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시간이 일러 트레킹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불영사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몇 년 전인가 겨울에도 소광리 금강송을 보러 가는 길에 들렀었군요.
그때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들도 많지 않고 고요 그 자체였지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불영사를 향해 걸어 올라갑니다.
이 길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오른쪽으로 난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인데 포장도로가 아니거든요.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사람들 출입이 통제되니 한여름이어도 시끌벅적할 일이 없겠군요.
거기에 짙은 녹음이 드리워 그늘을 만들어주니 금상첨화 아닌가요?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스님 한분이 의자에 앉아 계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한지 숲을 향해 앉으셨군요.
포행을 나오셨을까요?
많은걸 품어주는 숲과 어울리는 풍경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바야흐로 짝을 찾는 계절인 게지요.
목이 쉬어라 숲이 울리도록 울어대는군요.
뻐꾸기 울음소리에 여름이 온다는 노랫말이 생각납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큰 길 옆으로 명상의 길이라는 팻말이 보입니다.
사람들 발길이 드문데 슬쩍 그 길로 들어섭니다.
그늘이 더 깊어졌습니다.
걷다 보니 부도가 있군요.
조선시대 불영사 주지였던 고승의 사리탑이라고 합니다.
부도 옆에 부도를 지켜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키큰 소나무 한 그루 버티고 있는 풍경입니다.
다시 주도로와 만났습니다.
잠깐 외도를 한 것이었네요.
금세 불영사 경내에 들어갔습니다.
전에는 일주문부터 경내까지 꽤 멀다고 느꼈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네요.
마음의 거리가 달랐던 모양입니다.
경내 연못에는 벌써 睡蓮이 피었습니다.
부처님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친다고 해서 佛影寺라고 했다고 했지요.
누군가 지나면서 '아니 不', '그림자 影'의 불영사인지 알았다고 하더군요.
석가탑을 無影塔이라고도 부른다는 전설을 떠올리고 착각을 했을까요?
물속에 잠긴 구름, 千年도 덮어줄 너의 이불
네 혼자 귀밑머리 풀고 문풍지 우는 한밤
어느 뉘 두레박이 퍼올리리오, 저 짙푸른 꿈의 연못.
고와라 蓮꽃 수렁, 깊숙이 깔린 자욱한 人煙
천당도 푸줏간도 한지붕 밑, 연신 일렁이는 還生
눈부신 지옥, 드높은 시렁에 너는 거꾸로 매달린다
꿈도 아닌 세상, 임시가 영원 같은 세상
지금 저 떼거지의 龍袍, 王의 남루는 누가 벗기리
저어라, 서둘러 노를 저어라, 아 끝없는 꿈의 蓮못
김상옥의 < 꿈의 蓮못> 전문
오늘도 어김없이 연못에 비친다는 부처님의 그림자를 찾아봅니다..
연못을 가득 채운 연잎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멀리 부처 모양의 바위는 나의 그런 생각과 눈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같은 자세로 서 있습니다.
4단으로 내려오는 샘물로 목을 축입니다.
한낮이라 기온이 꽤 올라갔음에도 샘물은 시원하군요.
한 아이가 물을 마시고 장난을 치려 하자 젊은 부부가 그러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줍니다.
아까 올라오면서 재미있게 '가위, 바위, 보'를 하던 가족입니다.
아이가 이런 공간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우기를 바랍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거든요.
역시나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연등이 주렁주렁 걸려 있군요.
절마다 연등의 색깔이나 모양도 조금씩 다릅니다.
일일히 손으로 만드는데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들어 요즘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걸 주로 사용하기는 하지만요.
여기는 연등에 태극무늬도 있고 '공양등'이라는 글씨도 있군요.
초파일은 불교에서 일년 중 가장 큰 행사이지요.
사흘 남았으니 행사 준비로 바쁠 겁니다.
발길을 돌려 연못가를 한 바퀴 돌려는데 앞에서 老僧이 비질을 하고 오시네요.
아마도 싸리비를 들고 절 마당을 쓰는 것이 이 스님의 수행 아닐까 싶습니다.
먼지가 약간 나기는 하지만 싸리비가 지나간 자국이 선명해졌습니다.
스님의 마음 같이 느껴지네요.
여기도 전에 없었던 건물이 보이네요.
무슨 이유인지 불사를 진행했겠지요.
템플 스테이에 사용되는 건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종교의 본래 목적을 잊고 그저 크고 육중한 건물을 지어대는 교회와 절을 많이 보아서 공연히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됩니다.
다시 편안한 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햇살이 노곤노곤한 오후입니다.
북적이는 저잣거리는 여기에서 얼마나 먼지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이 드는 산사입니다.
山寺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곳이지요.
울진이라는 지역이 그렇기도 하지만 불영사는 대중 교통편이 더욱 불편해 발길을 하기도 쉽지 않은 곳입니다.
거기 숲과 계곡이 어우러져 산사를 안온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다음에 올 때에도 그 모습 그대로이기를 바라면서 자꾸 뒤돌아봅니다.
무언가 두고 온 것처럼 말이지요.
'여행기,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북수목원 생태관찰로를 거닐다 (2) (0) | 2018.06.11 |
---|---|
경북수목원 생태관찰로를 거닐다 (1) (0) | 2018.06.11 |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4구간을 걸으며 (3) (0) | 2018.06.08 |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4구간을 걸으며 (2) (0) | 2018.06.07 |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4구간을 걸으며 (1) (0) | 2018.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