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을 다녀와서 7 - 운탄고도1330 3길 (1)
K형!
오전 7시쯤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짐을 챙깁니다.
오늘 운탄고도1330 3길 일부 구간을 걷기로 했지요.
어제 얻은 책자에 의하면 운탄고도1330 3길은 모운동에서 예미역까지 총 길이 19.83km로 5시간 30분 걸린다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모운동에서 싸리재 삼거리까지 5km 정도 갔다가 되돌아올 예정입니다.
오늘 영월 날씨는 맑음, 영하 10도의 기온을 보이는데 다행히 바람이 잔잔합니다.
중무장을 했지만 산바람이 거세면 체감온도가 많이 떨어지니 걱정이 되기는 하지요.
살짝 춥다 느껴지지만 걷다 보면 몸에 열이 나겠지요.
걷기에 딱 좋은 날입니다.
모운동으로 가는 길은 한적한 시골길입니다.
겨울이라서인지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군요.
산길이니 뱀처럼 구불구불 올라가는 건 당연한 것이고요.
헉헉거리며 꼬부랑길을 올라가 모운동에 이르렀습니다.
정겨운 마을이 산자락에 기대어 있군요.
'구름이 모이는 동네'라는 어여쁜 뜻을 가진 동네 募雲洞.
해발 700m에 위치하고 있으니 하늘 아래 첫동네라고 할 만하지요.
지금은 오지 중의 오지이지만 모운동은 광산이 문을 열던 시기에는 극장, 우체국, 이발소 등 없는 게 없는 동네였다고 합니다.
이제 젊은 사람들은 다 떠나고 어르신들만 남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동네가 너무 조용하다고 했더니 친구는 노인들만 남아 추운 날씨에 꼼짝 않고 계신 모양이라고 하네요.
시간이 이르기는 합니다.
모운동에 벽화도 있고, 무슨 박물관도 있다고 하니 친구는 고개를 젓습니다.
어제 여러 번 허탕을 친 때문일까요?
운탄고도 마을호텔 앞에 주차를 하고 본격적인 트레킹 준비를 합니다.
운탄고도1330 3길은 영월의 걷는 길 중 하나인 '산꼬라데이길'과 일부 구간이 겹칩니다.
'산꼬라데이'는 산골짜기의 사투리라고 하는데 참 재미있네요.
오전 8시 50분, 운탄고도1330 3길 첫발을 내딛습니다.
벽화가 그려진 집을 지나가는데 개가 큰 소리로 짖으며 소란스럽게 환영인사를 합니다.
우리가 낯선 사람인 것은 분명하지요.
마을길을 지나니 살짝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네요.
길은 널찍하고 평탄합니다.
얼마 걷지 않아 무너진 건물이 보입니다.
무얼까 하고 안내문을 읽어 보니 이 건물이 동발제작소였다고 하는군요.
'동발'은 갱도가 무너지지 않게 받치는 나무기둥을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처럼 걷는 사람들이 보고, 생각하도록 일부러 남겨둔 모양입니다.
조금 더 가자 '광부의 샘'이라는 조그만 연못이 나옵니다.
광부들이 이 연못에 동전을 던지며 자신의 안전과 가족의 행복을 기원했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목숨을 걸고 갱도에 들어가는 광부 입장에서 얼마나 간절한 바람이었을까요?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 합니다.
우리는 '막장'이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사용하지만 막장은 본래 갱도의 막다른 곳을 뜻하지요.
광산촌 사람들에게는 금기시되는 단어라고 하니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길은 계속 순합니다.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이 이어지는군요.
설렁설렁 걸어도 되는 길입니다.
길에 눈이라도 있을까 했더니만 눈은 그늘에 조금 있을 뿐 흙먼지가 일 정도입니다.
황금폭포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석탄을 캐던 마을에 뜬금없이 무슨 황금폭포일까요?
자세히 읽어 보니 폐광이 된 곳에 물이 흐르는데 물에 철분 성분이 있어서 붉은 황금색을 띤다고 합니다.
황금폭포는 그 물을 끌어다 만든 인공폭포라는 것이지요.
겨울이면 황금폭포가 얼어붙어 장관이라고 하는데 수량이 풍부하지 않아 생각보다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볼거리가 이어지니 지루할 틈이 없군요.
그리고 운탄고도라는 이름답게 광산, 광부와 관련된 것이 많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합니다.
황금폭포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광부의 동상을 만들어놓은 곳이 있습니다.
저도 광부와 같은 자세를 하고 사진을 찍어 봅니다.
운탄고도1330 이정표도, 산꼬라데이길 이정표도 아주 잘 되어 있네요.
처음 오는 사람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갈림길에서 옥동광업소 목욕탕이 있다는 방향으로 가 봅니다.
옥동광업소가 모운동을 흥청거리게 했던 광산인가 봅니다.
1960~70년대에 서울의 명동만큼 모운동이 비싼 동네였다고 하면 믿어질까요?
서울 명동에서 개봉한 영화를 다음으로 이곳에서 개봉할 정도였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1989년 폐광 후 쇠락했지만 한때는 모운동에 만명이나 되는 사람이 살았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동네였군요.
옥동광업소 목욕탕에 도착했습니다.
창고 같은 건물 안에 타일로 만든 湯이 있습니다.
이 목욕탕이 없을 때는 광부들이 집까지 검은 얼굴로 오가는 바람에 부모 자식간에도 길에서 스치면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부녀자들은 목욕물을 데우는 것이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고요.
그러다 정부의 지원으로 목욕탕이 지어져서 부녀자들의 일이 줄었다고 하지요.
친구가 저 보고 탕 안에 들어가 목욕하는 시늉을 하라고 하는군요.
높이가 꽤 높아 탕 안에 들어가려면 어렵게 뛰어넘어야 해서 저는 그만 포기합니다.
친구는 짓궂게 훌쩍 뛰어들어가더니만 정말 씻는 자세를 취하네요.
그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키득키득 웃습니다.
누런 물이 흐르는 곳을 따라가자 갱도 입구가 나옵니다.
갱도에 물이 고여 있군요.
폐광 당시 갱도 입구를 막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무너졌답니다.
갱도 내에 맑은 샘이 있어서 물이 계속 흘러나온다고 하는데 철분 성분 때문에 붉은빛을 띤다는 것이지요.
이 물을 흘려보내 황금폭포를 만든 것이고요.
여름에는 갱도에서 서늘한 바람이 나와서 주변에 안개가 자욱하답니다.
해발고도가 높고 산으로 둘러싸여 시원하기도 하겠지만 갱도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이 얼음골처럼 피서지를 만들어주기도 하겠네요.
여름에 이 길을 걸어도 좋겠구나 싶어집니다.
하늘 흐리고
그 흐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탄가루 인 지붕들이
다닥다닥 붙은 집들 한 켠
바랭이풀 들어찬 땅 일구며
아주머니 한 분이
코스모스를 심고 있었다.
왜 혼자 하느냐 물으니
호미질 멈추지도 않고
" 이런 일은 하고 싶은 사람 몫이지요." 했다.
임길택의 < 탄광 마을을 지나면서 >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