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부여 궁남지에서

솔뫼들 2021. 8. 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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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알람 소리에 잠이 깨었습니다.

오전 8시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바로 숙소에서 나갑니다.

1박2일 여행이라고 해도 오는데 한 나절 걸리고 도로 상황 안 좋을 것 생각해 점심을 먹고 이른 오후 출발하는 편이라 그리 시간 여유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여름이니 기온이 오르기 전에 돌아보는 것이 좋겠지요.

 

 차를 가지고 정림사지를 찾습니다.

염려했던 대로 시간이 일러 아직 매표소 문을 열지 않았군요.

담장 너머로 정림사지 5층 석탑과 정림사지 박물관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궁남지로 옮겨 갑니다.

연꽃이 아침에 많이 피니 어젯밤보다 더 많은 연꽃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궁남지를 돌아봅니다.

궁남지는 '궁의 남쪽에 있는 연못'이라는 뜻이지요.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한 무왕의 서동요 전설이 깃든 곳입니다.

삼국사기에 백제 무왕 당시 별궁의 남쪽을 파서 연못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하지요.

연못 주변에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한가운데 인공 섬을 만들었다고 나온답니다.

 

 궁남지가 있던 정확한 장소는 알 수 없다고 하는데 이 기록에 따라 부여 출신 정치인 김종필이 나서서 연못을 조성하고

버드나무를 심었다네요.

그리고 연못 가운데 조성한 정자에 '抱龍亭'이라는 글씨를 남겼습니다.

성흥산성 정자에도 김종필의 글씨가 있었지요.

 

 당시에는 궁남지를 졸속으로 복원한 것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네요.

그런데 궁남지의 四季가 워낙 아름다워 사람들이 부여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되니 이제 누구도 왈가왈부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그렇게 해서 우리는 역사적인 장소를 하나 얻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 시절 그렇게 반대하던 청계천 복원이 생각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었는데 서울시내 한가운데 물소리를 들으면서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니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 된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국인들이 서울을 방문하면 한번 걸어보고 싶은 곳이 청계천변이라지요.

 

 시간이 일러서인지 산책 삼아 걷는 동네 사람들이 보이고, 연꽃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몇몇 보입니다.

전문적으로 하려면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매우 부지런해야 되겠구나 싶습니다.

물론 한곳에 오래 머물러야 하니 참을성도 많아야 하고요.

커다란 카메라를 둘러멘 사람들을 보며 혼자 생각했습니다.

 

 연못 구석구석 좁다란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가다가 들으니 맹꽁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쳤다 하네요.

사람들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그치고, 잠잠해지면 다시 울고...

그 소리를 듣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맹꽁이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어릴 적 시골집 미나리꽝에서 비가 오면 울어대던 맹꽁이 소리가 기억납니다.

그런 소리조차 그리워하게 될 줄을 그때는 당연히 몰랐지요.

 

 아침이라 그런지 초록잎 사이에 드문드문 핀 연꽃이 더욱 화사해 보입니다.

睡蓮도 여기저기 피어 있군요.

아직 덜 핀 연꽃이 연못을 가득 채우면 정말 멋진 풍광이 되리라 싶습니다.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네요.

 

그 사람은,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이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 하나 있다

 

눈빛 맑아,

호수처럼 푸르고 고요해서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침나절 연잎 위,

이슬방울 굵게 맺혔다가

물 위로 굴러 떨어지듯, 나는

때때로 자맥질하거나

수시로 부서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삶의 궤도는, 억겁을 돌아

물결처럼 출렁거린다

수없이. 수도 없이

 

그저 그런, 내가

그 깊고도 깊은 물 속을

얼만큼 더 바라볼 수 있을런지

그 생각만으로도 아리다

그 하나만으로도 아프다

 

 신석정의 < 연꽃이었다 > 전문

 

 포룡정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정자에는 아직 사람들이 없군요.

잠깐 앉아서 바람을 쐬면서 연못에 비친 버드나무와 황포돛배를 바라봅니다.

연못에 비친 그 모습이 특별한 풍경을 선사하네요.

가만히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 물결에 비친 풍경에 빠져 봅니다.

 

 궁남지는 생각보다 큽니다.

전에 와 보았지만 새삼스레 크다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는 더 컸을 거라고 하네요.

백제시대 당시 규모로 생각하면 궁남지 건설이 엄청난 공사였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여유롭게 둘러보고 궁남지를 빠져나갈 때쯤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네요.

덥고 사람들에 치이기 전에 일찍 오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연꽃, 버드나무, 정자, 연못...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조합이지만 역사와 전설이 깃든 곳이라 그런지 특별한 느낌을 갖고 궁남지를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