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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여행 둘째날 - 여수 금오도 비렁길 종주를 마치고

솔뫼들 2022. 4. 1.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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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장지 마을길로 들어섭니다.

길 옆 밭에는 허수아비가 비스듬하게 서 있네요.

팔을 들고 벌을 서는 것 같아 안쓰럽군요.

허수아비는 저렇게 항상 팔을 벌리고 있으니 팔이 많이 아프겠다고 했더니 친구 왈,

"그러니까 서 있는 자세가 삐딱하잖아요."

요즘 새들은 똑똑해 허수아비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던데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햐! 여기는 아직 나무로 만들어진 전봇대가 있습니다.

요즘 전봇대는 거의 다 시멘트로 만들어졌는데 말이지요.

도시에서는 대부분 電線이 地中化되어 있고요.

전봇대로 쓰이던 나무는 속성수에다 곧게 자라는 낙엽송이라고 하지요.

한때 급하게 산림녹화를 하느라 많이 심었던 나무입니다.

 

 

  마을 입구에 팽나무 노거수도 있습니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네요.

줄기에 재미있는 모양을 만든 나무도 보입니다.

노래연습장도 있군요.

섬마을이라고 해도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새삼스레 지난 여름 홍도에서 나이트클럽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마을 한가운데 어르신들 몇 분이 해바라기를 하고 계시군요.

시간이 이르니 굳이 택시를 부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친구가 어르신들께 마을버스가 있느냐고 여쭈니 우리 보고 시간 잘 맞춰 왔다고 하십니다.

오후 3시 30분에 마을버스가 오니 저쪽 대합실 가서 기다리면 된다고 하시네요.

이 버스를 이용해 여천항으로 가면 운좋게 오후 4시 20분 배를 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으니 좋기는 하네요.

서둘러 걷느라 힘은 많이 들었지만 말입니다.

 

 

 대합실이라고 자그마한 건물이 바닷가에 서 있군요.

다시 한번 배 운항시간을 확인하고 대합실 안 의자에 앉아 쉽니다.

비렁길을 걸은 것 같은 사람들 4명에 동네 어르신으로 보이는 분 한 분이 계십니다.

동네 어르신은 대합실을 지키며(?) 전화 문의에 대응하시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중년 여성 두 명도 비렁길 종주를 한 것 같습니다.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 친구 덕분에 종주를 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친구 사이에서도 한 명이 의지가 굳고 추진력이 대단하다고 소문이 난 모양입니다.

여수에서 첫배로 들어와 역시 마지막 배로 나가는 일정인가 봅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종일 고생한 몸을 풀어주는 맨손체조를 잠깐 합니다.

여기저기 몸이 뻑뻑합니다.

비슷한 자세로 계속 걷기만 했으니까요.

 

 

 오후3시 35분쯤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습니다.

여천항 가느냐고 확인을 하고요.

오후 4시 20분 배를 탈 수 있다고 합니다.

친구는 연신 빨리 걸어서 버스를 이용할 수 있었고, 일찍 금오도를 나갈 수 있으니 잘 했지 않느냐고 합니다.

당연히 저도 뿌듯하지요.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지만 6시간 30분만에 비렁길 종주를 하는 건 정말 고된 일이었습니다.

 

 마을버스는 중심가를 지나가네요.

면 소재지에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 보건지소, 우체국, 파출소까지 다 있습니다.

인구가 1500명이 넘는다고 하지만 학생은 과연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군요.

 

 버스는 꼬불꼬불한 길을 잘도 달립니다.

편도 1차로에 한쪽이 바다에 잇닿은 벼랑이 있는데 말입니다.

빨리 달려도 안전하게 모시겠다는 베테랑 운전기사의 말을 믿어야지요.

 

 얼마쯤 갔을 때 아까 본 중년 여성이 함구미에는 언제 도착하느냐 묻습니다.

그러자 운전기사는 함구미에 안 가는 버스라고 합니다.

그들은 함구미에서 오후 4시 5분 여수행 배를 타야 한다고, 버스 회사에 전화로 확인을 했다고 하는데 말이지요.

함구미에서 여수 가는 여객선 티켓까지 예약을 했다네요.

 

 잠깐 고민을 하던 운전기사는 버스 회사에 확인을 하더니 해운회사에 직접 전화를 해서 손님을 태우고 가는 중이니 마지막 배를 조금만 늦게 출발시켜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빨리 달리겠다고, 여천항 손님들은 입구에서 내려 드릴테니 양해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요.

손님을 위한 일이기는 하지만 금오도에서는 마을 버스 코스를 바꾸기도 하고, 배를 붙잡아 두는 것도 가능하군요.

마지막 배이니 더 배려를 하는 것이겠지요.

 

 버스는 더 속도를 냅니다.

알아서 안전하게 가겠지만 저도 모르게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그래도 운전기사가 손님을 위해 정해지지 않은 노선을 운행하면서 애쓰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정말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걸요.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습니다.

 

 

 우리를 도로변에 내려준 버스는 꽁무니를 뺍니다.

그 사람들이 무사히 마지막 배를 탔기를 빌어 봅니다.

사실 잠깐 머리 속에서 그 사람들이 함구미에 못 가고 여천에서 우리랑 같은 배를 탄다면 신기항에서 여수터미널까지 우리 차에 동승시켜야 하지 않을까 혼자 생각을 했거든요.

교통편이 불편한 곳에서는 누구든 신세를 질 수 있는 일이니까요.

 

 주변을 둘러보고 시간을 보내다 오후 4시 20분 배에 올랐습니다.

선실 바닥이 온돌방처럼 따뜻하니 종일 시달린 몸이 그냥 널브러지네요.

저뿐 아니라 배에 탄 많은 사람들이 선실에 누웠습니다.

지난 밤 불면도 있고, 걷느라 고단하기도 해서 눈이 실실 감깁니다.

술을 마셨는지 시끄럽게 떠드는 남정네 소리마저 자장가처럼 들릴 정도입니다.

비몽사몽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나 싶은데 벌써 내릴 준비를 하라고 하네요.

그대로 1시간쯤 잠들고 싶은데 말입니다.

 

 

 배에서 내려 부지런히 차로 달려갑니다.

돌산도는 대부분 1차로라서 신기항에서 나오는 차로 밀릴 수도 있으니까요.

다행히 무리없이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조금 쉬었다 저녁을 먹어도 될 것 같습니다.

 

 호텔 프런트에서 갈치조림 잘 하는 곳을 물어 늘푸른식당을 찾아갑니다.

호텔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군요.

연예인, 정치인 등 유명인사가 다녀갔다는 홍보용 사진이 여럿 붙어 있습니다.

많이 알려진 곳 같기는 한데 음식이 너무 많이 나옵니다.

갈치조림에 간장게장, 양념게장까지 나오니 다 먹을 수가 없군요.

남긴 음식이 아까워 포장해 달라는 손님들이 있는지 위생상 포장은 안 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양을 좀 줄이고 가격을 내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음식을 먹으며 생각했습니다.

 

 새벽부터 설치니 하루가 참으로 깁니다.

그래도 조금은 걱정을 했는데 목표를 달성했으니 흐뭇하지요.

제가 뒤에서 따라가는 형국이었지만 두 사람이 속도가 비슷해서 다행이었고요.

발바닥은 얼얼하고, 발목이 시큰거리고, 허리도 뻐근합니다.

물론 종일 배낭을 멘 어깨도 그리 편하지는 않지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얼른 씻고 죽음과도 같은 잠에 빠져야겠다 싶은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