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을 다녀와서 8 - 운탄고도1330 3길 (2)
K형!
다시 길을 따라 걷습니다.
응달에는 눈이 좀 쌓여 있군요.
경사가 심하지 않은 오르막길이 이어집니다.
급할 것도 없으니 쉬엄쉬엄 걸어갑니다.
또 안내문이 하나 보입니다.
여기는 노천탄광이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검은색 절벽(?)이 보입니다.
영월은 곳곳이 다 탄광이었군요.
검은색 절벽을 보니 학창시절 교실 난로에 불을 피우던 시커먼 조개탄 생각이 납니다.
조개탄이 부족하면 근처 산에서 솔방울을 주워다 불쏘시개로 사용하곤 했지요.
솔방울은 금세 타서 재가 되는데 조개탄은 화력이 좋아 열기가 오래 가지요.
불땀이 좋은 조개탄을 실컷 때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집에서 난방 연료로 쓰던 연탄은 참 많은 사연을 만들어 내었지요.
집집마다 연탄가스로 병원에 실려가던 사람들이 꽤 있었으니까요.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했고요.
다 타서 허옇게 된 연탄은 겨울철 미끄러운 골목길에 깨어놓곤 했지요.
다 탄 재마저 쓸모가 있었던 연탄이었습니다.
그런 연탄 한 장 아끼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를 하던 시절을 우리는 살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조개탄과 연탄을 만드는 석탄을 캐내던 탄광마을을 나이가 들어 걷고 있네요.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 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 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의 < 연탄 한 장 > 전문
여기 역시 1989년에 석탄광은 폐광이 되었는데 이곳에서는 납석이 나와 2009년까지 생산을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납석은 조각재, 타일, 유약, 농약 등으로 사용이 된다고 하는군요.
납석을 곱돌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어릴 적에 곱돌이라고 부르는 돌을 주워 땅바닥에 낙서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땅바닥에 곱돌로 하얗게 글을 쓰거나 그릴 수 있었거든요.
같은 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저 아래 꽤 큰 마을이 보입니다.
근처까지 버스가 들어오는 모양입니다.
하루에 몇 번이나 버스가 오갈까요?
여기도 모운동일까요?
트레킹을 출발했던 모운동 마을을 보며 지금 모운동 주민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까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땅도 거의 보이지 않았거든요.
지금 보이는 마을은 산중인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꽤 있나 봅니다.
비닐하우스도 보이는군요.
산자락 밭에는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 같은 컨테이너도 보입니다.
농사 규모가 제법 된다는 말이겠지요.
오전 10시, 드디어 싸리재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1시간 10분 정도밖에 안 걸었군요.
친구는 시간이 이르니 조금 더 가 보자고 합니다.
이정표를 보니 망경산사까지 1.3km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갔다가 되돌아와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겠다 싶습니다.
길이 험하지도 않은데다 내리막길이고,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니 말이지요.
오전 10시 20분, 망경산사에 도착했습니다.
큰 절인줄 알았는데 절은 아주 소박합니다.
절 크기에 비해 가지런히 놓인 장독이 많아 보이는군요.
정리가 잘 된 화단도 보입니다.
이곳에 거주하시는 스님들의 성격이 짐작되네요.
망경산사 아래쪽에 엄청나게 규모가 큰 건물이 있어서 가 보니 망경산사 부속 건물이 아니라 만봉불화박물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만봉 스님의 불화를 전시하는 공간이라고 하는데 여기 역시 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아쉽지만 사진 한 장 찍고 발길을 돌립니다.
근처에 공사중인 여러 곳도 모름지기 만봉불화박물관과 관련된 곳 아닐까 싶군요.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이곳 지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운탄고도1330 3길은 망경대산을 향해서 달립니다.
망경대산은 해발 1088m라고 하는데 이 산을 넘어가야 하는 모양이군요.
지금까지 온 길보다 경사가 급한 산길이라는 말이겠지요.
우리는 여기에서 왔던 길로 되돌아갑니다.
앞에서 사람들 말소리가 들립니다.
운탄고도1330 3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 했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라 휴일인데 아무도 걷는 사람이 없다고 고개를 갸우뚱했지요.
그런데 앞에서 두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머리까지 올라오는 큰 배낭을 멘 두 사람은 사흘째 걷고 있는데 우리를 처음 만났다고 하더군요.
운탄고도1330 1길 시작점인 청령포부터 걷기 시작했나 봅니다.
중년의 남성들인데 기운이 좋아 보이기는 합니다.
내처 삼척까지 걸을지도 모르지요.
서로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기온이 좀 올랐습니다.
주로 내려가는 길이다 보니 여유가 느껴지는군요.
잎을 거의 떨구고 하늘을 향해 뻗어올라간 낙엽송을 올려다 봅니다.
1960 ~70년대 산림녹화 정책에 따라 속성수인 낙엽송을 많이 심었는데 그때 심은 것인가 싶습니다.
가져온 과일을 먹으며 잠시 쉽니다.
추운 건 아니지만 저는 보온병에 있는 차를 마시고요.
아침에 호텔에서 물을 마신 다음 지금껏 걷기만 했으니 수분도 보충을 해 주어야지요.
내려가는 길은 수월합니다.
그래도 올라오면서 스쳐지나간 풍경을 눈에 담아 봅니다.
운탄고도를 알리는 리본도 들여다보고, 혼자 늠름하게 서 있는 나무에 렌즈를 가져다대기도 합니다.
이 길을 걸으며 시작점인 모운동 이름이 참으로 정겨웠습니다.
거기에 걷는 길 중간중간 여러 가지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있으니 스토리텔링을 잘 하면 더 멋진 길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다음에 이곳을 방문할 때 그런 이야기를 품은 길로 거듭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