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국민의 숲길을 걸으며 (6)
K형!
짐을 챙겨 펜션을 나섭니다.
우리 일정을 들은 숙소 주인장께서 '국민의 숲길' 입구까지 태워다 주신다고 하네요.
무척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국민의 숲길'에 대해 숙소 주인장도, 카페 주인장도 우리가 인터넷에서 찾아본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찾아본 자료에 의하면 3시간 정도 트레킹을 하는 코스로 나오는데 한 바퀴 돌아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하니 어떻게 된 일일까요?
계획했던 대로 일단 가 보기로 했습니다.
오전 10시, 국민의 숲길 입구에서 숙소 주인장과 작별을 하고 트레킹 준비를 합니다.
신발 끈을 묶고, 스틱을 준비하고, 모자와 고글을 챙기고...
약간 오르막길이지만 길은 평탄합니다.
정말 '설렁설렁' 걸어도 좋은 길이군요.
초입에는 낙엽송이 도열해 있습니다.
速成樹라 헐벗은 산지를 위해 심었다는 나무이지요.
어제 내린 눈으로 바닥은 하얗게 덮여 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란데 쭉쭉 뻗은 나무의 자태가 속을 시원하게 합니다.
인공 조림한 것이지만 어디든 나무가 많으면 저절로 마음이 푸근해지고 넉넉해지지 않나요?
잔뜩 때가 묻은 인간을 정화시켜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입니다.
몸을 데우며 어느 만큼 올랐을까요?
갈림길이 나옵니다.
스마트폰으로 우리가 원하는 길을 찾는데 잘 알 수가 없네요.
인터넷에는 환상적인 길인 것처럼 홍보를 하고 있는데 정작 방문하는 사람들이 길을 찾기 어렵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뭐, 어찌 되었든 숲을 한 바퀴 돌면 되려니 하고 오른쪽 길을 선택합니다.
걸을수록 숲이 어두워집니다.
날씨가 흐려졌느냐고요?
아닙니다.
삼나무와 독일가문비나무가 빽빽하게 있으니 숲이 어두침침하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여름에 오면 산림욕은 당연하고 저절로 피서가 되겠군요.
해발고도가 높으니 기온이 낮고 나무가 많아 어둡게 느낄 정도니 그늘은 당연지사.
3월 하순답지 않게 싸늘한 날씨로 인해 겹겹이 껴입은 못 때문에 산림욕 효과는 없겠지만 마음은 산림욕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타박타박 걷습니다.
뒷동산 같은 느낌이 드는 편안한 길이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잠시 서서 스마트폰 지도를 확인해 보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바우길이라는 안내 표시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길을 찾을 수가 없어 답답합니다.
강릉과 평창 두 지역에 걸쳐 있어서 서로 미루다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욕심이 앞서 이정표조차 제대로 안 해 놓고 홍보에만 열을 올렸는지도 모르지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다가 앞에서 오는 사람에게 물어 봅니다.
대략 맞는 것 같은데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군요.
늘 같은 길만 반복해 운동 삼아 다니는 지역민인 것 같습니다.
숙소와 카페 주인장이 다 돌아도 1시간이면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차도가 나오네요.
친구 말에 의하면 강릉으로 가는 구도로라고 합니다.
길을 건너 숲으로 들어갔는데 길이 이상합니다.
희미한 길을 따라 가다가 오래 전 나무 하던 초동들이 다니던 길 같아서 도로 내려옵니다.
어차피 걷기 위해 온 것이기는 하지만 조금 짜증이 나네요.
도로를 따라 오르다 보니 다시 이정표와 안내지도판이 보입니다.
이 길을 따라 쭈욱 걸으면 제왕산이 나오는군요.
일정상 본격적인 산행을 할 건 아니니 반대편 길로 접어듭니다.
햇살이 노랗게 비치는 곳이어서인지 꽃봉오리를 매단 나무들이 눈에 띄는군요.
어제 폭설이 쏟아졌지만 계절의 변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겠지요.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걷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더 걸으니 커다란 기념비가 나오네요.
구 영동고속도로 준공 기념 비석이랍니다.
아래쪽에는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이 있군요.
주차된 차량도 많고 오가는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띕니다.
이쪽에서 가벼운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여기에서 어떻게 할까 친구와 잠깐 의논을 하다가 어제도 걸었으니 그만 일정을 접기로 합니다.
12시가 넘었으니 그래도 2시간 이상 걸은 셈입니다.
이제 다시 대관령 휴게소로 가는 길입니다.
휴게소에 들어가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배낭에서 간식을 꺼내어 차와 함께 먹으며 여유를 부려 봅니다.
휴게소 식당에서는 어제 점심을 먹었으니 국민의 숲길 중간에 있다던 남경식당을 인터넷으로 찾아 봅니다.
지역 주민들도 즐겨 찾는 음식점이라니 믿을 만하겠지요.
남경식당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군요.
다행입니다.
조금 쉬다가 남경식당을 향해 걷습니다.
내리막길이 우리를 기다리네요.
길 옆으로는 건축중인 유럽풍의 호텔이 보입니다.
음식점과 숙소를 겸해 짓는 것 같은데 예쁩니다.
자그마한 단독형 숙소가 이어지는데 동화 속 마을 같군요.
그런데 운영은 잘 될까 공연한 걱정을 잠시 해 봅니다.
친구는 또 오지랖이 넓다고 한 마디 하지 않을까요? 후후
막국수와 만두국이 유명하다는 남경식당에 도착했습니다.
대형 관광버스에서 사람들을 한 무리 쏟아 놓는군요.
자칫 좌석이 없을 수도 있겠다 싶어 동작 빠르게 들어갔습니다.
막 식사를 끝내고 나가는 사람들 자리에 앉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으니 주문도 밀리고 시끌벅적 도떼기시장 같군요.
그만큼 소문난 곳인 모양입니다.
막국수와 꿩고기만두를 시켰습니다.
막국수는 메일가루에 무얼 섞었는지 다른 곳과 달리 국숫발이 쫄깃합니다.
여기만의 특색이겠지요.
그런데 술도 잘 못 마시는 친구가 갑자기 막걸리를 한 병 주문하네요.
그것도 무려 1L나 되는 대용량 막걸리입니다.
물론 차 운전을 할 일은 없지만 양이 많기는 하네요.
막국수와 꿩고기만두를 안주 삼아 한 잔 또 한 잔!
갑자기 술꾼이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배가 부릅니다.
음식점에서 나와 다시 대관령휴게소로 올라가야 합니다.
소화도 시킬 겸 씩씩하게 걸어야지요.
배가 부른데 오르막길이라 힘이 들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희한하게도 내려올 때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는군요.
처음과 두번째의 차이겠지요.
휴게소에서 짐 정리를 한 후 콜택시를 부릅니다.
시간 여유가 있지만 진부역에 가서 쉬기로 했지요.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이번 여행을 돌아봅니다.
1박2일간의 짧은 여행이지만 여러 가지 추억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