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제 트레킹 (6) - 히우치다케 산행
K형!
아침 일찍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잠을 잤는지 말았는지 머리가 맑지는 않지만 낯선 공간, 불편한 잠자리에서 그러려니 해야지요.
조용히 일어나 세면도구를 들고 나갑니다.
세수를 하는데 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손이 얼얼할 지경입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방으로 들어가니 다른 분들도 다 일어나셨더군요.
강선생님 코 고는 소리가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모기 소리 윙윙거려 쉬이 잠이 들지 못 했다는 최대표의 말에 그런 소리를 왜 듣고 있느냐고 하시더군요.
강선생님은 누우면 바로 잠에 드신다고 합니다.
세 끼 잘 드시고, 잠 잘 자고, 운동 찾아서 하시고...
건강의 비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겠지요.
건강체질 타고 나셨네요.
부럽습니다.
아침 식사는 오전 6시로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어제 저녁에 아침 식사 시간을 30분쯤 늦출 수 없느냐고 했더니만 안 된다고 하더랍니다.
어쩔 수 없이 하루를 일찍 시작할 수밖에 없겠군요.
아침을 먹고 도시락을 받아 넣었습니다.
휴게실에서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받아 친구 배낭에 넣었고요.
사실 어제는 휴게실이 따로 있는지 몰랐습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차가 준비되어 있고, 뜨거운 물과 오차가 있더군요.
차를 마시려면 자진해서 정해진 돈을 통에 넣어야 하고요.
커피 믹스가 200엔 하는 것 같았습니다.
산장에서 잠만 자고 음식은 따로 해 먹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도 있더라고요.
일본 젊은 친구들이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식재료를 들고 다니려면 아무래도 짐이 무겁겠지만 말 그대로 젊음이 무기겠지요.
저도 한때는 열심히 10kg 훌쩍 넘는 배낭을 메고 지리산이나 설악산을 겁없이 다녔으니까요.
오전 7시 30분에 출발한다기에 산장 주변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산장 바로 뒤 오제누마 호수에 낮게 깔린 아침 안개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산에서 몰려와 호수를 감싸고 있는 안개가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혹시 종일 안개에 싸여 있는 건 아닌가 살짝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호숫가를 걸으면서 좋은 기운을 받는 느낌입니다.
쵸죠 산장 앞에서 최대표가 오늘 히우치다케 일정을 설명한 후 어제처럼 다같이 구호를 외칩니다.
산장 주인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는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네요.
쵸죠산장은 자연스럽게 한국 마운틴 TV에 등장하게 생겼습니다.
히우치다케 산은 해발 2356m의 활화산입니다.
일본 등산안내지도에는 오르는데 3시간 30분, 내려가는데 2시간 30분 걸린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더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어제 오제누마 호수를 돌 때 갔던 길로 다시 나섭니다.
햇살이 퍼지면서 안개가 사르르 걷히고 있네요.
좀 덥기는 하겠지만 산행시 비가 내리는 것보다는 한결 낫겠지요.
갈림길을 만났습니다.
호숫가를 걸으려면 직진해야 하고 히우치다케에 가기 위해서는 우회전해야 합니다.
초반부터 경사가 급합니다.
키작은 풀만 있던 주변도 키큰 나무들로 바뀌었고요.
나무들이 누가 더 큰가 키 자랑을 하는 것 같군요.
엄청나게 오래된 숲이다 보니 고목들도 많습니다.
뿌리째 뽑혀 나뒹구는 나무도 있고, 땅에 누워 이름 모를 버섯을 키우는 나무도 있습니다.
설치미술 작품 같은 나무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군요.
친구는 이런 원시림이 있는 일본이 부럽다고 합니다.
1合目이라는 안내판이 나무 뿌리에 붙어 있군요.
여기에서부터 산행이 시작되는 걸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에도 일본에서 산행을 할 때 이런 표지판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무얼까 생각만 하다 말았는데 최대표가 설명을 해 줍니다.
일본 산에서는 정상까지를 10合目으로 나눈다고 합니다.
거리 표시가 아니라고 하는군요.
에도시대에 등산이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특히 후지산 오르는 걸 평생에 한번은 해야 하는 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지요.
그 당시 등산 장비가 발달하지 않았을테니 등잔불을 들고 산을 오르는데 등잔에 기름이 다 떨어지는 구간을 한 合目으로 정했다는 이야기이지요.
여러 가지 설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난이도에 따라 合目을 나눈 것이겠다 싶습니다.
그러니 소요시간과 상관이 있을테고요.
새벽녘에는 쌀쌀했는데 언제 그랬냐 싶게 땀이 줄줄 흐릅니다.
무거운 배낭에 가풀막진 산길을 오르니 어쩔 수 없지요.
빽빽한 밀림이다 보니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습니다.
습도 또한 아주 높은 편이고요.
그래도 숲이 워낙 우거져 산길은 대부분 그늘입니다.
평일이어서인지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도 좋습니다.
일본인 한 커플이 우리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젊은 친구들인데 힘겨워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출발한 지 한 시간 조금 넘어 쉬어가자고 했습니다.
친구 배낭 무게 줄여줄 겸 커피도 마시고 간식도 먹으면서요.
땀을 많이 흘렸으니 물도 마셔 줍니다.
친구와 저는 1인당 물을 800ml씩 가져왔는데 다른 분들은 달랑 500ml짜리 한 병씩 가져오셨네요.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저처럼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물을 더 마셔야겠지만 산행시 물 부족은 신경이 많이 쓰이지요.
다들 베테랑이니까 알아서들 하시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