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일본 오제 트레킹 (1) - 오제 가는 길

솔뫼들 2023. 10. 2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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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오래 전부터 천상의 화원이라는 일본 오제 습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사실 코로나 19로 한동안 여행이 금지되다시피 했으니 쉽지는 않았지만요.

 

2월 한 달 남미 여행으로 채웠으니 좀 쉬고 늦여름이나 초가을쯤 오제에 가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인터넷에 정보를 찾으면 다녀온 사진은 많은데 막상 가려고 하니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더군요.

저야 백수이니 상관 없지만 친구 일정을 고려해야 하니까요.

 

예약했다 취소하는 둥 우여곡절을 겪고 어렵게 트레킹 일정을 잡았습니다.

한 여행사 대표가 답사차 오제에 갈 예정인데 우리 일정에 맞추어 주겠다고 했거든요.

총 인원이 여섯 명이니 단출합니다.

그런데 마운틴 TV PD가 동행해 함께 촬영한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뭐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보는 TV도 아니니 얼굴 좀 알리는 셈 쳐야지요.

 

무거운 배낭을 지고 집에서 새벽 5시 30분에 나가 택시를 타고 이동해 공항버스를 탔습니다.

공항버스가 꽉 찬 걸 보니 사람들이 곳곳으로 많이 간다는 말이겠지요.

우리나라 사람들 참 열정적입니다.

 

공항에 도착해 일행을 기다리며 친구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대신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을 그렇게 먹는지 샌드위치 사는 줄이 아주 깁니다.

꾸역꾸역 샌드위치를 먹으며 힘을 내 봅니다.

트레킹은 쉼이 아니니 체력 관리를 해야지요.

 

공항에서 일행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바로 기계로 수속을 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아 좀 어리바리하게 굴기는 했네요.

이제 종이 티켓을 손에 든 사람은 별로 없군요.

 

면세점을 둘러보며 운동 삼아 왔다갔다 하다가 오전 10시 10분 출발하는 나리타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인천공항에서 나리타공항까지 2시간 25분 걸린다고 나와 있습니다.

자리 정리하고 이른 점심 먹고 나면 내릴 때가 되지 않을까요?

가지고 온 책을 30여분 보고 나니 나리타공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요?

착륙 준비를 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는데 1시간 넘게 비행기는 주변을 돌고 있습니다.

폭우가 쏟아져 착륙이 지연되고 있다는 방송이 연달아 나오네요.

비가 얼마나 오기에 비행기 착륙이 어려울까요?

공연히 걱정이 되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오후 2시 30분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합니다.

1980년대 지었다는 나리타 공항은 정말 낡았군요.

건물만 낡은 것이 아니라 시스템도 엉망입니다.

기계에서 양손 검지 지문을 찍었는데 창구에 있던 사람이 다시 하라고 하는군요.

그럼 하나 건너 하나씩 고장난 기계는 왜 설치해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을 여러 번 방문했지만 한글로 된 안내문은 이번에 처음 봤습니다.

공항이든 지하철이든 한글이 씌어 있어서 편리하다고 하더니만 한글이 우리를 반겨주네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방문한다는 말이겠지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한자문화권이라 어느 정도 뜻이 통하기는 하지만 한글로 안내가 되어 있으니 마음이 한결 놓입니다.

물론 모든 곳에 그렇지는 않겠지만요.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빗줄기가 가늘어졌습니다.

나리타공항에서 준비된 승합차에 오릅니다.

여성 기사분이 아주 친절하군요.

게다가 일행 중 연세 드신 강선생님이 일본말을 현지인처럼 하십니다.

일본에서 주재원으로 몇 년 살았다고 하시더군요.

무려 45년 전에 오제에 한번 다녀오셨고요.

덕분에 유능한 가이드처럼 믿음이 가네요.

 

차는 도쿄를 벗어나는데 거의 굼벵이 수준입니다.

평일인데 비가 내려서인지 도로가 많이 막히는군요.

친구는 창 밖을 내다보며 나무가 많아서 좋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중소 도시까지 고층아파트가 들어서지도 않았고요.

대도시 몇 군데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처럼 미세먼지에 시달리지 않겠지요.

우리나라 사람이 호주인가 어느 나라를 가서 '미세먼지'라는 단어가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새 미세먼지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일상이 되었는데 말입니다.

우울한 일이지요.

 

 

숙소로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 한번 들렀습니다.

최대표가 산 과자를 나누어 먹으며 모두 흐뭇한 표정입니다.

다음 일정에 대한 기대감이라고나 할까요.

 

비행기 착륙도 늦었고, 도로도 붐비는 바람에 3시간 30분이나 걸려 가타시나무라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오는 도중에 계속 山樂莊이라는 안내판이 보이더니 산악장이 아주 큰 온천호텔 체인이라고 합니다.

날은 벌써 어두워졌습니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면서 재미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최대표가 숙박비를 현금으로 내자 돈을 기계에 집어 넣는군요.

그리고 방의 갯수 등 입력을 하면 저절로 거스름돈이 나옵니다.

실수할 염려가 없겠군요.

현금계산기인데 일본인다운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다다미방에 짐을 풀었습니다.

두어 번 다다미방에서 자본 적이 있습니다.

여기는 시설이 매우 좋습니다.

일본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방입니다.

서양식 호텔이 아니라 불편한 점도 있지만 특별한 경험이 되겠지요.

도쿄에 종일 비가 내렸다더니 축축하고 서늘한 느낌이 들어 에어컨으로 방 온도를 올려 놓고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저녁은 일본 음식으로 구성된 뷔페입니다.

적당히 달고 짠 일본 음식이 참 많습니다.

제 입맛에는 들척지근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 배를 채웁니다.

아무래도 뷔페에서는 많이 먹게 되지요.

 

이 뷔페에는 맥주와 와인, 사케가 무한정 제공된다고 하네요.

술을 좋아한다는 최대표는 맥주를 갖다 마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술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지만 다음 날 일정을 위해서 술은 사양합니다.

젊은 김PD는 일을 하는 동안에는 술을 안 마신다고 하더군요.

그런 자세는 칭찬할 만합니다.

 

 

저녁을 먹고 조금 쉬면서 짐을 정리해 놓은 다음 온천욕을 하러 갑니다.

어떤 성분이 든 온천인지 온천수에서 특별한 냄새는 나지 않습니다.

유황온천은 확실히 아니군요.

그래도 물이 매끄럽고 좋은 것이 느껴집니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드니 온천욕이 좋아지더군요.

온천물에 오래 몸을 담그며 새벽부터 지친 몸을 달래 줍니다.

 

온천욕을 마치고 방으로 올라왔습니다.

눈꺼풀이 무겁습니다.

어차피 큰 배낭 하나 가져오기는 했지만 짐을 잘 싸 놓고 두툼한 요 위에 눕습니다.

온도가 적당하니 솔솔 잠이 쏟아지네요.

이렇게 일본 온천호텔에서 첫날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