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해남 땅끝마을에서

솔뫼들 2017. 4. 1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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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4시 40분 차에 올라 내일 일정을 위해 해남으로 향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는 길에 월출산 자락에 있는 무위사에 들르고 싶었는데 시간 여유가 없다.

무위사 탐방은 다음으로 미루고 해남 땅끝마을을 향해 달린다.

비는 완전히 그쳤는데 하늘에는 무엇이 섭섭한지 먹구름 한 덩이가 머리 위를 떠돌고 있다.

여름 소나기처럼 한 줄기 쏟아부을 기세로.

 

 오후 6시 30분경 땅끝마을 주차장에 도착했다.

고상무님이 땅끝탑을 가 보지 않았다고 해서 해거름녘이 되었는데도 비상용 랜턴을 가지고 길로 나선다.

바로 아래가 바다이기는 하지만 잘 닦인 데크길이 주를 이루니 어두워도 걷는데 큰 무리는 없으리라.

 

 

 산책길로 접어드니 땅끝마을에 대한 지역 시인들의 시가 줄지어 붙어 있다.

땅끝마을이라는 이미지가 땅의 끝이기도 하지만 육지를 향해 가는 시작이기도 하고, 바다로 열려있는 공간이기도 하니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 공간 아닐까.

 

 땅끝탑 가는 길 오른편으로는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땅끝전망대까지 오르는 모노레일이라는데 늘 우리의 관심 밖에 있다.

'뚜벅이'이니 천천히 걸어올라가지 이 정도 높이에 기계의 힘을 빌릴 필요는 없겠지.

앞으로 다리가 말을 안 들을 때가 되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길은 편안하다.

꽃으로 단장된 길을 가볍게 걷는다.

해남에는 순천과 달리 비가 많이 안 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안내판에 보니 이 길이 '땅끝 천년숲 옛길'의 일부이구만.

도솔암, 미황사를 거쳐 대흥사를 지나가는 해남의 길 이름이다.

산과 이름난 사찰을 지나고 바다를 볼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고 해야 할까.

언제 저 길을 모두 걸을 수 있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바다가 서서히 붉게 물들고 있다.

유람선인가 근처 섬을 잇는 여객선인가 바닷가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배도 종일 부린 몸을 쉴 필요가 있겠지.

 

 

 6년 전에 순천 두륜산을 타고 달마산 등산을 위해 해남에 왔었지.

그때 땅끝탑까지 가는 이 길을 걸으며 짧은 거리인데도 아름다운 풍광에 빠져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소나무, 바다, 그리고 점점이 떠 있는 섬이 빚어내는 풍광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 했었다.

오늘 다시 이 길을 걸으며 마음에 풍선이 하나 두둥실 떠 간다.

 

가볍게 생각했는데 숨가쁘게 오르는 계단도 있다고 고상무님 투덜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그래도 여기는 월출산처럼 급경사 계단도 아니고, 조계산처럼 물이 줄줄 흐르는 계단길도 아니니 훨씬 낫지 않은가요?

물론 바로 계단 끝이 보이기도 하고.

 

 

 시간이 늦었으니 아무래도 걸음이 빨라졌다.

10여분 걸었을까?

땅끝탑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멋지게 솟아 있는 땅끝탑 앞에 서서 여기가 한반도 끝임을 생각한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은 근사한 낙조를 보면서 사진 몇 장을 찍는다.

이번 여행에서는 선암사 古梅를 감상한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 행운이 따르지 않았나 싶다.

비가 개인 후의 일몰은 또 얼마나 황홀한가.

 

 

 잠시 땅끝탑 조성 경위와 한반도 모형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린다.

이제 땅끝마을 주변에서 숙소를 찾아 종일 봄비에 젖은 몸과 마음을 말리고 싶다.

걸음은 더 빨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