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도에서 - 난정저수지 (3)
K형!
이번에는 난정저수지로 향합니다.
해바라기 정원이 있다고 했습니다.
노란 해바라기꽃이 줄지어 선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난정저수지 가는 길 옆 논에는 진녹색 벼들이 싱싱합니다.
사각형으로 정확하게 구획지어진 논을 보니 여기도 오래 전 바다를 매립해 농지로 만든 곳인가 보다 추측을 해 봅니다.
비슷비슷한 길을 차로 한참 달립니다.
대룡시장 주변 북적거리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네요.
섬에서 이렇게 한참 달리는 걸 보면 교동도가 생각보다 넓은가 보다 생각합니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달리니 내비게이션에서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알려줍니다.
일단 다른 차들이 서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돌아봅니다.
무슨 차들인가 하니 낚시를 하는 사람들 차였군요.
강화나들길 10코스가 이곳을 지나가는지 이정표가 보이네요.
교동도에 강화나들길 두 코스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수지 둑으로 올라섭니다.
너른 저수지만 보이지만 저수지 둑방길을 따라 걷기로 합니다.
둘 다 걷는 건 잘 하니까요.
둑방을 걸어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둑방에 난정 해바라기 정원이라고 커다랗게 간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어디에도 환한 해바라기꽃 한 송이 보이지 않는군요.
무슨 일일까요?
해바라기꽃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 마을 어른께 여쭈어 봅니다.
마을 어른이 다소 민망한 표정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키가 30cm도 안 되는 작은 식물이 보입니다.
해바라기라고 하는군요.
무려 10만 그루나 심었다는데 아직 아기입니다.
내년에는 저 해바라기가 자라서 꽃을 피울까요?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평화를 염원하며 해바라기를 가꾸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예전에는 북쪽 사람들과 오가면서 품앗이로 농사일을 했었다고 하니 연세가 드신 분들은 그때가 그리우시겠지요.
더군다나 북쪽이 고향인 분들을 더할 나위 없을 거고요.
햇살 동냥 하지 말라고
밭둑을 따라 한 줄만 심었지.
그런데도 해 지는 쪽으로
고갤 수그리는 해바라기가 있다네.
나는 꼭,
그 녀석을 종자로 삼는다네.
벗 그림자로
마음의 골짜기를 문지르는 까만 눈동자,
속눈썹이 젖어 있네.
머리통 여물 때면 어김없이
또다시 고개 돌려 발끝 내려다보는 놈이 생겨나지.
그늘 막대가 가리키는 쪽을
나도 매일 바라본다네.
해마다 나는
석양으로 눈길 다진 그 녀석을
종자로 삼는다네.
돌아보는 놈이 되자고.
굽어보는 종자가 되자고.
이정록의 < 해 지는 쪽으로 > 전문
한쪽에 2006년에 완공되었다는 난정저수지 수몰헌정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인공저수지를 만들 때면 늘 마을이 수몰되곤 하지요.
그때 마을을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이 저수지 덕분에 교동도 사람들은 농업용수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겠네요.
고마운 일입니다.
여기저기 마을 가꾸기 일환으로 포토존도 만들어 놓았고, 바람개비도 세워 놓았습니다.
어렸을 적에 족두리꽃이라고 불렀던 풍접초가 피어 있군요.
무엇이 되었든 꽃을 보니 기분이 좀 나아집니다.
마을 사람들이 애쓰고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있네요.
어떤 정원을 만들려고 하는지 중장비 움직이는 모습도 보입니다.
다음에 화개정원과 함께 다시 찾는다면 그때는 난정저수지 주변이 꽃으로 가득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저수지 주변을 따라 계속 걸어갑니다.
강화나들길 10코스는 중간에 좌회전해서 산으로 접어듭니다.
그 방향을 보니 '수정산 조선시대 한증막'이라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황토와 돌을 이용해 만든 한증막으로 조선 후기부터 1960년대까지 한증막이 이용되었다고 하는데 소나무로 불을 지펴 그 열기로 증기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런 입욕시설이 조선시대에 있었고 아직까지 보존되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갑니다.
앞쪽에 정자가 보이네요.
낚시꾼들이 고기는 잡지 않고 길가에 의자를 마련해 놓고 막걸리를 마시며 놀고 있습니다.
물고기가 안 잡히는지도 모르지요.
정자에 올라가 쉬었다 가기로 합니다.
정자 이름이 무언가 하고 돌아보니 이름이 없습니다.
그냥 전망대라네요.
저수지, 바다, 북녘땅...
이런 소재들과 어울리는 멋진 이름 하나 지어주면 좋을텐데 아쉽습니다.
정자에 사람은 없는데 누군가 텐트를 쳐 놓았습니다.
역시 주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사람이 없으니 편하게 정자에 앉아 바람을 즐깁니다.
바다 건너는 당연히 북녘 땅이겠지요.
철조망이 바닷가에 얽혀 있습니다.
지금도 바닷길로 간첩이 드나들까요?
정자에 앉아 가져온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식혀 봅니다.
아이스팩을 넣고 보온박스에 담아 왔더니 수박이 아직 시원하네요.
후텁지근하지만 그래도 햇볕이 쨍쨍한 날은 아니라 다행입니다.
다시 둑방으로 나섭니다.
풀을 깎은 흔적은 있는데 여름날 비 한번 오고 나면 언제 깎았느냐 싶게 풀들이 웃자라지요.
노출된 다리에 풀이 쓸립니다.
깎아 놓은 풀들이 쌓인 길이 걷기에 불편합니다.
편한 길을 찾아서 걷는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도는 평화나들길 코스라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교동도를 한 바퀴 도는 길이 회주길이라는 이름을 가진 길이군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우리 같은 '뚜벅이'보다는 한결 수월하겠지요.
물론 우리는 자동차와 발 두 가지를 이용하기는 하지만요.
철조망 너머 갯벌이 보입니다.
지리적으로 북한과 지척이니 정말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습니다.
이럴 때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 나라 상황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평소에는 그런 걸 잊고 무심코 살다가 말이지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이제 반을 걸은 셈이지요.
볼거리도 없으니 바닥만 보고 걸어갑니다.
자연환경이 좋아서인지 낯선 새와 화려한 나비가 눈에 띄는군요.
그런 생물이 살기에는 도리어 좋은 환경이겠지요.
둑방길을 돌아듭니다.
푸른 벼들이 자라고 있는 논과 그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평화스러운 시골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 풍경을 보니 아까 본 철조망은 잊고 다시 마음이 느긋해지는군요.
1시간 30분 정도 걸었나 봅니다.
습도가 높아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오늘 운동량은 이걸로 충분하네요.
이제 차에 올라 교동도를 빠져나가기로 합니다.
아까 왔던 길보다 빠른 길로 내비가 안내를 합니다.
그래도 결국 교동대교를 건너야 하니 대룡시장과 화개정원 근처를 지나야 하고요.
가는 길에 잠깐 고구저수지 주변에 차를 세웁니다.
이번 여름에 활짝 핀 연꽃을 못 보았는데 여기 연꽃이 만개를 했네요.
고구저수지에 만들어진 데크길을 따라 걸으며 연꽃 구경을 합니다.
연꽃은 커다란 연잎에 빗방울을 담고 있는 모습이 가장 예쁘지 않은가요?
어제 비가 와서인지 오늘 연잎도 영롱하게 투명한 구슬 하나 품고 있네요.
단정하게 오므린 연꽃 봉오리도 있고, 벌써 제각기 흩어진 옆꽃잎도 있고, 부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군요.
빠른 걸음으로 고구저수지를 돌아본 후 강화도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