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울릉도 넷째날 - 울릉도 떠나기 프로젝트 (1)

솔뫼들 2022. 7. 2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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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밝았다.

아침거리도 없고 방에 아침 9시까지 퇴실해 달라는 안내문까지 붙어 있어 약간 기분이 상한 상태로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울릉도에서 나가는 배를 오늘 못 탄다고 해도 이 숙소에서는 묵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면서.

 

 일단 아침 일찍 강릉행 여객선이 출항하는 저동 여객선터미널에 나가 상황을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아침을 못 먹었으니 도동에서 유명하다고 알려진 오징어먹물빵을 사러 '오브레'라는 가게에 들렀다.

어제 물어보니 품절되었다고 했었지.

아침 8시부터 가게 문을 연다고 했다.

 

 가게는 오전 8시 전에 문을 연 것 같은데 벌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도 조금 기다려 오징어먹물빵을 한 상자 샀다.

보통의 빵집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오직 오징어먹물빵만 파는 집이었네.

안쪽에서 쉴 새 없이 빵을 만드는 모양인데 수요를 감당하지 못 하나 보다.

지역 특산물을 특화한 상품이라 행자부장관 상을 탔다는 안내문도 벽에 붙어 있다.

울릉도에서 많이 나는 오징어먹물에 해양심층수, 호박앙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몸을 건강하게 해 주는 빵이겠군.

 

 

 빵을 사서 가방에 넣고 저동행 버스에 올랐다.

저동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오늘 오후에 여객선이 출항을 한단다.

혹시 취소되는 표가 있으면 승선이 가능하다고 대기자 명단이 작성되고 있었다.

그런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왔을텐데 아쉽네.

 

  우리는 일곱번째로 대기자 명단에 이름과 연락처를 써 놓았다.

1번으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6시에 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취소표가 많지는 않다는데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해 보아야지.

 

 밖으로 나와 음료를 사서 큰 나무 아래 쉼터에 앉았다.

이른 시간임에도 오늘 울릉도를 빠져나갈 사람들이 다른 스케줄 없이 삼삼오오 짐을 들고  돌아다닌다.

일요일에 울릉도를 나갈 사람들이었으니 사흘이나 지체된 것이다.

답답하기는 했겠다.

어제 독도전망대에서 만난 중년 남자들이 배가 안 뜨는 바람에 며칠 술에 절었다는 소리를 했었지.

비바람에 갈데가 없으니 숙소에서 술만 마셨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나마 나은 셈이었네.

 

 

 아침으로 오징어먹물빵과 음료를 먹으며 과연 오늘 나갈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한다.

열심히 생각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만.

배가 뜬다고 해도 오후 시간이니 친구가 오전에는 어차피 하는 일이 없다면서 유람선 선사에 전화를 했다.

유람선도 오늘 오전에 출항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도 바람이 심하다는 말이겠지.

 

 쉼터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오늘 배가 들어오면 울릉도에서 못 나간 사람들까지 더해져 숙소가 모자란다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잠자리를 못 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바로 앞에 보이는 독도호텔에 전화로 문의하니 오늘밤 숙박은 가능하다고한다.

결국 독도호텔에 가서 저녁에 온다고 하고 짐을 맡겼다.

 

 

 그런 다음 행남해안산책로를 걷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도 산책로 문은 굳게 닫혀 있다.

그 정도로 위험한 건지 아니면 공무원들의 태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수 없이 방파제를 따라 걸어 등대까지 가기로 했다.

 

지치고 외로운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는가

마침내 세상에 등 돌리고 싶은가

그대여, 여기 울릉도 옛길로 오시라

성난 사자처럼 덤벼드는

행남 바닷길을 걸으면

세상에 두려운 것이 파도뿐이겠느냐만

바다와 기꺼이 승부를 보는 자를 볼 것이다

행남 등댓길 잘 늙은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삶이란 얼마나 버겁고 먼 길인가 물어라

실바람에 흔들리는 메마른 솔가지 하나

고단한 당신의 등을 쓰다듬어 줄 것이다

 

늙은 소나무 숲길이 끝나는 자리에

살구꽃 한 그루 곱게 피어 연분홍빛

삶은 여전히 유혹적인 것임을

봄날의 한낮이 몸소 보여줄 것이니

그늘진 동백숲길 지나

잘 생긴 소나무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저동 옛길은 절로 잘 익은 노인처럼

살아갈 길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있다

 

   전종호의 < 울릉시편 2 -  울릉도 옛길> 전문

 

 가는 길에 촛대바위가 우뚝 솟은 모습이 보인다.

이것만으로도 저동 앞바다가 꽉 차는 느낌이다.

가다 보니 촛대바위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네.

방송사 카메라까지 출동을 한 걸 보니 대단한 행사 아닌가 싶다.

 

 

 가까이 가서 보니 '6.8 독도 미공군 폭격 어민 희생자 위령제'라 쓰인 깃발이 펄럭인다.

어제 독도박물관에서 1948년 주일 미공군이 독도에서 폭격 연습을 할 때 어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리지 않아 근처에서 조업을 하던 어민들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쟁과 상관 없는 일반인들이 피해를 보는데  왜 그랬을까?

오늘이 6월 8일이니 그 전시물에 나온 피해자 위령제가 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피해자들은 일상상활을 하다가 졸지에 不歸客이 된 것이니 가족들은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했을까?

아직도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니 하루속히 그 원한이 풀리기를 고대해 본다.

 

 행사장을 지나 등대가 보이는 곳까지 걸어갔다.

오늘 역시 바람이 꽤나 세차다.

날씨가 쾌청하니  산을 배경으로 바로 앞에 보이는 저동이 자그마한 동네로 보이네.

우리 마음은 뒤죽박죽이지만 마을은 아주 평화로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