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여행기 5 - 페루 쿠스코 근교 (2)
점심 식사 후에 간 곳은 피삭.
'리틀 마추픽추'라고도 불린다는 피삭은 작은 마을이다.
마추픽추와 모양과 형태가 비슷해서 '리틀 마추픽추'라는 별명을 얻었겠지.
피삭에 입장을 하고 보니 눈앞에 어마어마한 돌로 만든 유적이 펼쳐진다.
높이 차이를 두고 건설된 유적인데 올라가려니 엄두가 안 난다.
그렇다고 지레 포기할 수는 노릇이고.
심호흡을 하고 계단을 하나씩 오른다.
그런데 생각보다 숨쉬기에 불편함이 없다.
고도계를 작동시켜 보니 해발 2800m 정도네.
그 새 쿠스코에서 적응이 되어 그보다 낮은 지역에 내려오니 훨씬 수월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고산증에 취약한 나도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더 편하겠지.
돌로 만들어진 계단이니 쉬엄쉬엄 오른다.
뙤약볕을 피해 잠시 그늘에서 쉬기도 하면서.
적도에 가까운 곳인데다 계절적으로 여름이어서 그런지 햇살이 무척 강하다.
꼼꼼하게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다닌다고 해도 여행이 끝날 때쯤이면 피부가 거무스름해지리라.
그래도 고산지대라 기온이 그리 높지는 않은데 수시로 비가 내린다.
우기이니 어쩔 수는 없지만 잠깐 내리는 비 때문에 우산은 필수품이 되었다.
저녁 무렵이 되면 기온이 급강하해 여름이어도 다운 재킷을 입는 것이 좋을 정도가 되기도 한다.
사계절이 공존하다시피 하니 적응하기 쉽지 않네.
한 층씩 올라갈수록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꼭대기에 오르니 멀리 산 중턱에 있는 자그마한 건물(?)이 보인다.
저기는 어떻게 올라가서 건물을 지었을까?
건축재료는 다 돌일텐데 옮기기도 쉽지 않았겠다.
태양신을 숭배했던 잉카인들이 태양이 비치는 시간과 각도를 맞춰 신전(?)을 지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농산물을 보관하는 창고도 산 중턱 절벽에 지어 놓았다니 놀랄 일이다.
잉카제국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가 15C, 피삭은 그 당시 지어진 곳이라고 한다.
남아 있는 기록적인 자료는 없다지만 볼수록 신기한 것 투성이이다.
잉카제국이 위치했던 곳이 고산지대이다 보니 잉카인들은 주로 계곡에 몰려 살았던 듯하다.
성스러운 계곡도 그렇고, 이곳도 마을이 위치한 곳은 산과 산 사이이다.
발 아래 돌로 만들어진 유적과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전망을 즐겨 본다.
이제 버스에 올라 쿠스코 호텔로 돌아간다.
버스에서 창 밖을 보니 가끔 커다란 돌이나 나무로 도로를 막아 놓은 것이 보인다.
처음에는 자연재해인가 싶었는데 원주민들이 시위를 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옆으로 돌아가면 되니 큰(?) 문제는 아닌데 그들이 시위를 하는 방식을 보면서 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라도 자신들의 뜻을 표현해 중앙정부에 전달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작년 말 대통령 탄핵으로 페루의 정치적인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알았지만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간다.
우리 여행에 아무 영향이 없어야 하는데...
호텔에 돌아와서 어디에서 저녁을 먹을까 의논을 했다.
재석씨가 한국 식당 '사랑채'를 추천했다.
10여분 걸어 사랑채에 도착했다.
사랑채는 한국인 부부가 하는 한국 음식점인데 한국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유명인들이 다녀갔다는 메모가 벽에 붙어 있다.
음식 맛을 기대해도 될까?
외국에 가서 한국 식당에 가면 대부분 값은 비싸면서 맛은 그저 흉내내는 정도에 그쳐 실망하곤 했는데...
우리나라를 떠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김치찌개, 된장찌개, 김치볶음밥, 제육볶음 등 익숙한 메뉴가 보이니 일단 반갑다.
각자 취향대로 음식을 주문했다.
나는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친구는 맛이 깔끔해 좋다는데 내 입맛에는 별로였다.
차라리 파전이 낫지 않았나 싶다.
옆 테이블에서는 소주까지 마셨다고 하네.
외국에 나오면 소주가 무척 비싸지는데 꽤나 마시고 싶었나 보군.
술 좋아하는 사람들 정말 못 말린다니까.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들으니 재석씨가 스마트폰을 분실했다고 한다.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오는 버스 안에서 음악을 듣고 있다가 내렸는데 버스에 떨어뜨린 것 같단다.
현지 가이드와 함께 버스에 가서 찾아보겠다고 하는 재석씨 표정이 어둡다.
사실 현대인에게 스마트폰이 없으면 많은 일이 정지된다.
여행 중에는 사진을 못 찍는 건 물론이고, 내가 원하는 곳을 찾기도 쉽지 않고, 남미에서는 특히 통번역도 안 된다.
당연히 일행들끼리 소소한 소통과 연락을 할 수도 없고.
버스에 스마트폰을 찾으러 간 재석씨가 돌아왔다.
버스에서 좌석 사이를 샅샅이 뒤졌는데 스마트폰을 못 찾았다고 한다.
룸메이트 '강회장님 스마트폰으로 위치 추적을 했을 때 분명히 있는 곳이 나왔는데...' 하면서 고개를 흔든다.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건 좋지 않지만 아무래도 최신형 스마트폰이라 견물생심이라고 누군가 손을 댔나 보다.
우울한 일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별 일이 다 있지만 이런 어두운 사건으로 하루가 저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