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울산 여행 셋째날 - 영남 알프스 (2)

솔뫼들 2019. 2. 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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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어림짐작하건대 바로 위가 간월재일 것 같다.

잡목이 우거진 길을 손으로 휘저으며 올라간다.

오전 10시50분, 드디어 간월재 (해발 900m)에 도착했다.

너른 평원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아! 이 기분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그렇게 오고 싶었던 곳에 서니 도리어 말문이 막힌다.



 숨을 헉헉거리며 올라오는 친구에게 간월재라고 소리쳐 알려주고 간월재임을 알려주는 돌탑 앞으로 갔다.

친구가 도착한 후 돌탑과 지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우리 외에 산꾼들이 없으니 누구보고 사진을 찍어 달랄 수도 없네.


 여유를 찾고 사방을 둘러보니 바람에 술렁이는 억새가 아직도 늦가을 분위기를 풍기고 있고, 끝간데 모를 것 같은 구절양장이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다.

친구는 저기가 천황산, 저 너머가 재약산 하는데 나는 초행길이니 그저 눈길만 그쪽으로 줄 뿐이다.

너른 평원에는 산꾼들을 위한 대피소가 멋지게 서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대피소에서 잠깐 몸과 마음을 내려놓았다 가도 좋으련만...

바람도 쉬어간다는 휴게소에서 우리는 쉬지 못하고 마음만 굴뚝 같다.


 혹시 폭염에 지친 어느 여름날

 구름 아래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숨 막히듯 힘겹게 느껴지시거든

 이 곳 신불산 간월재에 올라오시라.

 올라와 세상 가득찬 운무를 밟고 서서

 찬란한 태양과 새파란 하늘을 맞으시라.

 또 지척 오만 평 억새밭에 너울대는

 고된 생을 진 짐꾼들의 떠도는 영혼들을 만나시라.


 혹시 비바람 몰아치는 어느 궂은 날

 비구름에 둘러싸인 세상 일들이

 두렵고 원통하게 생각되시거든

 이 곳 신불산 간월재에 올라오시라.

 올라와 저 아래 왕방곡 죽림굴 숫막터

 새 하늘과 새 땅 그리던 민초들을 생각하시라.

 또 조국의 운명을 놓고 좌우로 갈라져

 목숨을 들풀같이 태운 저 젊은 전사들을 기억하시라.


 혹시 날도 저물고 밤안개 어스름한 날

 삶의 의욕이 안개처럼 흩어지고

 남은 삶 갈 길 몰라 문득 공허하시거든

 이 곳 신불산 간월재에 올라오시라.

 올라와 잃어버린 주인 한없이 기다리는

 갈색 개 한 마리의 순진한 눈망울을 마주보시라.

 또 수많은 인생들의 소원 가득 품고 우렁차게 흐르는

 파래소 폭포 그 맑고 힘찬 물소리를 듣고 가시라.


          최병암 시 < 신불산 간월재 > 전문


 

 휴! 된비알은 이제 어느 정도 끝났겠지.

억새가 유명해 조성된 트레킹코스인 하늘억새길이니 조금은 수월하리라

한숨 돌리고 우리가 갈 길을 올려다본다.

간월산을 올랐다가 간월재로 내려와 신불산을 향해 가야 한다.

능선길이라 어렵지는 않다 해도 거리가 만만치는 않은 길이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해 본다.


 간월산까지 거리는 800m.

간월산을 향해 앞쪽에 나 있는 계단길을 따라 오른다.

나즈막한 계단을 쉼없이 오르자니 가파른 길도 아닌데 헉헉 숨이 차오른다.

친구는 나더러 부지런히 간월산에 다녀오란다.

자기는 쉬엄쉬엄 오르다 나를 만나면 도로 내려온다나.

헉! 전에 몇 번 가 보았다고는 하지만 불공평한걸.


 열심히 발걸음을 옮긴다.

앞에 전망대가 있나?

사람소리가 나서 올려다보니 공사를 하는 분 같기도 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스님이 산행중이시군.

배낭도 없고 물통 하나 안 들었는데 굉장히 편안해 보인다.

고수이신가 보네.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간월산을 향해 거리를 줄인다.



 가다가 보니 바닥에 동그란 것이 보인다.

뭘까?

안내문에는 간월산 규화목이라 되어 있다.

