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여행 - 이번에는 흑산도 (1)
홍도와 작별을 하고 흑산도행 쾌속선에 올랐다.
홍도에 올 때 배멀미로 힘들어서 멀미약을 먹을까 고민을 했는데 다행히 흑산도까지는 30분이면 간다.
참을 수 있는 시간이다.
배 안에서는 홍도 유람선을 탄 흥분이 남았는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느껴진다.
이것이 여행이 주는 느낌 아닐까 싶다.
쾌속선은 우리를 흑산도에 내려놓고 목포를 향해 꽁무니를 뺀다.
흑산도에 내리니 홍어 모양으로 생긴 흑산도 비석이 우리를 맞아 준다.
흑산도라...
흑산도는 홍어와 정약전, 그리고 자산어보로 기억되는 섬 아닌가.
그런데 홍도가 많이 변한 것과는 다르게 흑산도는 여객선터미널 외에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흑산도는 홍도를 가기 위한 경유지 같은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배에서 내린 사람들을 모아 관광버스에 태우는 가이드의 목청이 커진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배에서 내리지마자 버스에 태워버리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
흑산도 여행은 유람선과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것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는 선택 관광 상품인데 선택할 기회도 안 준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스 관광을 선택하기는 하지만.
버스에 오르자마자 버스 기사는 "~잉' 하면서 말꼬리를 올리는 전라도 사투리를 능청맞게 사용해서 사람들을 웃음짓게 만든다.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고 해서 黑山島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섬, 25.4km에 걸친 일주도로를 만드는데 무려 27년이나 걸렸다고 하는데 버스가 한번 굽이길을 돌 때마다 여기저기에서 '아이쿠!' 하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험하고 경사가 심했으면 2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을까?
흑산도의 유일한 흑산비치호텔을 지나고 배낭기미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버스가 서기에 잠깐 내려 구경을 하나 기대했더니만 해수욕장에서 하루를 즐긴 것으로 보이는 젊은 처자 두 명이 버스에 오른다.
중간에 여행객을 태우기도 하는 버스였네.
버스는 파란 지붕이 돋보이는 마을을 아래 두고 힘겹게 끼익끼익 올라간다.
흑산도 여행 하면 꼭 등장하는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다.
이미자가 부른 노래 '흑산도 아가씨'는 박춘석이 곡을 쓰고 정두수가 노랫말을 썼단다.
흑산도는 '흑산도 아가씨'라는 노래로 기억되는 섬이다.
사실 '흑산도 아가씨'는 흑산도 심리 초등학교 학생들이 청와대 육영수 여사의 초대로 서울에 다녀간 신문기사를 보고 작사가 정두수가 쓴 노랫말이었단다.
척박한 흑산도에 사는 어린아이가 육지를 그리워하는 내용인데 대중가요로 발표하면서 어린이가 아가씨로 바뀌었다고 한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 오는데
못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흘러온 나그넨가
귀향 살인가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 버린
검게 타 버린 흑산도 아가씨
정두수 작시 <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있는 곳에 버스가 섰다.
버스 기사는 15분간 서둘러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를 둘러보고 상라산 전망대에 다녀오란다.
에구, 바쁘다 바빠.
뛰다시피 선두로 상라산 전망대(해발 230m)에 올랐다.
상라산 전망대에 오른 보람이 있는 걸.
흑산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구불구불한 12굽이도로가 발 아래 내려다보이고, 그 끝에는 파란지붕 마을이 다소곳이 기대어 있다.
서둘러 기념사진을 찍고 전망대에서 내려왔다.
예전에 왔을 때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근처에서는 사람이 가까이 가면 '흑산도 아가씨' 노래가 이미자의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그 노래를 듣고 나면 흑산도를 오가는 동안 내내 흑산도 아가씨를 흥얼거리게 되곤 했지.
그런데 요즘에는 바뀌었단다.
공중화장실에 들어가면 '흑산도 아가씨', 식당에 가면 '섬마을 선생님', 버스정류장에 가면 '동백아가씨'가 흘러나온단다.
