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이번에는 향촌문화관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그런데 가져온 자료를 뚫어지게 보아도 방향을 잘 알 수가 없군요.
하는 수 없이 스마트폰 내비를 켜고 내비가 일러주는 대로 움직입니다.
내비에는 향촌문화관이 아닌 대구문학관으로 나오네요.
대구문학관이 더 많이 알려졌나 봅니다.
한 건물에 아래층은 향촌문화관, 위층은 대구문학관이군요.
향촌동은 1950년대 문화예술인들의 정신적 안식처이자 대중문화의 요람이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관련 자료를 재현해 놓은 모양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맞아줄까 궁금해집니다.
1인당 1000원씩 입장료를 내고 들어갑니다.
향촌문화관에 들어가니 1950년대 전쟁 후의 모습뿐 아니라 우리가 어렸을 때를 보여주는 모습도 있군요.
갑자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6.25 전쟁 후의 구호물자를 전시해 놓은 곳도 있고, 그 당시 농기구나 기계를 걸어 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영어가 일본식으로 발음된 단어인 듯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 뿌레', '드럼', '브레 - 크'
'뿌레'는 무얼 말하는 것일까요?
시장통에서 한 끼 때울 수 있는 소박한 점심상도 보이네요.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며 빈대떡, 국수 한 그릇...
언뜻 생각하면 초라해 보일 것도 같은데 파는 사람의 표정을 보면 생의 의욕으로 가득차 보입니다.
잘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꽉 찬 것 같다고나 할까요?
윗세대들의 그런 것이 모여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든 것이겠지요.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친구가 사방치기를 하도록 만들어놓은 금을 보고는 한쪽 발을 뒤로 들고 한쪽 발로 뛰어 다닙니다.
어릴 적에 정말 많이 했던 놀이이지요.
사금파리를 주워다 금 그어진 곳으로 발로 차 옮겨가며 하던 놀이 말입니다.
사금파리를 말이라 하며 즐겁게 놀았었지요.
언젠가 공원에서 사방치기를 하도록 금을 그어 놓은 것을 보는 것만으로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오래 전에 했던 전통적인 놀이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장려한다는 소리도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런 문화관에서 볼 수 있군요.
감개가 무량합니다.
골고루 둘러보고 가다가 고무줄에 발이 걸렸습니다.
아하! 고무줄 놀이를 하라는 말이군요.
친구는 옛날 생각이 났는지 얼른 다가가 펄쩍 뛰었습니다.
그런데 높이 뛰지 못해 고무줄에 발이 걸렸군요.
저도 뛰어 보았습니다.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지 저 역시 고무줄에 발이 걸렸습니다.
몸이 그리 무거운 것도 아닌데 나이 무게가 걸렸나 봅니다.
조금은 씁쓸해 하며 발길을 돌립니다.
위층으로 올라갑니다.
대구문학관에는 대구 출신뿐 아니라 대구에서 활동한 문인들의 작품과 문인들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상화, 현진건, 이영도, 이장희 등 아는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마음을 치유하는 시 감상 코너에서는 喜, 怒, 哀, 樂에 관한 시가 5편씩 있는데 그 중에서 한 수를 고르면 시 낭송이 흘러 나옵니다.
저는 전상렬의 시 '고목과 강물'이라는 시를 골라 들었습니다.
시 낭송을 듣는 동안 잠깐이나마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흘러가는 듯합니다.
친구들은 어떤 시를 골라 들었을까요?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이호우와 이영도는 청도 출신 남매 시인입니다.
이호우의 시는 학창시절 교과서에도 실렸었지요.
이영도 시인을 이야기하자면 자연스레 유치환 시인과의 '플라토닉 러브'가 생각납니다.
유치환 시인이 편지를 무려 5천통이나 썼다지요.
유치환 시인 死後 이영도 시인은 그 편지에 실린 시들을 책으로 펴내게 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가슴을 저미게 하지요.
-사랑하는 것은
사랑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에게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홍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어쩌면 한 망울 연연한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의 < 행복 > 전문
대구문학관에는 시집뿐 아니라 많은 책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書架에 있는 책을 뽑아다 볼 수도 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한가하게 봄 햇살을 즐기며 책과 동무하고 싶어지는 시간입니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안내하시는 분께 점심을 할 만한 추천 메뉴를 문의합니다.
우리에게 종류와 가격을 물어본 다음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네요.
그 분은 우리 앞에서 부지런히 걸으면서 화가 이중섭이 은지화를 그린 곳도 대구라는 설명을 해 줍니다.
은지화는 이중섭이 종이값이 없어서 담배를 쌌던 은박지에 그린 그림이지요.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듬뿍 담긴 그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중섭은 제주도, 부산, 통영 등지를 오가며 살기도 했는데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나중에 일본 출신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가면서 가족들과 헤어져 힘겹게 지냈다고 하지요.
행려병자로 알려질 만큼 최후가 비참한 불운의 화가 이중섭과 그의 그림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의 아픈 역사와 더불어 기억되는 예술가 중 한 명이 또 대구와 관련이 있군요.


문화유산해설사를 하신다는 그 분은 약전거리에서 삼계탕을 추천합니다.
대구에는 닭과 관련된 음식과 국수가 유명하다는 말을 전하면서요.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가던 길을 돌아 일부러 걸음을 해준 그 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약전삼계탕을 찾아갑니다.
그러고 보니 5년 전에 갔던 곳이네요.
그때는 사람들이 많아 문 앞에 서서 기다렸는데 시간이 늦어 그런지 오늘은 바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방 약재를 넣어 닭고기 특유의 냄새를 없앤, 구수하고 깔끔한 삼계탕을 허겁지겁 먹습니다.
고춧가루가 거의 안 들어간 깍뚜기도 맛있군요.
빛깔이 허연 것이 미각을 자극하지는 않는데 보기보다 시원합니다.
하기는 위생을 장담할 수 없는 중국산 고춧가루 범벅보다는 낫겠지요.
기분좋게 점심을 먹고 에너지를 보충했으니 다음 코스로 옮겨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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