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첫째날 - 사려니 숲길 (1)
K형!
코로나 19 여파로 여행이 많이 움츠러들었습니다.
그나마 해외로 나가던 사람들이 대부분 제주도로 간다고 하지요.
제주도도 바다 건너 해외이기는 하니까요.
8월 말쯤 계획했던 제주도 여행을 9월로 미루어 예약을 했습니다.
날짜를 길게 잡고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오자는 친구의 제안대로 계획을 세웠지요.
새벽부터 잠을 반납하고 나서 오전 7시 25분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른 시간임에도 비행기에는 빈 자리가 없더군요.
지리한 장마 때문에 휴가가 뒤로 미루어졌다더니 평소 같으면 비수기인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부족한 잠을 채우려 눈을 감았나 싶은데 제주공항이랍니다.
짐을 찾고 렌터카 회사 셔틀버스를 타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우와! 렌트카 회사가 이리 많고, 이렇게 아예 렌터카 셔틀버스 타는 곳을 널찍하게 정비해 놓았는지 몰랐습니다.
제주도에 자주 오지도 않았고, 제가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워 추진하지도 않아서였겠지만요.
바로 차를 몰고 사려니 숲길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거리가 꽤 멀군요.
우리가 걷는 숲길은 대개 중산간에 위치해 있으니 매일 그렇게 차를 운전해 숲길 입구로 이동해야 할 듯 합니다.
제주도에는 생각보다 걷기 좋은 길이 많더군요.
계획을 세우면서 자료를 찾아보다가 어디를 가야 하나 한참 고민을 했습니다.
물론 숲에 들어가면 느낌이 비슷할 수도 있지만요.
숲길과 오름, 바닷가를 적당히 섞어 계획을 세웠는데 계획대로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체력 닿는 대로 해야지요.
사려니 숲길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물을 파는데가 있으려니 싶었는데 아무 것도 없네요.
안내하는 분께 사정해 물을 반통 얻었습니다.
본인이 마시려고 사온 것이라면서 조금 준다고 야속하게 생각하지 말라면서 주시네요.
그것도 감지덕지할 일이지요.
여러 번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하고 숲길 입구로 이동합니다.
제주도에 여러 번 왔어도 사려니 숲길은 처음입니다.
주로 한라산 등산을 하기 위해 왔었지요.
사려니 숲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는데 네 코스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걷는 사려니 숲길은 '조릿대 숲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한라산둘레길 일부 구간이더군요.
'사려니'는 ' 살안이', 혹은 ' 솔안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에 쓰이는 '살' 혹은 '솔'은 신성한 곳이라는 신역의 산명에 쓰이는말이랍니다.
즉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지요.
사려니 숲길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대략 15km에 달한다고 합니다.
오전 10시 5분, 숲길로 들어섭니다.
발 밑에는 매트가 깔려 있어서 걷기에 편합니다.
10여분 걷다가 배가 고파 초콜렛을 먹으며 허기를 채웁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움직였으니 당연히 시장하지요.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숲속인데 무덤도 있군요.
제주도 무덤의 특징이지요.
역시나 사방에 돌을 쌓아 놓았습니다.
돌을 쌓아 놓는 것이 경계의 표시도 되고, 짐승으로부터 방어도 되고, 바람을 막는 역할도 한다지요.
숲길이니 오르막이 있어서 제법 운동하는 느낌도 듭니다.
계속 걸으니 땀이 줄줄 흐르네요.
바람도 없습니다.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마스크를 쓰고 아무도 없으면 잠깐씩 마스크를 벗고 걷습니다.
더운 날씨에 숲길을 걸으며 마스크를 쓴다는 건 사실 고역이지요.
여기까지 와서 좋은 공기를 마셔야 하는데 말입니다.
먼 곳에서 천천히 까마귀가 우는군요.
친구 왈, 제주도에 사는 까마귀는 여유가 있는가 보다 봅니다.
우리 보고 여유를 배우라는 것처럼 들리네요.
들꽃은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입구에서 물봉선 몇 송이 보고 보랏빛 꽃을 본 것이 다 아닌가 싶습니다.
아, 산수국 시들어가는 것도 보이는군요.
깜빡 할 뻔 했습니다.
독초로 알려진 천남성을 빠뜨리면 안 되겠지요.
오래 전 산행시 '천남성'이라는 이름을 알려주었더니 일행 중 한 명이 '첫 남성'이냐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게는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 같은 이미지로 기억되는 식물입니다.
제주도 숲에 특히 많은 것 같더군요.
다양한 나무가 우거져 있던 숲을 지나니 중간에 삼나무가 우거진 숲이 나타납니다.
정말 햇볕 한 뼘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빽빽하군요.
온 몸으로 산림욕을 하면서 걷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습니다.
건강해지는 느낌이 물씬 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