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오늘의 시 - 꽃샘추위

솔뫼들 2019. 3. 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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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샘추위

                                 이종욱


  살아서 갚을 빚이 아직 많다

  새벽 공기를 돌려야 할 집이 아직 많다

  두드려도 울리지 못하는 가슴이 아직 많다

  죽어서도 물음을 묻는 무덤이 아직 많다


  우리 발에 올가미가 걸릴 때

  우리 목을 억센 손이 내리누를 때

  마주보는 적의 얼굴

  가거라

  한치도 탐하지 말라

  몇 점 남은 우리 몸의 기름기

  겨울의 마지막에 아낌없이 불을 당겨

  겹겹이 쌓인 추위 녹일 기름

  한치도 탐하지 말라


  우리의 머슴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가져가거라

  마주잡는 손과 손을 갈라놓는 찬바람

  꿈에까지 흉측한 이빨자국 찍고 가는 찬바람을

  씨 뿌린 자가 열매 거둘 날이 가까웠다


  번개가 번쩍이는 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안다

  갚을 빚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안다

  식중독으로 뜬눈으로 새우는 밤

  우리는 하늘의 뜻을 버렸음을 깨닫는다

  무덤 속에서 살아 있는 불꽃과 만난다

 

  바람이 셀수록 허리는 곧아진다

  뿌리는 언 땅 속에서 남몰래 자란다


  햇볕과 함께 그림자를 겨울과 함께 봄을

  하늘은 주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