흑산도는 그야말로 이미자 노래로 도배를 한 셈 아닐까.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까지 둘러보고 버스에 올랐는데 버스기사는 다른 기사와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연히 서두르느라 땀 한 바가지 쏟았네.
여유가 있다면 해안누리길을 따라 설렁설렁 걸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버스가 다시 출발한다.
어느 지점에서 속도를 늦춘 기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구멍이 뚫린 바위가 보인다.
언뜻 보니 한반도 지도 모양이다.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는 하지만 지도바위라 불리는 바위이다.
버스 기사는 군사정권 시절 분위기를 내어 '국민 여러분! 실제 상황입니다.'라고 외치며 설명을 이어간다.
승객들이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린다.
버스 기사도 사람들을 웃게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겠지.
운전하랴 관광 안내하랴 1인 2역에 얼마나 힘들겠는가.
신나게 달리던 버스 기사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멀리 보이는 섬 장도 이야기이다.
장도는 대장도와 소장도가 있는데 만조시에는 두 개의 섬이 되었다가 간조시에는 두 섬이 연결된단다.
이 섬 꼭대기에는 습지가 있는데 2004년 대암산 용늪, 창녕 우포늪과 더불어 2005년 우리나라에서 세번째로 람사르습지에 지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생태적 중요성을 인정받은 것이겠지.
장도 습지는 섬에서 발견된 최초의 산지 습지로 이탄층이 발달되어 있단다.
이탄층이 발달되어 수자원 저장 및 수질정화기능이 탁월하여 장도 주민들은 물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게다가 다양한 동식물이 사는 것은 물론 멸종위기종인 수달, 매, 솔개 등이 사는 生態 寶庫인 셈이다.
혹시 다음에 흑산도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장도를 방문해서 습지 탐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흑산도는 유배지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우리가 흔히 손암 정약전만 기억하지만 조선 말 의병장으로 알려진 면암 최익현도 이곳으로 유배를 왔다.
건너편에 보이는 작은 섬 영산도로 유배를 간 사람도 있었다지.
그 당시 목포에서 흑산도까지는 얼마나 걸렸을까?
絶海孤島 흑산도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거는 일 아니었을까 싶다.
굽이진 도로를 따라 오르고 내리던 버스는 유배문화공원을 지난다.
정약전이 유배왔던 사리에 조성중인 공원이다.
초가지붕이 몇 개 보이고 여기저기 공사중이라 어수선하다.
다음에 온다면 그때는 공원이 완성되어 있겠군.
버스에 실려 흔들렸다는 기억 외에는 별로 없는데 버스는 우리를 다시 흑산여객선터미널 근처에 내려놓는다.
여행이 아니라 정말 '수박 겉 핥기 관광'이었다.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로 서해식당으로 이동해 저녁을 먹는다.
홍도도 그렇지만 가이드라고 하는 사람들은 숙소 주인이거나 음식점 주인이다.
인건비가 비싸다 보니 단체관광에서 그곳을 이용하는 조건으로 간단한 일을 맡아서 처리해주는 모양이다.
여기도 음식은 맛있다.
갈치속젓도 필수로 나오고.
친구는 주인이 권하는 흑산도 막걸리 맛이 궁금하다는데 옆 자리를 보니 막걸리가 2L쯤 되는 큰 병에 담겨 있다.
막걸리값이 10,000원이나 해서 비싸다 싶었더니만 양이 많군.
여러 명이 함께 온 사람들이 홍어와 막걸리를 주문해 먹는데 홍어는 어제 목포에서 먹었고 막걸리는 우리끼리 반도 못 마실테니 그냥 포기한다.
저녁을 먹고 얼른 숙소로 향한다.
버스 관광이 차창 관광으로 대충 끝났으니 남은 시간 우리끼리 둘러보는게 좋겠다고 하면서.
숙소는 확실히 홍도보다 널찍하고 이부자리에서 퀴퀴한 냄새도 나지 않는다.
물론 침대도 없고, 냉장고도 없기는 하지만.
다행히 와이파이가 되니 스마트폰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