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여행기 16 -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수크레로
아침이 밝았다.
늦잠을 자고 아침을 먹으러 4층 식당으로 헉헉거리며 올라간다.
아직도 고산증에 적응이 안 되네.
일출 투어에 안 간 사람은 우리와 재석씨, 그리고 고산증으로 복시현상이 있다는 한 명.
재석씨는 아무래도 한국에 다시 다녀온 후유증이 있는지 고열에 시달리고 얼굴도 퉁퉁 부었다.
보기에 안쓰럽다.
일출 투어는 새벽 3시에 나가야 했으니 대부분 잠에 빠졌는지 식당에 사람들이 안 보인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호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둘러본다.
오늘이 이곳 마지막 날 아닌가.
그러다가 시장 구경도 할 겸 밖으로 나갔다.
어제와 그제는 거리에 시장이 서더니 오늘은 아니군.
우유니 상설시장과 골목 구경이나 하자.
주로 농산물과 생필품을 파는 상점이 도로변에 줄지어 있다.
무언가 상품이 제한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볼리비아가 그리 잘 사는 나라가 아니고 우유니가 그리 큰 도시도 아니기 때문이리라.
어젯밤 모자가 날아가는 바람에 모자가 없는 짝꿍 모자를 살까 하고 여기저기 둘러봤는데 마땅치가 않다.
대부분 농민들이 쓸 만한 모자가 있는 정도군.
여행 중 남미의 강렬한 햇볕을 가릴 모자는 필수품인데 가는 데마다 모자만 찾게 생겼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마트에 들어갔다.
사육동물이 많아서인지 햄과 소시지 등 육가공품을 잘라서 파는 곳도 보인다.
맥주도 많군.
여기는 우유니 맥주만 파네.
물이 좋아서 맥주가 발달했는지 아니면 반대로 물이 나빠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맥주 종류가 다양하고 맛도 좋다.
물건 구경을 하다가 아이스바 하나를 골라 짝꿍과 나누어 먹기로 했다.
맛은 괜찮은데 아이스바 가격이 우리 돈으로 2000원쯤 한다.
어제 먹은 저녁 밥값의 반이나 되네.
볼리비아 물가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비싼 셈이다.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볼리비아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수입품인지도 모르겠다.
호텔에서 잠시 쉰 후 짐 정리를 한다.
오늘 점심을 먹고 우유니에서 수크레로 가는 일정이 남아 있다.
버스에 6시간 이상 시달려야 하니 오전에 여유있게 휴식을 취한 것이다.
점심 메뉴는 시금치 스프에 닭고기, 퀴노아밥이다.
퀴노아로 지은 밥은 처음 먹어 본다.
퀴노아는 수퍼푸드라는데 거친 느낌이 든다.
입 안에서 깔깔하군.
오후 1시에 우유니에서 출발했다.
길가에 우락부락한 근육질 바위들이 연달아 모습을 드러낸다.
라파즈에서 올 때는 밋밋한 산이었는데 여기는 다른 풍경이다.
다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하기는 하지만.
가끔씩 밭이 보인다.
무언가 골을 지어 농작물이 심겨 있다.
여기도 감자를 주로 심겠지만 그래도 녹색을 보니 마음이 환해진다.
다른 지역도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페루 고산지대도 그렇고 볼리비아 고산지대도 그렇고 정말 헐벗음 그 자체이다.
얼마쯤 갔을까?
붉은 지붕을 인 도시가 나왔다.
꽤 큰 도시이다.
짝꿍이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더니 포토시라고 한다.
우유니도 포토시주에 속하니 포토시는 포토시주의 주도쯤 되리라.
기차무덤의 기차가 포토시에서 나온 은을 나르던 기차라고 했었지.
지금은 폐광이 되어 상처뿐인 영광으로 도시가 몰락했다는데 포토시 구시가지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고 한다.
구시가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는 하다.
가다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버스를 한번 세웠다.
돈을 내고 사용하는 공중화장실이다.
화장실은 냄새 나는 건 물론이고 몹시 지저분하다.
당연히 휴지도 비치되어 있지 않고.
누구 말대로 돈 내고 쓰는 화장실이 왜 더러울까?
돈을 받으면 제대로 관리를 해야 하지 않나?
화장실에 다녀오니 친구가 구토를 하고 있다.
멀미약을 먹었어도 오랜 시간 낡은 버스를 타고 흔들리니 몸이 반항을 하고 있나 보다.
몇 번 등을 두드려 주었지만 갈 길이 먼데 어쩌나.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와서 아는 스페인어라고는 인삿말 정도인데 며칠 되니 저절로 화장실을 뜻하는 단어를 알게 된다.
'Bano'
사실 어디를 가나 화장실 사용 문제는 중요하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화장실은 가히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
깨끗하고, 화장지 비치되어 있고, 사용요금도 받지 않고.
가다가 친구 상태가 안 좋아져 다시 버스를 세웠다.
앞자리에서 친구 수발을 든 인솔자 표정도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답이 없다.
다시 버스가 달린다.
우유니에서 출발한 지 7시간쯤 되어 수크레에 도착했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니 택시로 옮겨 타라고 한다.
저녁 무렵 추적추적 비는 내리는데 짐을 옮기고 네 명씩 맞추어 택시를 타느라 어수선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호텔이 있는 골목이 좁아 대형버스가 들어갈 수 없었다.
방 배정을 받고 일단 근처 음식점으로 가서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호텔에 돌아와 둘러보니 여기 역시 호텔은 무척 낡았는데 분위기는 좋다.
스페인 점령 당시 지어졌다는 호텔 中庭도 예쁘고 미로처럼 돌아가는 방의 배치도 독특하네.
밤이 늦었지만 내일 오전 일정이 비었으니 그래도 마음이 여유롭다.
차멀미로 지쳐 초주검이 된 친구가 걱정되어 가방을 뒤져 누룽지를 찾는다.
로비에서 얻은 온수를 보온병에 담고 누룽지를 챙겨 2층 친구 방에 찾아가니 룸메이트 말이 친구는 그대로 쓰러졌단다.
내일은 친구 컨디션이 괜찮아야 하는데...
볼리비아의 마지막 도시 수크레의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