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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10 - 페루 후추이 쿠스코 트레킹 (4)

솔뫼들 2023. 3. 1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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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쉬었다 싶어 배낭을 메고 앞장서 걷는데 잠깐 멈추라는 후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하니 소년의 말이 윗길로 가면 잉카트레일 일부 구간과 만난다고 했단다.

그러니 조금이나마 잉카트레일 구간을 걷는 것이 어떤가 하는 것이 후안의 의견이었다.

다만 이 길은 경사도가 약해 걷기에 수월한 반면 잉카트레일은 경사가 급하지만 반대로 거리는 짧단다.

선택을 하라고 한 모양인데 하필 짝꿍이 당첨되어 잉카트레일로 가게 되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뒤돌아 걷는게 억울하네.

 

 그렇게 갑자기 코스가 바뀌었다.

후안은 식은 죽 먹는 것처럼 훌쩍 걷는데 가만히 보니 가파르고 길도 없는 험한 곳이다.

물론 고도는 당연히 4000m를 넘을 것이고.

후안을 따라 걷는데 정신이 없다.

여기저기서 헉헉대며 자동차가 급정거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10분쯤 가다 쉬고 10분쯤 가다 쉬고를 반복한다.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두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잔뜩 쓰고 걷는다.

힘이 든다는 말이겠지.

 

 오늘도 유사장님과 강회장님은 자꾸 내게 고도를 물어보신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해발고도가 4300m이다.

어제보다 낮은데도 급격하게 고도를 높이니 폐가 힘들어하는 거였군.

 

 

 

  어느 만큼 왔을까?

앞에 원주민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자태가 독특해 사진 찍고 싶어하는 걸 눈치 챘는지 자신과 함께 사진 찍는 대가로 돈을 내라고 한다.

양을 치는 노인이라는데 머리에 쓴 모자에 꽃장식이 화려하다.

후안에 따르면 특별한 때에만 그렇게 꽃장식을 한단다.

그러니 노인 입장에서는 자신의 모습이 자랑스러웠겠지.

그렇지만 돈을 내고 함께 사진을 찍는 건 사양한다.

 

 노인과 헤어져 걷다가 쉬기 좋은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앉는 바람에 다들 근처에 엉덩이를 내려놓는다.

우리가 힘겨워 보여 위로해주고 싶었는지 후안이 풀잎을 하나 뜯어다 풀피리를 만들어 구성지게 불어댄다.

어제 저녁에는 악기를 불더니 재주도 많구만.

여러 번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어느 지역이나 그 지역에서 나는 자연을 가지고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지 않나 싶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세계테마기행을 보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나무 껍질이나 이파리로 악기처럼 부는 걸 본 적이 있다.

 

 

 어릴 적 시골에 살 때 어머니가 꽈리가 발갛게 익으면 꽈리 씨를 조심스럽게 빼내고 그걸로 악기처럼 부시는 걸 본 적이 있다.

나도 따라 해보지만 꽈리를 터뜨리지 않고 씨를 빼내기도 생각처럼 쉽지 않고 소리를 내기는 더 어려웠었지.

나는 외모와 성격 등 어머니를 빼닮았다 하는데 눈썰미와 그런 재주는 어머니를 닮지 못 했다.

이런 소리를 하면 누구 탓하느냐고 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무덤에서 뛰어 나오실라...

 

 길이 순해졌다.

이제 마음 편히 걸어도 되지 않을까.

오늘도 역시나 하늘은 심술을 부려 여러 번 옷을 입었다 벗었다 성가시게 했지만 더 이상의 악천후가 아닌게 얼마나 다행인가.

 

 

 마음이 놓이니 다시 길가에 눈길이 간다.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피어 있다.

앙증맞게 핀 노란꽃을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고 있자니 후안이 말한다.

이름이 '베이비슈즈 플라워'라고.

그러면서 꽃잎이 벌어지면 꽃 모양이 아기신발처럼 된단다.

그래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얼마나 예쁜 이름인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드디어 저 아래 마을이 우리가 점심을 먹는 곳이란다.

순간 끈이 툭 끊어진 것처럼 긴장이 풀렸다.

오후 12시 40분, 흐느적흐느적 걸어서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에서는 차량으로 먼저 도착한 요리팀이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은 다양한 고기를 호일에 싸서 구덩이에서 익히는 진흙구이(?)가 점심이라고 한다.

거기에 추가로 돈을 내고 기니피그 고기까지 더했다.

호기심 많은 분들을 누가 말릴까.

 

 그런데 가만히 보니 점심을 먹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

이제 구덩이에 넣을 고기와 감자 등을 호일에 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보고 쉬라면서 유치원 운동장이라고 하는 곳에 돗자리를 펴 놓았는데 햇살은 강한데도 바람이 세니 금세 몸에 한기가 들었다.

그래서 차 안으로 도망치듯 가서 쉬고 있는데 다시 두통이 엄습한다.

이제 진짜 적응이 되었어야 하는데 아직도 고산증세네.

 

 다른 분들도 추워하니 가이드들이 힘을 합쳐 금세 텐트 한 동을 쳤다.

의자까지 준비해 주니 정말 고맙군.

좀 기다려서 한 상이 차려졌다.

소고기에 닭고기, 라마고기, 기니피그 고기까지 고기라는 고기는 남미에 와서 다 먹어보는 것 같다.

구운 감자와, 옥수수, 바나나까지 더해 근사한 점심상이 마련되었다.

 

 

 모두들 흥분한 표정인데 나는 입맛이 없다.

그나마 먹을 만한 것을 골라 맛을 본다.

기니피그 고기도 짝꿍이 권해 조금 입에 넣어 본다.

미각이 발달하지 않아서인지 특별히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네.

 

 먹는 것 좋아하시는 유사장님은  기니피그 고기를 드시면서 기니피그가 눈을 뜨고 쳐다봐서 불편하다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구운 기니피그가 통째로 쟁반에 놓여 있다.

재미있는 광경이지만 인간이 잔인한 동물이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된다.

평소 육식을 싫어한다던 강회장님은 그래도 이것저것 잘 드신다.

여기에서 고기를 제외하면 먹을 것이 별로 없기는 하지.

 

 자꾸 머리가 아프기에 왜 이렇게 두통이 심할까 싶었더니 현재 있는 곳이 해발 4000m가 넘었다.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점심을 먹고 얼마나 걸어야 하나 이야기가 나오니 내가 두통에 시달리기도 하고 다들 점심을 먹고 꾀가 나기도 해서 차로 이동하고 싶어 했다.

강회장님은 더 걷고 싶어하셨지만 중론에 따라 의견을 굽히셨고.

 

 차에 오르자 피로 때문인지 잠이 몰려온다.

그런데 가다가 전망이 좋은 곳에서 차가 섰다.

바람을 쐬면서 보니 오늘도 무지개가 떴다.

후추이 쿠스코 트레킹은 무지개로 시작해서 무지개로 끝나는구나.

기분이 좋다.

 

 

 이제 우리도 볼리비아로 넘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본래 일정표에는 푸노로 가서 티티카카호를 둘러보는 것이었는데 사정에 따라 먼저 간 일행을 따라 우리도 내일 볼리비아로 간다.

볼리비아로 간 사람들 중에서 유사장님이 올리신 사진을 보고 부럽다, 약이 오른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자신의 선택이었으니 나름대로 잘 놀고 있겠지.

페루에서의 마지막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