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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라다크 여행 열하루째 - 판공초에서 (2)

솔뫼들 2019. 10. 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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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1시간 10분 걸려 드디어 메락에 도착했습니다.

마을이 크지 않군요.

그 중 '암치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에 들어갑니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전부 한 방에서 묵어야 합니다.


 푸근해 보이는 인상의 주인장과 인사를 나누고  방을 정해 짐을 풉니다.

방에는 각자 사용할 수 있는 매트리스가 벽을 따라 깔려 있네요.

시간이 아직 이르니 근처 산책 겸 구경을 하러 나갑니다.

물론 여기는 해발고도 4200m나 되는 곳이니 옷은 알아서 챙겨 입어야지요.



 밖으로 나서니 바람이 꽤 세차게 붑니다.

보리가 납작하니 허리를 숙였군요.

흰눈 이고 있는 설산과 녹색의 물결이 만들어내는 풍광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색의 대비가 아주 산뜻하지요.

카메라에 그런 풍경을 만들어내는 바람을 잡아넣지 못 하는게 못내 아쉽네요.


 숙소 옆 바람 일렁이는 보리밭 풍경이 일행들 발을 잡고 놓지 않습니다.

누구는 '삼발이'까지 가져와서 아예 보리밭 앞에 자리를 잡았고 누구는 자세를 낮추고 바람의 물결을 응시하고 있군요.

저야 늘 그렇지만 두어 컷 카메라에 담고 호숫가로 발을 옮깁니다.



 걸으면서 뒤를 돌아보니 멀리 언덕배기에 손톱만하게 곰파가 보이는군요.

일행 중 누군가는 또 그곳으로 발길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열정이 넘치는 분이군요.

점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걷다 보니 호숫가에 이르렀습니다.


 호숫가 바닥에는 작은 보랏빛 꽃들이 수줍게 피어 있습니다.

바닥에 허옇게 소금꽃이 피어 있으니 이 꽃은 염생식물이겠네요.

호수에는 바다처럼 갈매기도 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바다에서 보는 괭이갈매기는 아닌 듯한데 갈매기가 날고 있습니다.

물고기가 사는 줄은 모르겠는데 새우는 산다고 하는군요.

바다새우가 호수에 맞게 진화했다고 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지요.


 호숫가를 따라 걷습니다.

가지런히 쌓인 돌담이 정겹게 말을 거는군요.

여기도 사유지 경계를 돌담으로 하는가 봅니다.

돌담에 기대어 사진을 몇 장 찍고 발길을 옮깁니다.



 친구는 차에 시달려서인지 영 기운이 없습니다.

걱정스럽습니다.

평소에 친구는 '천천히 걸어도 황소 걸음'이라고 느리지만 지구력있게 걷는 편이기는 한데

오늘은 유난히 걸음이 느리고 바닥만 쳐다보고 걷는군요.

저는 고산증에 대비한 약기운 덕분인지 견딜 만한데 말입니다.


 바람이 차가워져 숙소로 들어갑니다.

토스트에 달걀부침, 그리고 티베트 카레요리와 요구르트가 저녁으로 나왔습니다.

먹을 만합니다.

맛이야 어떻든 잘 먹어 두어야지요.

게다가 어찌나 친절하고 겸손한지 주인장 부부가 바로 보살 아닌가 싶습니다.


 주방을 둘러보니 온갖 식기가 진열되어 있는데 전부 반짝반짝 합니다.

주인이 부지런하다는 말이겠지요.

인도의 다른 곳에서 본 주방과 사뭇 달라서 주인장을 다시 보게 됩니다.

가이드 말로는 이렇게 밖에 멋진 식기들을 진열해 놓음으로써 자기네 수준과 능력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게스트하우스 이름이 '암치'였지요.

'오래된 미래'라는 책에서 본 바에 의하면 암치는 지역 전통 의사를 말합니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주인장이 이 작은 마을 메락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주민들을 치료해주는 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들의 따뜻한 미소와 손길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기운을 얻을 것 같군요.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습니다.

머리에 벙거지 모자를 쓰고 羽毛服까지 덧입고 말입니다.

난방이 안 되는 곳이니 중무장을 했지요.

그저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움직임을 적게 해야 덜 고통스러우니까요.

물론 오지에서 밤에 할 일도 없고 말입니다.

친구는 저녁도 제대로 못 먹더니 밤새 괴로워 합니다.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준비해 주었는데 그나마 물을 마시며 억지로 밤을 버티고 있는 듯 합니다.


 고산증 대비해 수시로 물을 마셔서인지 모두들 화장실에 번갈아 드나듭니다.

어차피 숙면을 취하기는 힘드니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살그머니 밖을 내다봅니다.

혹시나 쏟아질 듯한 별을 볼 수 있을까 일말의 기대를 하고서 말입니다.

하늘은 그저 뿌옇군요.

어디선가 구름이 몰려왔나 봅니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갈 길은 멀다.'

법구경에 나오는 말이던가요.

해발 4200m 판공초 메락 나그네 숙소에서 왜 그리 밤은 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