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제주도 첫째날 - 물메오름, 물메밭담길

솔뫼들 2020. 10. 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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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숙소에 더 가까운 곳에 오름이 있다기에 이번에는 물메오름을 찾아갑니다.

저수지를 끼고 있다고 하지요.

겨우 차를 세우고 찾아가니 10여분 오르자마자 수산봉이라는 물메오름입니다.

오르는 길이 제법 산길이라 긴장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저 숙소에 가깝다는 이유로 남은 시간을 보내려던 것이기는 하지만 아쉽네요.

 

 아쉬움을 달랠 겸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면 어떨까 싶습니다.

저수지 건너편에는 멋들어진 별장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이국적인 느낌이 나네요.

 

 누군가의 글에서 민물이 흔하지 않은 제주도에서 수산 저수지는 민물 저수지이고 둘레길이 괜찮다는 정보를 접했습니다.

저수지를 바로 한 바퀴 돌려고 했더니 '보시의 길'이라는 불교 성지 순례길이 있는데 길이 끊어졌군요.

하는 수 없이 반대편으로 돌아갑니다.

 

 조금 걷자마자 엄청난 소나무가 보입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400년 된 소나무네요.

마을 수호목으로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정말 자태가 늠름하고 아름답군요.

저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한 발만 더 디디면 벼랑인데 바로 거기서 뿌리를
내리는 소나무가 있다 자세히 보면 소나무는
늘 바르르 떨고 있는데, 에멜무지 금방 새로 변해
날아가도 아무도 탓하지 않을 아슬함으로 잔뜩
발돋움한 채 바르르 떨고 있는데, 아직도 훌쩍
날아가지 않고 서 있는 저 나무가 기다린 것은 무어냐

 

               송재학의 < 소나무 > 전문

 

 

이쪽저쪽 소나무를 돌아보다 발길을 옮깁니다.

저수지 바로 옆으로는 길이 없고 마을을 따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여기가 물메밭담길이었군요.

올레길의 일부인 모양입니다.

돌담을 쌓은 마을길, 정자나무, 시를 새겨 놓은 돌들...

 

 천천히 걸으며 돌아보기 좋은데 살짝 내리는 비에 우산을 쓰고 걷는 친구 표정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눈이 10m쯤 들어가 나 몹시 피곤하다고 말을 하는 것 같거든요.

뒷모습을 보아도 느껴집니다.

저는 '백수'이지만 친구는 어제도 정상 근무를 했으니까요.

얼른 오늘 일정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물메밭담길을 따라 다 걸으면 정말 해가 꼴깍 넘어갈 것 같네요.

중간에 차를 세워둔 곳을 따라 방향을 바꿉니다.

저도 지쳐서 발걸음이 무겁기는 하네요.

 

 운전하는 손을 바꿉니다.

익숙하지 않은 곳이니 내비가 가리키는 대로 살금살금 호텔로 향합니다.

일단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로 했습니다.

주차장에는 생각보다 차가 많지 않군요.

 

 짐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갑니다.

스마트폰이 있으니 맛집 자료 찾기는 정말 수월하지요.

잠깐 검색을 해서 주변에서 평이 좋고 부담없는 메뉴를 선택합니다.

 

'해물섬'이라는 음식점으로 정했습니다.

숙소에서 다소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여행객보다는 현지인들이 더 많이 찾는 음식점 같습니다.

어떤 걸 주문할까 고민하는데 주인장이 한치물회나 쏨뱅이 매운탕을 추천합니다.

쏨뱅이 매운탕은 먹어본 적이 없으니 그걸로 주문합니다.

쏨뱅이를 빨간 우럭이라고도 한다고 씌어 있네요.

'삼시세끼'라는 TV 프로에서 고대하던 감성돔은 못 잡고 쏨뱅이만 낚는 장면이 나왔었지요.

 

 쏨뱅이 매운탕을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웁니다.

맛이 깔끔하네요.

이 집의 다른 음식 맛도 궁금합니다.

아담한 식당을 가족끼리 운영하는 것 같은데 신뢰가 가는 곳입니다.

 

 건너편 탁자에서 술을 마시던 동네 분들이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제주도는 그냥 된장만 있으면 음식이 된다고.

무슨 소리인가 들어보니 식재료가 싱싱해 된장만 맛있으면 쌈장에 찍어 먹어도 되고, 된장을 풀어 찌개를 끓여도 맛있다는 이야기였군요.

그만큼 신선한 해산물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음식점에서 나와 근처 마트에서 시장을 봅니다.

한 숙소에 계속 묵을 예정이니 맥주와 물, 과일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이제 호텔에 들어가 쉬면 되겠군요.

 

 방에 들어가 샤워를 한 다음 밤바다를 보면서 친구와 맥주 한 잔을 합니다.

아! 정말 개운합니다.

그리고 기분이 날아갈 듯 합니다.

오늘 소화한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무려 28000보 가량이나 걸었군요.

하루가 정말 긴 날이었습니다.

 

 잠이 몰려옵니다.

몹시 고단하다던 친구는 그 와중에 불빛 아래 책을 들고 있군요.

존경스럽습니다.

제 여행가방 속에 든 책은 아무래도 이번 여행 중에 짐 이상은 아닐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꿈나라로 직행하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