'규화목'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

지구과학이라고는 중학교적 지식이 전부인데 그나마 다 자동삭제되었으니 말이다.

이 단어를 기억해 두려 애쓴다.

얼마나 오래 가려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규화목은 화산활동이나 홍수 등 강한 힘에 의하여 파괴된 목재조직이 산소가 없는 수중환경으로 이동하여 매몰된 후 지하수에 용해되어 있던 다양한 무기물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목재조직의 세포내강 또는 세포간극에 물리화학적으로 침적 또는 치환되어 형성된다.'


 앞만 보고 걷는다.

편안하던 산길이 슬금슬금 험악해진다.

평소 이런 길을 더 즐기기는 하지만 시간이 촉박할 때는 부담스럽지.

그래도 아래 편한 길을 두고 바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간월산을 향해 걷는다.

간월산에서 내려오시던 스님은 전망대에 계시던 스님과 일행 같은데 쉬운 길로 오시네.

이 스님이 배낭을 메고 뒤에 처지셨나 보다.


 친구가 멀리 오는 걸 확인하고 걸음을 옮겨 肝月山( 해발 1069m)에 도착했다.

역시나 아무도 없다.

혼자서 '셀카'로 사진 한 장 찍고 바로 뒤돌아서서 5분쯤 갔나?

허위허위 따라오던 친구가 안 오려고 했는데 여기까지 왔다며 억울해 한다.

후후! 운동한 셈 치시구려.



 내려가는 길은 당연히 속도가 빠르다.

친구 말에 의하면 전망대 부근에 있던 산길이 우리가 올라올 때 봤던 묘지 부근에서 올라오는 길이었던 것 같단다.

그리로 올라왔으면 간월재를 두번 오가는 일이 없어 시간이 절약되었겠지.

물론 간월공룡능선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이 붙어 있으니 난이도가 높겠지만 말이다.


 내려가다가 계단 중간쯤에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한다.

정말 시원스레 펼쳐진 평원이 나를 감싸안아주는 듯하다.

나를 손짓해 부르는 저 억새 우거진 평원의 매력에 빠져 잠시 눈을 감아 본다.

오기 쉽지 않은 산행이어서인지 감개무량하다.



 산길 중간에 안온하게 자리잡은 대피소 건물도 여기에서 내려다보면 작품이다.

하기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 하나 작품 아닌게 있으려나?

어떻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도 작품 사진이 나온다는 말이 실감난다.

정말 훌륭한 풍광 앞에 서서 내가 겸손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렇게 두 발로 이런 풍광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 가득하다.


 은빛 억새가 한창인 매년 10월에는 이곳에서 '영남 알프스 억새 대축제'가 개최된단다.

등반대회뿐 아니라 패러글라이딩 대회, 울주오딧세이 등등이 열린다는데 바람에 날리는 5만평 억새 평원에 억새와 어우러진 사람들의 물결이 눈에 선하다.

얼마나 장관일까.



 친구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친구 말에 의하면 아까 만난 스님들은 통도사 스님들이란다.

그 스님 중 한 분이 영축산에서 통도사로 내려가는 길에 어떤 길을 선택하라고 알려준 모양이다.

그 말을 들으며 이왕이면 우리를 기다려 함께 내려가 주면 그게 바로 보시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물론 전망대에서 만난 스님은 몸이 날렵해 축지법을 쓰는 도사(?) 수준으로 보였지만.

만약 함께 간다면 우리는 10kg 가까운 배낭을 메고 날기는커녕 뛰지도 못 할테니 속이 터지겠지.

이미 지난 일이라 그렇게 말하면서 피식 웃는다.


 다시 간월재로 내려가 이제 신불산을 향해 가야 한다.

간월재에서 안내문을 보고 있는데 산길을 정비하는 분들이 무거운 목재를 지고 지나간다.

그러고 보니 무거운 짐은 모두 외국인 근로자 몫이네'

옆으로 비키는 내 행동이 빠르지 못 했는지 어눌한 말씨로 비켜달라고 한다.

어깨에 진 목재가 몸을 짓누를텐데 미안하구만.

이제 3D 업종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가 그들을 함부로 여기지 말고 도리어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단일민족 운운 하면서 가장 인종 차별을 많이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혹시 그러지 않았는지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