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진안 마이산에서 (2)
K형!
오르막길을 기를 쓰고 오르고 나면 진이 빠집니다.
한바탕 쉬어야 그나마 다시 걸을 힘이 생기네요.
한동안 제대로 된 산행을 안 한 탓인지 아니면 위장 탓인지 모르겠지만 컨디션이 영 좋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저를 보고 그러더라고요.
"여기 얼굴 허옇게 된 사람이 한 명 더 있네."
친구에게 물어보니 제 혈색이 안 좋아 보인답니다.
그래도 대신 가줄 사람 없으니 젖 먹던 힘까지 내어보아야지요.
다시 힘겹게 몸을 일으킵니다.

이정표를 보아도 헷갈려 잠시 갸우뚱하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봅니다.
암마이봉 가는 길이 맞다고 하는군요.
암마이봉 가는 길에 접어들기 전에 한쪽에서 간식을 먹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는 어제 먹은 고구마 때문에 위장에 탈이 난 것 같습니다.
속이 답답합니다.
아침도 제대로 안 먹었는데 말이지요.
평소 같으면 몇 번 간식을 먹고 쉬어야 할 것 같은 상황인데 도무지 음식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억지로 커피 한 잔에 도넛 한 개를 꾸역꾸역 먹어봅니다.
이렇게라도 힘을 내어 보아야지요.
다시 돌계단이 나오는군요.
제가 생각했던 마이산이 아닙니다.
전에 왔을 때는 이렇게 힘들다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는 겨울인데다 계단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암마이봉 산행은 통제되었지요.
암마이봉을 오르지 않았으니 평이한 산길이었고요.
언제쯤 이 계단이 끝날까 아무런 생각 없이 앞만 보고 걷습니다.
저절로 몸에만 집중하는 시간이군요.

우리가 쉬는 동안 무리지어 온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오는 내내 너무 소란스러워 인상을 찌푸리게 했던 사람들입니다.
앞뒤로 늘어서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에 조금만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 했더니만 나이는 얼마 안 먹었는데 귀가 먹었다고 억지소리를 하더군요.
제 말은 뒷등으로 듣고 계속 떠드는데 정말 피곤할 지경입니다.
왜 자연을 찾아와서 그렇게 자기 목소리를 높이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산을 찾은 다른 산꾼에게 민폐일 뿐 아니라 산에 사는 동물들에게도 피해입니다.
열심히 올라갔더니 이번에는 또 내리막길입니다.
그것도 급경사로 이어지는 길이네요.
앞으로 이런 길이 몇 번이나 더 나올까요?
앞에서 오던 분이 씩 웃으며 입장료 아끼려고 고생깨나 한다 하고 지나가는군요.
반대편에서 입장료를 내고 오면 이 고생은 안 한다는 의미 같습니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피식 웃음이 납니다.
이번에는 육중한 바위 아랫길을 따라갑니다.
암마이봉 바로 아래를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왼편에는 줄이 드리워져 있는데 그 줄이 그리 미덥지 않아 조심조심 걸어갑니다.
마이산에는 다양한 표정을 한 산길이 있군요.
암마이봉까지 가는 길은 그리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윗길을 지나니 다시 꺼이꺼이 올라가는 급경사 길이 나옵니다.
이제 정말 숨이 턱에 찹니다.
그리고 몸은 왜 또 그리 무거운지요.
무거운 배낭 메고 고된 훈련을 받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친구는 저만치 앞서 갔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언뜻 친구 모습만 확인하고 가다 쉬다를 반복합니다.
드디어 암마이봉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반대편에서 올라온 사람들까지 더해 매우 붐빕니다.
산자락에는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는 사람들도 꽤 보이는군요.
우리는 일단 암마이봉에 올라갔다 내려오기로 합니다.

암마이봉 오르는 길 450m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계단입니다.
암마이봉 자체가 엄청나게 큰 바위덩어리이기 때문에 밧줄을 잡고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지만 계단이 아니면 올라가기 쉽지 않지요.
길게 늘어선 줄 끝에 섰습니다.
정체 때문에 가다 서다 하는군요.
전국 산꾼들이 다 마이산에 집결한 것 같습니다.
멈추어 있을 때 쉴 수 있으니 저는 오히려 다행이다 싶습니다.
무거운 몸을 끌고 오르면서도 바로 앞에 우뚝 솟은 숫마이봉에 시선을 빼앗깁니다.
정말 대단한 위용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솟아 있을 수 있을까요?
불가사의한 일이지요.
암마이봉(해발 686m)과 숫마이봉(해발 680m)이 나란히 있는데 암마이봉이 해발고도는 조금 더 높지만 둥그스름하고, 숫마이봉은 바위덩어리 세 개가 솟아 있는 형국인데 봉우리 끝이 뾰족합니다.
숫마이봉 꼭대기에 있는 관목들이 어떤 만화에선가 본, 대머리에 듬성듬성 난 머리털처럼 보이는군요. 푸훗!

숫마이봉은 세 개의 바위덩어리가 붙어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 가운데 굴이 보이네요.
화엄굴입니다.
화엄굴에서 기도를 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와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요.
암마이봉 가는 길은 조금 올라가다 보면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로 나뉘어집니다.
계단이 그리 넓지 않으니 선택한 방법이겠지요.
올라가는 길은 빽빽하게 사람들이 늘어섰는데 내려가는 길은 한산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내려가는 길로 여유롭게 올라가는게 보입니다.
반칙이네요.
어디에나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완벽하게 공정한 세상은 어디에도 없지요.

고개를 돌려 봅니다.
북문 주차장 방향으로 발 아래 펼쳐진 풍광이 눈에 들어옵니다.
수채화 물감으로 칠해 놓은 것도 같고, 파스텔로 그림을 그려 놓은 것도 같습니다.
흰색, 연분홍색, 연두색, 베이지색...
정말 조물주는 솜씨가 좋다니까요.
헉헉거리다가 잠시 쉬는 동안에 고생한다면서 저 풍광이 제게 위로를 건네 주네요.
봄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꽃도
나비도
햇살도
바람도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너도
강원석의 < 봄봄 >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