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오늘의 시 - 경전 속에서

솔뫼들 2019. 12. 23. 13:30
728x90

             경전 속에서

                                서하

 

      그의 종교는 노름

     마흔여덟 장 화투 경전을

     손에서 놓은 적 없었지

 

     자신의 끗발을 자식의 끗발로 믿으며

 

     별처럼 조였던 패가 말짱

     먹구름이었던 때가 더 많았지

 

     조금 무거워지거나 가벼워지거나,

     조금 가라앉거나 떠올려지는 가난과 구원은

     좀처럼 어울리지 않았고

 

     뒷목만 긁어대는 굽은 소나무 사이로 공산 달이 뜨니

     잃어버린 본전 찾은 듯

     모란꽃처럼 환해지곤 했지

 

     밑천인 듯 얼굴에 핀 저승꽃,

     지금도 아홉 끗발 잡으려는 듯

     도리깨 힘껏 휘둘러 내려칠 때

 

     아직도 멀었다, 멀었다, 멀었다

 

     구룡사 범종 소리가 들려오곤 했지

 


'오늘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시 - 철길  (0) 2020.01.06
오늘의 시 - 안부  (0) 2019.12.30
오늘의 시 - 물의 여정  (0) 2019.12.15
오늘의 시 - 첫눈을 사랑하는 나라  (0) 2019.12.09
오늘의 시 - 저녁이 올 때  (0) 2019.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