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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셋째날 - 물영아리 오름 (1)

솔뫼들 2020. 10. 1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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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시간이 좀 이르기는 하지만 점심을 먹으러 이동해야 합니다.

오후 일정이 물영아리 오름에 가는 것이니 이왕이면 오름 근처에서 점심 먹을 곳을 찾겠다고 어젯밤 스마트폰을 뒤적이다가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다는 음식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이름은 식당.

 

 식당을 찾아가니 골목길에 위치해 있군요.

겨우 차를 세우고 음식점 문을 열려고 하니 문에 관광객은 안 받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비는 본격적으로 쏟아지는데 다른 곳을 찾아가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청정지역인 제주에 관광객이 다녀가면서 코로나 19가 문제가 되더니만 그래서 그런가 보다 싶지만 아무래도 주저하게 됩니다.

친구는 단체 관광객을 말하는 걸 거라고 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저는 쭈뼛거리며 눈치를 보게 되네요.

돈 내고 밥을 사 먹으면서 눈치를 보려니 언짢아집니다.

 

 음식점을 둘러보니 동네 사람들이 주 손님인 것 같군요.

아주 친해 보입니다.

근처 공사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여럿 보이는데 동네 사람들과 모두 가족 같아 보입니다.

우리말로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는 모습이 보기 좋군요.

 

 이제 우리나라 어디나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유지가 안 됩니다.

농촌에서도 그렇고, 생산현장도 그렇고, 어촌도 마찬가지이지요.

제주도 음식점 종업원도 외국인이 많더군요.

전국적인 현상입니다.

인구는 줄고, 힘든 일은 꺼리면서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가 심한 나라.

이게 지금 우리나라 모습 아닐까 싶네요.

한때 우리도 다른 나라에 근로자를 보냈는데 입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돌변하면 안 되겠지요.

정부나 국민이나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약간 눈치를 보면서 오징어와 닭고기, 돼지고기를 넣은 두루치기를 시켰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식재료를 함께 넣고 요리를 하네요.

식탁에서 끓여가며 익혀 먹는 두루치기는 비 주룩주룩 퍼붓는 날 제격입니다.

양이 적어 보였는데 그릇이 움푹 들어가서 그런지 꽤 많군요.

이름도 모르는 나물도, 제주도에 흔한 고사리도 모두 맛있습니다.

현지인 맛집이라더니 이유가 있었군요.

물론 가격도 아주 착하지요.

 

 점심을 먹고 나오니 비는 폭우로 변했군요.

일단 물영아리 오름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비가 그칠 때까지 차에서 쉬기로 합니다.

친구는 운전석에서 눈을 감더니 금세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하고 편안해졌습니다.

다행입니다.

일정이 빡빡한데다 제주도에 와서 이틀간 무슨 일인지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해 피로가 누적되었는데도 저는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30분 가까이 지났을까요?

비가 조금 잦아드나 싶어 물영아리 오름에 오르기로 합니다.

물영아리 오름은 오름 정상에 화구호가 형성되어 있어 지질적 특이성과 생물종 다양성 등 때문에 2000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고 2006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이 되었다고 합니다.

 

 입구에는 물영아리 오름에 관련된 설화가 씌어 있네요.

 

수망리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의 일이다.

한 젊은이가 소를 들에 방목했는데 그만 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젊은이는 잃어버린 소를 찾아 수망리 일대는 물론 주변의 오름들도 샅샅이 뒤졌지만 소는 없었고 결국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오름의 정상까지 가게 되었다.

젊은이는 배고픔과 목마름에 기진맥진하여 더는 움직일 수 없었고 앉은 자리에 쓰러졌다.

비몽사몽하고 있을 때 백발노인이 나타나 

"여보게 젊은이, 소를 잃어버렸다고 상심하지 말게.

내가 그 소값으로 이 오름 꼭대기에 큰 못[池]을 만들어 놓겠네.

그러면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소들이 목마르지 않게 될 것이고 다시는 소를 잃어버리고 찾아 헤매는 일도 덜어질 것이네.

부디 잃어버린 소는 잊어버리고 다시 한 마리를 구하여 부지런히 가꾸면 분명 살림이 늘어 궁색하지 않을 것이네."라고 하는 것이었다.

눈을 떠 보니 아무도 없고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맑던 하늘에 먹구름이 덮이면서 어두워지더니 비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눈앞에서 큰 못이 출렁거리고 못가에는 소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물영아리 오름 입구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군요.

최근 조성되었다는데 그만큼 물영아리 오름 가치가 인정되기 때문이겠지요.

깔끔하게 조성된 공원을 지나 물영아리 오름 입구로 들어섭니다.

간혹 비를 맞고 오가는 사람들이 보이는군요.

빗방울이 가늘어지기는 했지만 한여름도 아니니 비를 맞으면 체온이 떨어지기 십상이지요.

우리도 그렇지만 모두들 열성입니다.

 

 우산을 쓰고 걷는데 마주 오는 사람들이 비를 맞으면서도 두 손을 꼬옥 잡고 있군요.

젊은 친구들도 아닌데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지나쳐간 다음 슬쩍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네요.

 

 왼편으로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습니다.

개울 이름이 수망천, 순우리말로 '물보랏내'라고 하네요.

몇 번이나 소리내어 불러봅니다.

참으로 예쁘고 정겨운 이름입니다.

 

 오른편에는 목장이 펼쳐져 있네요.

꽤 넓어 보입니다.

수망리 마을 목장조합이 3월부터 10월까지 소를 방목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소를 방목함으로써 멸종위기종인 애기뿔쇠똥구리 서식환경이 살아난다고 합니다.

반가운 일이지요.

오늘은 비 때문인지 소가 한 마리도 안 보이는데 안개만 자욱하게 내려앉았군요.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늑대소년'을 이곳에서 촬영했나 봅니다.

배우 박보영과 송중기가 열연을 했던 영화이지요.

늑대소년과 몸이 아파 요양차 시골로 내려간 소녀가 만나 순수한 사랑을 이루어가는 이야기이지요.

약간 동화 같고 틀에 박힌 결말이기는 하지만 소녀 같은 감성으로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추석 연휴 다시 찾아보면 어떨까 생각을 해 봅니다.

 

 걸으면서 보니 중잣성 생태탐방로가 있다고 나오네요.

중잣성이 무얼까 보니 안내표지판이 있습니다.

잣성은 조선시대 중산간 목초지에 쌓아 만든 돌담이랍니다.

위치에 따라 하잣성, 중잣성, 상잣성으로 나눈다고 하지요.

 

 하잣성은 말이 농경지로 들어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고,

상잣성은 말이 한라산 삼림 지역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

그리고 중잣성은 18C 말부터 20C 초에 하잣성과 중잣성 사이에 만들어져 목장의 경계 기능을 했다고 합니다.

잣성은 조선시대 중산간 지역에 국영 목장이 설치되었음을 말해주는 역사적 유물이고 제주도의 전통적 목축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랍니다.

아하! 그렇군요.

돌담을 보면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돌담은 중잣성, 목장끼리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