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여행 (8); 섬티아고 순례길에서 (2)
이제 네 번째 예배당을 찾아가는 길이다.
아까 세 번째에서 네 번째로 가는 이정표가 있었는데 가이드 말에 따르면 언덕 너머 가면 바로 네 번째 예배당이 이어진단단다.
작은 섬이다 보니 길이 다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다.
활기차게 네 번째 예배당을 찾아 길로 나선다.
길 옆에는 가을걷이를 위해 베어 놓은 참깨더미가 보인다.
비를 맞아 축축해졌으니 다시 마를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겠네.
해바라기꽃도 잔뜩 피어 있군.
덕분에 화사한 가을길이 펼쳐진다.
얼마 안 가서 바로 네 번째 예배당이 보인다.
'4.요한의 집'이다.
요한의 집에 거의 다다를 무렵 자동차 한 대가 서더니 차에서 두 사람이 나와 후딱 사진을 찍고 사라진다.
차를 타고 섬티아고 순례를 하는 모양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지 않고 자동차를 타고 작은 예배당을 순례한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작은 섬, 작은 예배당의 본래 취지에 걸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한의 집'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은 다음 5번을 향한다.
'5. 필립의 집'은 마을을 거쳐 가게 되어 있다.
역시 붉은색 지붕을 인 집들이며 바알갛게 익어 매달린 감이며, 나지막한 담장이 정다운 길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을길을 걸어가는데 반대편에서 싱그럽게 자전거를 탄 젊은 처자가 두 명 온다.
오르막길이라 자전거랑 싸우다시피 힘겹게 페달을 밟고 있는 친구들에게 엄지를 들어 힘내라고 격려를 해 주면서 걷는다.
외국인 친구가 방문해 자전거를 타고 섬티아고 순례를 하는 계획을 세운 것 같은데 그 친구가 자기 나라에 가도 정말 좋은 추억이 되고 오래도록 한국을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내려가는 길에 보니 오른편으로 카페가 보인다.
'갤러리 노두 & 카페'라고 되어 있다.
반가운 마음에 부지런히 걸어가 보니 아직 제대로 운영이 되고 있지 않았다.
스타벅스 커피를 자판기에서 구매해 스스로 커피를 내려 마셔야 한다.
다른 음료는 아직 하나도 없고.
조금 실망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커피 한 잔 내려 잠시 의자에 앉아 쉰다.
카페를 지키는 분에게 물으니 조만간 카페는 자리가 잡힐 거라는 말을 한다.
다양한 메뉴도 개발할 예정이라고 하면서.
섬티아고 순례길이라고 하면 천주교와 연관성을 떠올리게 되는데 몇 개 섬 주민들은 대부분 개신교도들이라고 하네.
하기는 뿌리가 같으니 그게 무어 그리 중요하겠는가.
다 마시고 풍경을 즐기기에는 시간에 쫓길 것 같아 커피를 손에 들고 길로 나선다.
얼마 걷지 않아 오른편으로 필립의 집이 나온다.
'필립의 집'은 외관이 다른 곳과 다르게 좀 특이하다.
어느 원시 부족 거처 같기도 해 예배당 같은 느낌이 안 든다고나 할까.
물고기 비늘 같은 모양으로 지붕을 이었고,벽체는 붉은 벽돌로 마감을 했다.
갈색의 문까지 색상이 비슷해 통일감을 주는군.
길은 다시 노둣길로 이어진다.
대기점도에서 소기점도로 이어지는 길이다.
바다 사잇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이 재미있네.
배를 타고 병풍도로 들어가고, 병풍도에서 노둣길로 대기점도로 이동한 후 다시 노둣길을 이용해 소기점도, 소악도로 가야 한다.
노둣길을 벗어나자마자 '보물섬 증도'를 홍보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등은 본래 지도읍에 속했다가 증도면이 생기면서 증도면에 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증도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이 된 섬이다.
증도는 증도대교로 지도읍과 연결이 되어 차로 들어갈 수 있는데 갯벌과 태평염전, 짱뚱어다리, 신안해저유물 발굴기념비 등 볼거리가 많다.
'보물섬'이라고 주장하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라고나 할까.
이제 소기점도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작은 연못 가운데 설치물이 하나 보인다.
자세히 볼 겸 연못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아하! 이게 바로 '6. 바로톨로메오의 집'이구나.
색유리로 만들었는지 가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아주 예쁘다.
연못에 비친 모습은 더욱 근사하군.
섬티아고를 찾는 순례자들을 위해 주민들과 신안군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옆으로 야트막한 산이 이어진다.
여기에는 보랏빛 앙증맞은 꽃이 줄줄이 피어 있네.
초롱 모양을 한 이 꽃이 모싯대였나?
한동안 열심히 식물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다가 그마저 좀 시들해져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시 식물 공부에 시동을 걸어보아야겠다.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 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 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류시화의 < 길 위에서의 생각 >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