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길상사 정문 앞에 섰습니다.
문 앞에는 법정 그림을 그리워하는 현수막이 드리워져 있군요.
저도 법정 스님이 그립습니다.
개인적인 인연은 없지만 말입니다.
법정 스님 입적 후 불일암을 찾았을 때 그 소박하다 못해 최소한의 것만 갖춘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납니다.
몸으로 '무소유'를 실천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혼탁한 세상일수록 그런 어른이 필요한데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께서 돌아가신 후 그런 종교 지도자를 만나지 못해 아쉬움이 큽니다.
합장을 하고 경내로 들어섭니다.
간간이 오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 적막합니다.
천주교의 성모마리아상과 비슷하다는 소리를 듣는 관음보살상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그 간결미가 인상적이지요.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에 들어가 경건하게 삼배를 올립니다.
제각각 무슨 바람이 있는지 경을 읽고, 절을 하고, 명상에 잠긴 보살님들이 보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여기에 있든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삿된 마음이 없겠지요.
번뇌를 내려놓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간혹 사람들 속에서 마음이 시끄러울 때 혼자 이곳을 찾아 자신을 찾는 여행을 하곤 하니까요.
법당에서 나와 담장을 따라 걷습니다.
아! 벌써 迎春花가 노랗게 피었군요.
혹시나 했었는데 말입니다.
화사한 꽃길이 되어 마음도 환해집니다.
정다운 길이 되었군요.
조용조용 걷다 보니 법정스님 잠드신 곳입니다.
법정스님 영정 앞에서 잠시 두 손을 모읍니다.
일상생활에서 스님처럼 살지는 못 하더라도 항상 그 뜻을 마음에 새기면 적어도 쓸데없는 욕심은 내려놓게 되지 않을까요?
최근 입적하신 조오현 스님도 생각도 납니다.
늘 설악산 백담사 아랫마을 사람들에게 베풀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사셨다지요.
그리고 남은 돈도 그렇게 쓰라는 유언을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스님의 다비식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참석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스님은 그냥 그 동네 어른으로 사신 셈이지요.
깨달음을 얻지는 못 했다 하더라도 그만 하면 잘 사신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스님의 마애불 닮은 미소가 떠오릅니다.
절을 한 바퀴 돌고 나자 대추차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길상사 대추차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茶이지요.
전에는 좌식 탁자가 있는 찻집이었는데 새로 지은 지장전 아래로 찻집이 이사를 했더군요.
더 밝은 현대식 카페로 변모하기는 했는데 저는 옛 찻집에 더 정이 가네요.
북카페를 겸한 다라니다원 테이블에는 싱싱한 꽃이 향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사소한 것인데 생명력이 느껴져 좋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대추차를 당분간 못 한답니다.
일손이 부족하다지요.
'거리만 가깝다면 자주 와서 도울 수 있을텐데...' 생각만 하고 맙니다.
잠깐 서가를 둘러봅니다.
불교 관련 서적뿐 아니라 다양한 책이 있군요.
책을 기증받는다고 하니 제가 다 본 책을 이곳에 보내도 좋겠다 생각해 봅니다.
책에 유난히 소유욕이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그것도 부질없는 것이다 싶어져서 간혹 도서관에 기증하곤 했으니 말이지요.
다원에서 몸도 마음도 내려놓고 창 밖 풍경에 눈을 줍니다.
오가는 사람들, 막 물이 오르는 나무며 나무 꼭대기에 매단 등이며...
그러고 보니 얼마 안 있으면 법정 스님 기일입니다.
그래서 오후 들어 절집이 제사 준비로 조금 소란스러워졌는지도 모르겠군요.
가만히 풍경을 눈과 마음에 담다가 시계를 보고 몸을 일으켭니다.
한국가구박물관 예약시간이 가까워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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