는 언제 오르나 싶다가도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일단 올라가면 어느 덧 정상을 밟고 내려오게 되지요.
삶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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