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첫째날 - 큰노꼬메 오름
K형!
점심을 먹고 정신이 들었으니 다음 일정을 소화해야지요.
본래 제가 계획한 일정은 다랑쉬 오름과 용눈이 오름을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절친이 큰노꼬메 오름을 꼭 가 보라고 추천을 했다고 하네요.
지도를 찾아보니 큰노꼬메 오름이 우리가 예약해둔 애월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아 오늘 일정을 바꾸어 큰노꼬메 오름을 가기로 합니다.
계획이야 좀 수정하면 어떤가요.
큰노꼬메 오름 주차장을 찾아 차를 달립니다.
그런데 차가 골목으로 한참 들어가도 주차장 비슷한 곳이 안 보입니다.
잘못 들어왔나 싶어 차를 돌리는데 길이 좁아서 교행이 힘들군요.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가 다른 차들이 많이 주차된 너른 주차장을 찾습니다.
여기는 궤물 오름이라고 되어 있네요.
궤물 오름은 어떤 풍경을 선사하는 곳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기대를 할 만한 곳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일단 차를 세우고 나니 친구가 잠깐 차에서 쉬자고 합니다.
하기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짐을 챙겨 나와서는 지금까지 쉴 틈 없이 이동을 했으니 피곤한게 당연합니다.
더구나 친구는 운전대까지 잡고 있으니 말입니다.
10여 분 있다가 차에서 나왔습니다.
스마트폰 지도상 여기에서 큰노꼬메 오름이 그리 멀지 않습니다.
걸어가도 될 것 같다는 친구 말에 차도 옆을 따라 걷는데 차량 달리는 속도 때문에 위험천만하군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습니다.
다시 차로 돌아가 내비를 켜니 반대 방향으로 가라고 하는군요.
큰노꼬메 오름 방향을 두고 이상하다 싶어 친구와 갑론을박 하는데 유턴을 할 곳이 마땅치 않아 내비가 엉뚱한 길로 안내를 한 거였습니다.
결국 우리가 처음 올라갔던 길이 맞는 거였는데 말입니다.
큰노꼬메 오름은 주차장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습니다.
주차를 하고 안내판을 봅니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데 높이가 꽤 되는군요.
전망이 좋다고 했으니 얼마나 시원할까 싶습니다.
사려니 숲길에서는 전망을 즐길 수 없었으니 말입니다.

'노꼬메'는 '놉고메' 또는 '놉구메'라고도 부르는데 한자 차용 표기로는 고고산 (高古山), 또는 고구산 (高丘山)이라 한다네요.
결국 높은 산이라는 뜻으로 해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름치고는 해발고도가 높기는 하지요.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거리는 2.3km라고 합니다.
높이가 있으니 왕복 1시간 30분 정도 걸리지 않을 까 싶군요.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는 자료를 보고는 제대로 스틱까지 준비하고 길로 들어섭니다.
입구에는 목축을 하는 사유지라는 안내문이 씌어 있네요.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하겠습니다.
걷는 길에 소인지 말인지 모를 가축의 분뇨가 많이 떨어져 있군요.
그래서 이 목장에서는 어떤 동물을 키울까 궁금하다 했더니 친구 왈, 동네 이름이 '소길리'였으니 아마도 소를 기를 거랍니다.
우하하! 그런 해석도 있군요.

길 옆으로 덩굴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흰 레이스가 달린 것 같은 들꽃 사진을 찍고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한참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은 무얼 보면 바로바로 단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30여분 지나면 생각이 나는데 그나마 그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하늘타리였군요.
몇 가지 들꽃을 지나쳐가니 좁은 길이 나타납니다.
추석이 가까워 벌초를 하는 예초기 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걷습니다.
초반에는 평지나 다름이 없고 그늘이 져 있네요.
올해 유난히 비가 많아 길이 미끄럽고 길이 거의 물에 잠긴 곳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아주 걷기 좋은 길입니다.
다양한 樹種의 나무가 보이더니, 삼나무숲이 나타나고, 이번에는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납니다.
의외군요.
이렇게 숲이 우거지고 여러 종류의 나무가 자란다는 것은 숲이 건강하다는 말이겠지요.

너무 방심했을까요?
순한 길이 끝나고 정말 한번 딛을 때마다 잔뜩 긴장해야 하는 돌계단이 나오는군요.
물기 머금은 돌도 미끄럽고, 나무 뿌리도 잘못 밟으면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게 되어 있습니다.
몇 번이나 '아이쿠! '소리를 내지르게 되곤 합니다.
넘어질 뻔 하다가 겨우 중심을 잡는 저를 보고 친구는 그래도 안 넘어지고 잘 간다고 합니다.
저는 산에 오래 다니면서 좋아진 건 순발력 아니겠느냐고 대꾸합니다.
된비알이 길게 이어지는군요.
스틱이 없었으면 고생깨나 했겠구나 싶습니다.
저절로 숨을 몰아쉬게 되네요.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친절하게 거리가 얼마 남았다고 알려주는 안내판이 간간이 보이는군요.
쉼터에서 숨을 돌리고 식당에서 물통에 담아 온 물을 친구와 나누어 마십니다.
아직도 한참 남았습니다.
아니 그리 먼 거리는 아닌데 힘들 때는 100m도 한숨 나오게 멀게 느껴지는 법이지요.
얼마나 걸었을까요?
하늘이 훤해졌습니다.
나무들 키가 낮아졌군요.

등성이에 올랐습니다.
바람이 우리를 맞아줍니다.
언제 더웠냐 싶게 땀이 식는군요.
이제 아무리 멀어도 큰노고메 오름 정상이 코 앞이겠지요.
족은노꼬메 오름으로 가는 갈림길이 보이네요.
한 나절 정도 예상하고 큰노꼬메 오름과 족은노꼬메 오름, 그리고 궤물 오름까지 오르락내리락 여유있게 걷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번에는 큰노꼬메 오름으로 만족하지만 말입니다.

드디어 오후 3시 5분, 40분만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해발고도가 833m나 되니 북한산 높이와 비슷합니다.
다른 사람의 글에서 등산이라 생각해야 한다고 하더니만 이유가 있었네요.
시야가 탁 트입니다.
멀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근처 크고 작은 오름이 보이는군요.
속이 후련합니다.
친구와 번갈아 사진을 찍고 심호흡을 합니다.
사람 욕심이 끝이 없겠지만 날이 맑으면 더 좋겠구나 싶습니다.
오름마다 구름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말이지요.

뻥 뚫린 가슴을 안고 내리막길로 접어듭니다.
미끄러지지만 않는다면 속도가 무척 빠를 겁니다.
거의 쉬지 않고 발을 놀립니다.
어쩌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그 사람들의 힘겨운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역시 내려가는 발길은 여유롭군요.
길섶에 핀 꽃들을 들여다보고 눈을 맞춥니다.
계절적으로 들꽃이 눈에 많이 안 띄니 더 사랑스럽습니다.
생명력 강한 엉겅퀴는 어디에서든 눈에 띕니다.
으아리도 있네요.
어렵게(?) 큰노꼬메 오름을 다녀왔습니다.
다음에 어디를 갈 계획이냐는 친구 말에 숙소 인근으로 가자고 차를 돌립니다.
새벽부터 설쳐 제주도에 와서는 첫날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