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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
이종욱
살아서 갚을 빚이 아직 많다
새벽 공기를 돌려야 할 집이 아직 많다
두드려도 울리지 못하는 가슴이 아직 많다
죽어서도 물음을 묻는 무덤이 아직 많다
우리 발에 올가미가 걸릴 때
우리 목을 억센 손이 내리누를 때
마주보는 적의 얼굴
가거라
한치도 탐하지 말라
몇 점 남은 우리 몸의 기름기
겨울의 마지막에 아낌없이 불을 당겨
겹겹이 쌓인 추위 녹일 기름
한치도 탐하지 말라
우리의 머슴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가져가거라
마주잡는 손과 손을 갈라놓는 찬바람
꿈에까지 흉측한 이빨자국 찍고 가는 찬바람을
씨 뿌린 자가 열매 거둘 날이 가까웠다
번개가 번쩍이는 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안다
갚을 빚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안다
식중독으로 뜬눈으로 새우는 밤
우리는 하늘의 뜻을 버렸음을 깨닫는다
무덤 속에서 살아 있는 불꽃과 만난다
바람이 셀수록 허리는 곧아진다
뿌리는 언 땅 속에서 남몰래 자란다
햇볕과 함께 그림자를 겨울과 함께 봄을
하늘은 주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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