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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돌아가신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묘소만이라도 능처럼 만들고 싶어서 신하들을 설득하였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봉선본말사지'에 의하면
선조는 왕위에 오른 후 신하들의 반대로 덕흥대원군의 묘소를 덕릉으로 추존하지 못 하자 나무 장수 한 명을 불러 동대문 밖에서 땔감을 팔러오는 사람에게 물어서 덕릉을 지나왔다고 하면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땔감을 높은 값에 사들이게 하였다. 이 소문이 빠르게 전해져 나무 장수들이 너무 많이 밀려오는 바람에 중단했으나 이후부터 덕흥대원군의 묘는 덕릉으로 널리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흥국사도 자연스럽게 덕절로 블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