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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솔뫼들 2012. 7. 2.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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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에 알싸한 느낌이 남아 있다.

말을 잃은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두 사람이 만나서 더듬거리며 세상이라는 깊은 강을 건너는 이야기.

어쩌면 누군가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내면을 그냥 조용히 읊조릴 수 있게 만드는 사람.

책을 읽고 난 느낌이 싸락싸락 눈이 내리는 날 그 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걷는 것 같다.

 

 여자와 아들이 인디언들처럼 이름을 짓는 놀이를 하면서

아들이 붙인 여자의 이름이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가장 정확히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모든 것을 조용히 견디는, 아니 견딜 수밖에 없는 사람.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사람.

 

 

 책을 읽으면서 문득 시력을 잃는다는 것과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절실할까 생각을 했다.

어느 것이든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더 크게 느끼겠지만

책을 책는 동안 내가 더듬더듬 어둠이 들어찬 계단을 올라가는 상상에 빠졌고

아이에게 시원하게 말해줄 수 없는 답답함에 몸을 떨었다.

세상의 고통을 몸의 한 부분으로 고스란히 표현해내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감내하면서 세상과 쉽사리 화해하지 못하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의 이야기 아닌가 싶다.

 

 

 말을 잃으면 단어도 함께 잃는 것인가?

어린아이가 표현을 해야 어휘력이 느는 것처럼 어른도 말을 하지 않으면 그 감옥 속에 갇히는 것인가?

유난히 언어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정말 그것이 궁금하다.

 

 

무어라 한 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그 속에서 어떤 근원적인 것에 도달하는 인물을 보면서 그래도 가슴이 조금은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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