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우여곡절 深雪山行 무등산 (2)

솔뫼들 2023. 2. 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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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분쯤 걸려 증심사 입구에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 걸으며 보니 여기는 이서분교쪽과는 다르게 들뜬 표정의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이미 오후에 접어들었는데도 등산객들이 많고, 산책 삼아 설경을 보러 나온 사람들도 꽤 보인다.

 

 지금이 오후 1시 15분.

대장은 오후 5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했다가 사람들의 항의를 받아 오후 6시에 버스를 출발시킨다고 했다.

보통 서석대까지 다녀오는데 5시간 걸린다.

거기에 눈까지 쌓였으니 시간이 더 걸릴텐데...

체력 소모도 훨씬 클 테고.

 

 일단 산행을 시작한다.

눈이 녹지 않아서인지 길이 많이 미끄럽지는 않다.

다만 여기저기 푹푹 빠지는 눈에 바닥을 골라 발을 디뎌야 하니 아무래도 속도는 좀 늦어진다.

 

 

 아웃도어 장비와 먹을거리를 파는 중심 상가는 도리어 활기를 띠는 듯하다.

알프스 마을 풍경을 보는 듯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지는 걸.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몇몇 보인다.

저 사람들은 어디까지 갈까?

혼자 안내산악회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체력이 아주 좋은 사람들이다.

뛰어올라가다시피 하면 무등산 정상으로 인정하는 서석대를 다녀올 수는 있겠지.

 

 드물게 보는 설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어디까지 갈까 고민하지 말고 그냥 이 시간을 그냥 즐기자.

걷다 보니 8년 전에는 못본 것 같은데 '무등산 노무현길'도 있었네.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 시절 이곳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지역 사람들의 성원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다.

그걸 기려 노무현 대통령 사후  노무현재단에서 이곳에 '무등산 노무현길'이라는 표지석을 세웠단다.

 

 

 정말 기막힌 설경이 펼쳐진다.

눈을 뒤집어쓴 나무며 다리며, 절집 지붕이며 정말 황홀하다.

어제 눈이 많이 내렸고, 기온이 낮아 녹지 않았기에 가능한 풍경이다.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어도 멋진 사진이 나오겠는걸.

두리번두리번 경치 구경하느라 조금 걸음이 느려진다.

 

 입구에 있는 절은 문원정사였다.

배롱나무인가 아니면 모과나무인가 수피가 반질반질한 나무도 눈을 이고 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한층 무겁게 눈으로 등짐을 진 것 같고.

다리 난간에 쌓인 눈은 꼭 식빵을 구워 놓은 것처럼 볼록볼록하네.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자 눈[雪]을 반사한 빛에 눈[目]이 부시다.

배낭에서 얼른 고글을 찾아 보니 빈 통이다.

어라, 고글을 어디에 빠뜨렸을까?

지난 여름 평창 청옥산에서 잃어버렸다가 찾았는데 또 어디에 떨어뜨렸지?

친구가 선물해준 고글이 가볍고 편해 좋았는데 이 고글과의 인연이 여기까지인가 보다.

술술 무언가 잃어버리는 자신이 한심하지만 얼른 마음을 내려놓는다.

 

 

 증심사를 지난다.

전에는 원효사에서 출발해 무등산 옛길로 서석대에 올랐다가 장불재를 거쳐 증심사로 내려왔었지.

증심사 부도가 눈[雪]모자를 쓴 모습이 무슨 설치미술 작품같이 느껴진다.

눈은 세상만사 모든 것을 덮은 포근한 세상을 만들었다.

연말연시를 맞아 사람들 마음도 이렇게 깨끗하고 포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제 슬슬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런데 계곡가에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열매가 보인다.

무언가 싶어 가까이 가 보니 감나무에 감이 그대로 달려 있다.

저절로 홍시가 된 감이 눈을 맞고 있는 풍경이라니...

이 동네 새들 엄청난 호사를 누리겠는걸.

 

 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다.

내려오는 사람이 있으면 발을 눈 속에 담그고 비켜주어야 하는 길이다.

그래도 이렇게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만 얼마나 고마운가.

 

 

  경사가 있다 보니 힘이 들고 당연히 몸에 열이 난다.

한낮에도 최고기온이 영하라고 해서 두꺼운 다운자켓을 입은 것이 착오였다.

겉옷을 벗을 엄두는 안 나고 목에 두른 버프만  벗었다.

손은 여전히 시린데 모자에 싸인 머리 속은 땀범벅이 되었네.

 

 앞서가던 친구는 산길에서 한쪽으로 벗어나 다운자켓을 벗고 티셔츠 바람으로 걷는다.

부럽지만 따라할 자신은 없으니 더운 걸 참으며 가야겠지.

체온 조절이 안 되니 힘이 더 들지만 하는 수 없다.

 

 제대로 쉬지도 못 하고 걷는다.

공연히 마음이 바쁘니 수시로 시간을 보게 된다.

그제가 동지였으니 겨울 해는 얼마나 짧은가.

오후 4시 30분이 되면 어스름이 내려올텐데, 어두워지면 눈이 쌓인 곳을 구별하기도 어려워질텐데...

머리 속이 마구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