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얼마만인가, 禾也山 (3)

솔뫼들 2020. 6. 2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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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50분, 화야산(해발 755m)에 도착했다.

정상석이 두 개나 있다.

하나는 양평, 하나는 가평에서 세운 것이라나.

가끔 산에 가면 정상에 자기네 지자체를 알리는 표지석을 세우는데 하나의 산에 두 군데 지자체 정상석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참 쓸데없는 짓들도 많이 하네.

 

노총무는 오늘 우리가 산 세 개를 탔단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고동산에 양평 화야산, 가평 화야산이란다.

그래서 이렇게 힘이 들었나 보다 하면서 함께 웃는다.

 

 

이제 점심 먹을 자리를 찾는다.

일단 햇볕은 피해야 하니 정상 옆을 찾아보는데 경사 때문에 그리 자리가 마땅치 않다.

억지로 자리를 만들어 둘러앉는다.

새벽부터 설쳤으니 당연히 배가 고프지.

 

그런데 날벌레들이 나보다도 먼저 음식으로 날아든다.

너무 한 것 아니냐고 해 보지만 소용이 없네.

물이 많아 습한 산이다 보니 이런저런 벌레가 많다.

자연이 살아 있다는 말이니 좋은 것인데 우리는 귀찮기 그지 없구만.

동재씨는 陰氣가 강한 산이라 기운을 다 빼앗긴 느낌이라고 구시렁거린다.

에구, 어쩐대요?

 

우리 앉은 자리 옆길로 올라오는 사람들 표정이 일그러졌다.

급경사에 지칠 때가 된 것이겠지.

고동산에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온 사람들밖에 없었는데 화야산은 그보다는 산꾼이 많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일찍 출발한 셈일 것이다.

 

 오후 12시 30분, 벌레들한테 시달리기 싫어 부지런히 점심을 먹고 얼른 일어선다.

이제 삼회 1리로 내려가야 한다.

이정표를 확인하고 삼회1리 방향으로 가는데 바로 그늘진 평상이 보이네.

익숙하지 않은 곳이다 보니 좋은 자리 두고 고생했구만.

 

길 옆에 무리 지어 핀 미나리냉이 흰꽃이 청순하다.

사진 몇 장 찍고 본격적인 하산길로 접어든다.

워낙 깎아지른 산이다 보니 여기도 급경사이다.

줄을 잡고 살금살금 내려간다.

 

그렇게 얼마쯤 내려갔을까?

이번에는 삐죽삐죽 험상궂은 돌들이 기다리는 너덜이군.

만만치 않은 산이다 싶었는데 역시나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산이다.

긴장을 풀지 못 하고 걸으려니 하산하는 데에도 땀이 비질거리며 솟는다.

이래저래 오늘은 땀범벅이다.

 

지루한 것을 잊기 위해 길 옆 나무들을 본다.

다양한 나무가 있는 걸 보니 건강한 산 맞다.

이 계절에는 유독 흰 꽃들이 많다.

저건 노린재나무 꽃이군.

저건 고광나무이고.

아는 나무 몇 개 주워 섬기다 보니 너덜이 끝났다.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린다.

물소리만으로 조금 기운이 난다.

뒤에 오는 사람들은 나 보고 천천히 가자고 투덜거린다.

올라올 때는 꼴찌였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선두에 섰네.

 

 고개를 들고 본 하늘에서는 잣나무 모습이 시원스럽다.

침엽수는 대부분 어디에 있어도 쭉쭉 뻗은 모습이 보는 사람 마음을 후련하게 해 준다.

잣나무는 가평을 대표하는 나무이다.

가평의 특산물이 잣 아닌가.

지금은 잣이 나오는 계절이 아니지만 가을이면 가평 지역 산 입구에 가평에서 생산된 잣을 파는 분들이 계셨었지.

 

 피톤치드가 많이 나올 것 같아서 심호흡을 하면서 걷는데 이맘때 짝을 찾는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계절을 확인시켜 준다.

본 적은 없으면서 소리만으로 아는 새다.

검은등뻐꾸기는 별명이 아주 많은 새다.

누가 듣느냐에 따라 그 리듬 때문에 특별한 이름을 붙여준단다.

우리처럼 '홀딱 벗고'새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가장 많겠지만.

잊기 쉽지 않은 별명 아닌가.

 

올라오는 사람이 정상까지 얼마쯤 남았는지 묻는다.

사실 된비알에 너덜길이니 생각보다 시간은 꽤 걸릴텐데 얼마 안 남았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하나 잠깐 고민을 한다.

그리고는 천연덕스럽게 조금만 가면 된다고 말한다.

대부분이 나같이 말하지 않을까 혼자 피식 웃으면서.

 

물소리가 우렁차다.

사람 다니는 길인지 물길인지 헷갈리는 길도 여러 번 나타나고.

엄청난 오지, 깊은 숲을 걷고 있는 듯한 이 느낌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