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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셋째날 (1) - 천년의 숲 비자림

솔뫼들 2024. 1. 26.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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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부터 확인한다.

도심에는 비가 내리거나 흐린데 한라산에는 계속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이번 여행에서 한라산 산행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한라산 적설량이 1m를 넘는다고 하던가.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면 한라산둘레길도 전면통제된다고 하고.

가능하면 산간도로는 이용하지 말라는 안전뉴스도 문자로 도착한다.

 

 어쩔 수 없이 도심 근처만 왔다갔다 하면서 놀아야겠군.

오늘은 '천년의 숲 비자림'과 비자림 근처에 있는 오름을 찾아다니기로 한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비자림을 향해서 달린다.

 

 차가 중산간도로로 들어서니 제설을 했다고 해도 1차로만 눈을 치운 것이 보인다.

워낙 많은 눈이 내리니 쉽지는 않으리라.

혹시나 눈에 미끄러질까 우리도 조심을 해야겠지.

 

 비자림으로 가는 길은 도로 양쪽에 삼나무가 도열해 있는데 '비자림로'라 불린다.

전에 길을 넓히기 위해 비자림로의 오래된 삼나무를 베어낸다는 기사를 보고 가슴이 답답했다.

비자림을 좋아하고 찾는 사람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꼭 삼나무를 베어내어야만 할까?

몇 번이나 공사가 중단되고 재개되는 일이 반복되었다고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이탈리아처럼 제주도도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구나.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된 비자림에 도착했다.

비자림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비자나무숲으로 500 ~ 800년 된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밀집해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희귀한 초본류와 목본류도 자생하고 있고.

안내판에 있는 설명을 읽어보면 보물 같은 숲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숲의 서늘한 기운 때문에  따뜻한 차가 그리운지 친구는 커피 한 잔 하자고 한다.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드문드문 눈이 덮인 비자림을 창문을 통해 바라본다.

몸에 온기가 퍼진 다음 비자림으로 들어선다.

 

 

  나는 비자림이 세번째 방문이데 친구는 처음 온다고 한다.

비자림 안으로 들어서자 숲해설사가 안내하는 곳이 있었다.

잠시 서서 해설을 들어 본다.

제주도에 처음 온 날 도립공원 곶자왈에 갔는데 여기도 비자림 곶자왈이라고 한다.

곶자왈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는 말이겠지.

비자나무 열매가 약재로 널리 쓰인다는 건 여러 번 들었고, 비자나무가 탄력이 좋아 바둑판으로 최고라는 이야기도 전에 들었다.

 

 숲해설사는 이런 소중한 자연유산인 곶자왈이 중산간에 들어서는 골프장과 도로 때문에 사라지고 있어서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한다.

늘 그렇겠지.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무얼 선택해야 할까?

인간의 편의성과 눈에 보이는 이익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지고 훼손되는가.

자주 오는 편은 아니지만 제주도에 올 때마다 나도 느끼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무심코 걸었는데 바닥에 깔린 붉은색 모래 같은 것이 화산송이라고 한다.

화산송이는 제주 화산 활동시 화산 쇄설물로 알칼리성 천연 세라믹이란다.

화산송이에서는 원적외선이 방출되고 탈취율, 수분흡수율, 향균성 등 좋은 기능이 많다고 하네.

그러고 보니 제주도 화산송이를 이용한 화장품도 있는 것 같다.

좋은 기운을 몸이 받아들이도록 더 여유있게 걸음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청난 수령을 자랑하는 비자나무들이 눈길을 잡아끈다.

나이 앞자리가 바뀌고 나서 가끔 내가 나이를 꽤 먹었구나 싶은데 수백 년 된 비자나무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 하겠군.

어찌나 장엄한지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이런 숲에서는 산림욕을 위해 가능하면 노출을 많이 해야 하는데 겨울이라 꽁꽁 싸매고 걸으니 푸른 기운이 오다가 달아나지 않을까?

친구는 얼굴 피부로도, 호흡으로도 산림욕이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그렇겠지만 이렇게 청량한 공기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복식호흡을 해 본다.

 

 새천년비자나무까지 룰루랄라 걷는다.

老巨樹가 보일 때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정말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연신 나온다.

눈이 쌓인 길도 있고, 눈 녹은 물이 고인 길도 있고, 질척거리는 길도 있지만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길이다.

눈길을 잡아끄는 빨간 열매는 이 겨울 눈 속에서 얼마나 앙증맞은지...

 

 

 한 바퀴 돌아보는데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입구에 거의 다 와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계단길이 보인다.

저곳으로 가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한번 가보고 싶은데 연구용으로 통제를 하는지 막혀 있다.

 

 비자림을 걷다 보면 곳곳이 막혀 있다.

사람들로 인해 크게 피해를 볼 곳이 아니라면 개방하는게 좋지 않을까?

비자림은 산책할 수 있는 거리가 짧아 좀 아쉬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