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인도 라다크 여행 열나흘째 - 레 구석구석

솔뫼들 2019. 10. 10. 09:33
728x90


K형!


 느지막히 일어나 아침을 먹었습니다.

급할게 전혀 없는 하루가 시작되었지요.

정말 여유롭습니다.


 친구와 오늘 오전에는 안 가본 길로 레를 돌아보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머무는 지그밋 호텔 반대편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역시나 수로에 맑은 물이 흐르고 골목 안쪽으로도 게스트하우스가 줄줄이 들어섰군요.

새로 짓는 곳도 많이 보이고 말입니다.

레는 확실히 관광도시 느낌입니다.

일반 물가도 관광지 물가이고요.


 가이드 말에 따르면 이곳 사람들은 건물을 짓다가 돈이 떨어지면 멈추고 돈이 생기면 그때 이어서 다시 짓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짓다 만 건물들이 주변에 꽤 보입니다.

건물을 처음부터 완공될 때까지 계속 짓는 사람들은 꽤 부자라는 말이지요.

지금 우리가 머무는 호텔은 그런 면에서 부자에 속한다고 하네요.



 골목에는 사람도 다니고, 소도 어슬렁어슬렁 다니고, 개도 하릴없이 배회를 하네요.

그러니 개의 배설물도 있고, 소의 배설물도 있고...

그래도  오가는 사람들에게 위협적이지는 않습니다.

짐승들도 이곳 사람들을 닮았는지 순합니다.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다 보니 '아미고'라는 한국 식당이 보입니다.

음식점 앞에 다양한 메뉴가 씌어 있습니다.

맛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음식점에 들어가서 된장찌개라도 먹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시장하지도 않거니와 음식점 주인인 인도 사람이 한국인 여성을 성추행해 한국 여행객들 사이에 가지 말자는 묵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을 가이드한테 들은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 당연히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겠지요.



 골목을 지나 대로로 나와서 이번에는 메인 바자르 말고 아래쪽에 있다는 바자르를 찾아갑니다.

메인 바자르와 멀리 떨어져 있는 줄 알고 길을 잘 기억해 놓아야겠다 싶었는데  거의 붙어 있군요.

바자르는 생각보다 규모가 꽤 커 보입니다.

바자르 입구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개가 심심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 개도 상팔자네요.


 바자르는 여행자들이 방문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주민들을 위한 시장이군요.

가방이나 옷가지 등 종류별로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장사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할 뿐 손님은 거의 없군요.

돌아다니는게 좀 미안해질 정도입니다.

바자르를 좀 돌아보다가 이내 돌아섭니다.



 레에서는 고기를 파는 상점을 한번도 못 봤습니다.

바자르에서 호텔로 가는 길에 채소와 과일을 파는 상점은 보입니다.

오늘은 바나나를 사 먹어 보자고 했습니다.

낱개로 파는데 가격이 한 개에 10루피군요.


 바나나를 3개 사서 시장 가방에 넣고 어제 갔던 수퍼마켓으로 갑니다.

어제 먹고 탈이 난 요구르트를 바꾸기 위해서 말입니다.

수퍼마켓에서는 날짜가 지나서 교환은 불가능하다고 하네요.

냉장고에 보관을 할 수 없으니 그날 들어온 물건을 당일 파는가 봅니다.

어차피 못 먹을 것이라 그대로 수퍼마켓에 두고 발길을 돌립니다.



 친구와 선물 등 필요한 물건 몇 가지를 더 사서는 호텔로 향합니다.

여러 번 오가다 보니 호텔 후문 옆에 자리잡은 구두 수선공과도 안면을 익혔습니다.

그 친구는 환한 얼굴로 인사를 잘 하는군요.

일이 많은 것 같지도 않은데 즐거워 보입니다.

보는 사람까지 환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물질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도 티베트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 아닐까 싶습니다.


 호텔에 들어와 바나나 하나를 나누어서 둘이 먹어봅니다.

역시나 탈이 나는군요.

라다크에서 나는 건 모조리 몸이 거부하나 보네요.

결국 또 남은 누룽지로 점심을 대충 해결합니다.


 오후가 되자 아래층이 시끌시끌합니다.

초모리리에 갔던 일행이 벌써 돌아왔군요.

휴식을 위해서 초모리리에서도 일찍 출발했다고 합니다.

초모리리에서는 호수에 안개가 끼어 전망이 그리 좋지 못 했다고 하더군요.


 저녁에는 닭볶음탕을 한다고 합니다.

가이드가 음식을 직접 하는 것이고 익힌 음식이니 괜찮으리라 믿어 보아야지요.

오랜만에 닭다리를 손에 들고 뿌듯해 합니다.

위장이 화들짝 놀라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저녁을 먹으며 내일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가이드는 국내선 항공기도 부치는 짐 무게가 20kg이라 부담이 없다고 하네요.

친구와 찾아본 바에 의하면 승객 한 사람당 15kg까지만 무료인데 말입니다.

허허실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가이드의 자세에 이제 좀 화가 나네요.

책임감이 부족하다고나 할까요.


 어찌 되었든 짐을 챙겨 놓고 레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냅니다.

실제로 날짜가 길기도 했지만 고산증에다 차량에 시달려 몸이 고단한데 장염까지 속을 썩여 참으로 길게 느껴졌던 여행입니다.

물론 지나고 나면 이 고생 또한 추억이 되겠지요.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어느 새 익숙해져 내일이면 들을 수 없겠다 싶으니 조금 섭섭해지는 밤입니다.


적요의 밤

내 등이 가렵다

히말라야의 어느 설산에

눈사태가 나는가 보다


적요의 밤

귀가 가렵다

남태평양의 어느 무인도에

거센 파도가 이는가 보다


적요의 밤

잠이 오지 않는다

내 은하계의 어느 행성에

오색의 운석들이 떨어지고 있나 보다


적요의 밤

어디선가 밀려오는 향훈...

내가 떠나왔던 아득한 전생의 종루에서

누군가 지금 종을 울리고 있나 보다


       임보의 < 적요의 밤 >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