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둘째날; 소백산 자락길 6코스 '온달평강 로맨스길 ' (2)
오전 9시 20분 비로소 해발 540m인 고드너머재에서 소백산 자락길 온달평강 로맨스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런데 시작점 안내판이 부서져 있네.
쯧쯧,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구만.
온달평강 로맨스길은 고드너머재에서 시작하여 방터마을을 지나 온달산성을 거쳐 가는 길이다.
계명산 자락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인데 생각해 보니 아주 오래 전 충주 계명산을 다녀간 일이 있었다.
계명산 자연휴양림에서 하루 묵고 마즈막재에서 정상에 올랐었지.
계명산 해발고도가 700m가 넘지만 시작점인 마즈막재가 이미 높아서 쉽사리 다녀왔던 기억이 어슴푸레하게 난다.
그러고 보니 산이든 들녘이든 많이 다니기는 했네.
월악산, 도락산, 가은산, 제비봉, 수리봉, 금수산, 계명산 등 단양과 충주, 제천에 걸쳐 있는 산도 대여섯 개 이상 올랐던 것 같으니 말이다.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길로 들어선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걸으며 실없는 소리를 하곤 둘이 웃기도 하고, 새순이 돋으려면 더 기다려야 하는 나무들의 긴 침묵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유난히 겨울을 좋아하는 친구의 취향에 대한 이야기도...
길은 편안한 林道를 따라 이어진다.
길이 넓으니 신경 쓸 것도 없고, 봄의 문턱에 있으니 들꽃도 없고, 몇 가지 제외하고는 樹皮와 樹型만 보고 나무를 알아보는 안목도 없으니 그저 심심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
어디선가 큰 소리가 나기에 돌아보니 까투리가 종종걸음으로 부지런히 몸을 숨긴다.
언뜻 보면 마른풀 빛깔이라 알아보기도 힘드네.
자연 환경이 좋으니 저런 새도 둥지를 틀고 살텐데 지금은 먹이를 찾기 힘들어 너도 힘겨운 날이겠다.
저 산 아래 작은 마을은 두메산골이다.
하루에 몇 번이나 버스가 오갈까?
사람들이 대부분 도시로 몰려드는 시대에 연세 드신 어르신들만 집을 지키고 계신 것은 아닐까?
안온하게 산자락에 자리잡고 드문드문 집 몇 채 보이는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고 지나친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해 人獸 공통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다시 옛날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현재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심각하게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자연을 찾아 전국을 헤매면서 늘 하는 생각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스틱 소리만 내면서 걷다가 잠깐 쉬면서 간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아침부터 서둘러 움직였으니 살짝 출출할 때가 되기는 했지.
날씨도 따뜻하고 수도권과 달리 미세먼지도 없으니 걷기에는 그만이다.
머리 위에 바로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요즘에는 산불감시요원을 뽑는데에도 많은 사람이 몰린다는 뉴스를 접했다.
코로나 19로 일자리가 사라진 사람들이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은 일을 찾는 것이겠지.
산불감시요원 선발시 체력 테스트를 하다가 숨이 넘어간 이야기까지 있었으니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인 모양이다.
다시 배낭을 둘러멘다.
마지막 화장실이라고 씌어 있는 화장실이 나온다.
어! 우리가 걷는 길에서는 마지막이 아니라 첫번째 화장실인데...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는다.
내부는 모르겠지만 친환경적인 목재로 외관을 한 화장실이 좋아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고드너머재에 있는 안내판도 그렇더니만 여기 있는 이정표도 기우뚱 쓰러져 있네.
정말 부실하기 그지 없는 이정표이다.
방향이 약간만 틀어져도 이정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도리어 헷갈리게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힘들여 바로 세우려고 해 봤는데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가는 길 오른편으로는 올챙이 모양 소백산 자락길을 알리는 스티커가 간간이 붙어 있다.
순방향은 파란색이고, 역방향은 빨간색인 것 같다.
갈림길이 없으니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길을 생각 없이 내처 걷고 있다.
1시간 넘게 이런 길을 걸으려니 좀 지루하기는 하다.
설마 계속 이런 임도를 걷는 것은 아니겠지?

초행인데다 특별한 지형지물이 없으니 얼마나 거리를 줄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정표에 방터라는 지명이 계속 나오는데 도대체 방터는 어디인 거지?
지금이야 화전민이 사라졌지만 화전민이 살았다는 곳에 화전민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마을을 복원시켜 놓았다고 했는데...
눈길을 이리저리 돌리니 간혹 오래된 나무 밑둥을 잘라낸 것이 눈에 띈다.
안타깝다 생각을 하면서 자세히 보니 한가운데 벌레 먹은 자국이 커다랗게 뚫려 있다.
그래서 자른 모양이구나.
사람이나 식물이나 병도 들고 늙기도 하고...
이 나무는 수명이 여기까지였겠지.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 푸른 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놓을 때
사랑한다!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하며 숲을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문정희 의 < 나무 학교>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