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선자령, 그 바람 부는 언덕에서 (2)

솔뫼들 2019. 4. 2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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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낮 12시경 배낭을 메고 일어섭니다.

벌써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도 많군요.

하기는 우리가 좀 늦기는 했지요.

그래도 해가 지기 전에만 내려오면 되니 그리 긴장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배낭 속에 아이젠, 랜턴 등 비상 장비도 모두 챙겨왔으니까요.



 잠깐 들머리를 찾아 헤매다가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안 보이네요.

얼마 오르지도 않았는데 헉헉거립니다.

수면 부족에 금세 점심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천천히 걷기로 했습니다.


 아까는 쾌청했던 하늘이 우중충하게 변했습니다.

친구는 오늘 오후에 평창에 눈 소식이 있었다면서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그러면 정말 3월에 대관령에서 瑞雪을 맞게 되는 셈이 되지 않을까 저도 기다려 봅니다.

그러면 이래저래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겠지요.


 대관령 휴게소의 해발고도가 800m대여서 그리 올라가지 않아도 되려니 했는데 계속 오르막길입니다.

휴!

수십 년 산꾼인 저도 언제나 오르막길은 힘이 들지요.



 얼마쯤 올라가자 평탄한 길이 나타납니다.

멀리 철탑이 보이는군요.

이정표로 삼기에 제격입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통신 기지국입니다.

기지국 옆으로 수많은 산악회 리본들이 나비떼처럼 펄럭입니다.

지나치게 많아 때로는 공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렇게라도 자신과 산악회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나 봅니다.


 내려오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내처 걷습니다.

바우길 2구간과 나뉘는 분기점을 지나 직진합니다.

길이 점점 진흙탕으로 변합니다.

두 사람 모두 새로 신고 온 등산화가 순식간에 엉망이 되는군요.

덜 질척이는 곳을 골라 발을 딛기도 쉽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발 가는 대로 걷습니다.

3월의 선자령 가는 길은 이렇게 기억되겠구나 하면서 말이지요.


 길이 워낙 예측 불허라 걷는데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저를 따라온 친구도 말없이 걷고 있군요.

이런 도보 여행을 처음 하는 친구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합니다.

저야 늘 길 위에 있었으니 새삼스럽게 악천후를 만나도, 험한 길이 나와도 그러려니 하지만 말입니다.



 대략 1시간 정도 걸었나 봅니다.

길 옆으로 쉴 만한 공간이 보여 잠시 커피라도 마시고 싶어졌습니다.

양쪽으로 갈라진 나무 사진도 찍고 엉덩이를 살짝 대고 앉아보기도 합니다.

꼭 그러라고 준비해 둔 것처럼 여겨지니까요.


 차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지나가는군요.

산악회에서 단체로 온 모양입니다.

그 사람들 바지와 신발도 엉망입니다.

제 바지도 아랫단은 진흙이 묻어 완전히 장난꾸러기처럼 되었네요.

어쩌겠습니까?

해토머리 3월 산행에서는 각오해야 하는 일이지요.


 간식을 먹고 차를 마시며 한숨 돌리고 쉬다가 다시 일어섭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길은 살짝 올라가다가 간혹 구부러지다가...

어쩌다가 매트를 깔아놓은 곳을 만나면 반갑습니다.

요즘 산길에 자연친화형 매트를 많이 깔아 놓지요.

둘레길은 더욱 그렇고요.

진흙탕 길에서 헤매다가 그런 길을 걸으려니 거저 먹는 기분입니다.

물론 그런 일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지만요.



 저 멀리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풍력발전기는 언젠가부터 대관령의 상징처럼 되었지요.

눈앞을 가로막는 것이 없으니 속이 다 후련합니다.

게다가 유명한 선자령의 바람이 맞아주니까요.


 고도가 높아져서인지 길이 살짝 얼었습니다.

바람은 더 세졌군요.

체온이 내려가 겉옷을 하나 덧입었습니다.

그때 살그머니 얼굴에 닿는 차가운 것, 바로 눈발입니다.

드디어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군요.

얼마나 내릴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평소 눈과 바람이 유명한 대관령, 선자령.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눈보라에 모자도 방한모로 바꾸어 쓰고 걷습니다.

정말 예측불허 날씨네요.

변화무쌍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이겠지요.

지나치는 사람들도 눈보라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고 걸음을 빨리 합니다.


 친구는 이런 날씨가 아주 마음에 든다는군요.

추위를 많이 타면서도 눈과 바람, 비를 좋아한다고요.

산에 그리 다녔어도 이런 눈보라를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요 근래는 눈이 드물어 수도권에서는 눈을 밟기조차 어려우니까요.

지난 겨울 산에서 설화나 상고대 구경을 못하고 보냈습니다.

산사람으로서 무척이나 서운한 일이지요.

3월이기는 하지만 지역이 지역인지라 더욱 이번 여행에 기대를 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날씨가 우리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눈보라는 평생 여러 번 만날 수 있는 눈보라가 아닙니다.

정말 고글을 착용하지 않았다면 눈을 뜨기 어려운 상황이지요.

바람 때문에 게걸음으로 걷는 우리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기는 하네요.

비썩 마른 두 사람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이지요.

하기는 배낭 무게가 만만치 않으니 그나마 도움이 되겠군요. 후후


 어디에서 보았던가요.

'나쁜 날씨란 없다.

준비 안 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했으니 씩씩하게 날씨에 맞서 걸으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