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둘째날 -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K형!
오늘 마지막 일정이 남았습니다.
어차피 서귀포로 왔으니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들르면 어떨까 생각을 했습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는 셈이지요.
차를 달려 성산읍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으로 향합니다.
김영갑 갤러리는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사진 찍기를 즐기는 친구도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이라고 하니 흔쾌히 좋다고 합니다.
갤러리에 도착했습니다.
폐교된 곳이라 하여 규모가 클 것이라 생각했는데 분교여서 그런지 아담하군요.
갤러리 입구로 들어서자 정갈한 마당이 먼저 인사를 합니다.
이런 마당이 있었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발병하고 난 후 작가가 직접 일군 정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슴이 툭 내려앉는 느낌입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폐교된 곳을 터전 삼아 사진 작업을 하던 김영갑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김영갑은 제주도 풍광에 반해 먹고 살 것이 없을 지경이 되었지만 사진을 찍는 일에 전념했다고 하지요.
근육이 퇴화하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도 손과 카메라를 묶어 놓고 사진을 찍었다는 기사를 오래 전 본 적이 있습니다.
제주 오름의 곡선, 제주의 바람을 그처럼 잘 표현한 사진을 보지 못 했습니다.
투병생활을 한 지 6년만인 2005년 고인이 된 김영갑의 혼이 그곳에 잠들어 있겠지요.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라고 합니다.
제주에 애착을 느꼈던 그가 갤러리에 어울리는, 제주를 상징하는 한라산의 옛 이름을 붙였군요.
갤러리로 발길을 옮깁니다.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서인지 숙연해집니다.
작가가 작업했던 공간도 둘러보고 사진도 감상합니다.
역시나 오름을 찍은 사진이 가장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작가는 오름의 그 곡선을 즐겨 찍고 사랑했었구나 싶어집니다.
중년 여인의 가슴 같기도 하고, 둔부 같기도 한 오름.
높이 솟은 한라산보다 푸근하고 누구나 비교적 쉽사리 오를 수 있는 곳이 오름 아닌가요?
전시된 작품 수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좀 아쉽네요.
전에 서울 인사동 전시에는 대작이 많이 전시되어 둘러보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김영갑의 사진에 반했지요.
바람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요즘은 작가들도 디지털 카메라를 많이 사용하는데 김영갑은 마지막까지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나 보네요.
그 비용도 녹록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오직 작품을 위한 작가의 고집이 느껴지는 대목이지요.
갤러리를 둘러보고 다시 정원으로 나왔습니다.
김영갑의 유골이 뿌려졌다는 정원에는 토우가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김영갑과 인연을 맺었던 김숙자 작가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제주도는 텃세가 유독 심하다고 하지요.
외지인에게 배타적인 제주도에 와서 자리잡기가 쉽지 않을 때 김영갑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고 하네요.
同病相憐이었을 겁니다.
토우가 있어 김영갑의 정원이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정원을 오가며 구석구석 구경을 합니다.
다양한 표정을 한 나무며, 돌, 그리고 토우에 샤프란까지 참으로 많은 손길이 깃들었구나 싶습니다.
친구와 술래잡기하듯 정원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김영갑의 삶,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것일까 등등.
작품도 작품이지만 김영갑의 삶이 주는 울림이 더 큰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