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다시 한번 도전을 - 두타, 청옥 종주 (1)

솔뫼들 2018. 10. 1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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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들어서면서 한번쯤 힘든 산행을 해야 체력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서 두타산과 청옥산을 아울러 타는 산행을 계획했다.

이런 계획을 세워 놓으면 아무래도 몸 관리를 하게 되니 체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 와중에 어머니 병환으로 간병을 하다 체력이 더 부실해지기는 했지만 추석 지나고 날짜가 닥쳐 집중적으로 길고 짧은 연습 산행을 반복했다.

용불용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날짜가 다가오니 무박산행은 자신이 없다, 몸살이 났다 등의 이유로 동참한다던 사람들이 빠지고 로미와 나, 둘만 남았다.

그렇다고 계획된 산행을 미룰 수는 없지.

9월 28일 밤 11시 30분 심야 고속버스에 몸은 싣고 삼척으로 향한다.

낮에 좀 쉬었어야 하는데 단짝 친구랑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저녁에 집에 들어오는 바람에 허겁지겁 짐을 싸고 저녁 먹고 출발했으니 컨디션은 좋을 턱이 없다.

버스에서 자야 하는데...



 횡성 휴게소에 잠시 쉬고 동해를 거쳐 삼척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2시 43분.

비몽사몽 배낭을 메고 터미널에 내려 정신을 차리곤 편의점을 찾았다.

시간이 너무 일러 필요한게 있으면 사고 30여분 쉴 겸 편의점에서 서성댄다.

수도권에는 한 집 건너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편의점도 삼척 터미널 주변에는 한 곳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니 무척이나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군.


 오전 3시 30분 삼척터미널 앞에서 천은사로 가기 위해 택시에 오른다.

택시 기사는 쉰움산을 거치는 어려운 코스를 선택했다고 한 마디 한다.

자기는 친구 따라 산을 다니다가 이제는 요트의 매력에 빠졌다는 둥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고, 택시는 어둠을 뚫고 천은사를 향해 달린다.


 天恩寺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4대조인 목조의 능을 수축하고 이 절을 원당으로 삼아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성계의 5대조 묘인 준경묘가 삼척 이 근처에 있었지.

이곳이 풍수지리학상 명당인 모양이다.

천은사는 신라 경덕왕 때 처음 세워진 사찰이었는데 고려시대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지은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창건 당시 이름인 백련대에서 간장암, 간장사, 흑악사를 거쳐 천은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전 4시, 천은사에서 헤드랜턴을 밝히고 산행 준비를 한다.

14년 전에 왔을 때 개가 몹시 짖어대는 바람에 절집이 시끄러워졌던 기억이 나는데 오늘은 조용하네.

어둠 속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등산로를 찾아 묵묵히 걷는다.

이 깊은 산중에 소음도 없겠지만 계곡 물소리가 모든 소리를 잠재웠다.

거기에 가끔 스틱 짚는 소리만 들릴 뿐.


 오늘도 역시 거미줄은 아주 격렬하게 나를 환영한다.

얼굴이 거미줄에 걸린 곤충 모양이겠군.

볼 사람 없어도 공연히 혼자 중얼거리며 걷는다.


 적당한 바위가 있는 오르막길.

시간적으로 이른데다 계절적으로 이 산을 찾는 것이 가장 선선한 계절이라 추울까 봐 걱정을 했는데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된다.

습도가 많은 모양이네.

추운 것보다는 낫지만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흐르는 땀도 번거롭기는 하다.

잠깐 쉬면서 겉옷을 하나 벗어 넣는다.



 방향을 알 수 없을 정도의 칠흑 같은 밤이라 길을 찾기도 쉽지 않다.

추석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달은 밝지만 달빛만으로 숲 속에서 길을 찾는 건 언감생심.

헤드랜턴 불빛을 이리저리 비치며 겨우 길을 찾는다.

사실 야간 산행은 길이 익숙해야 하는데 10여년 전에 한번 온 길을 찾는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지런히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약간 이지러진 달에 총총한 별빛.

확실히 별이 많고 선명하다.

지금 하늘을 보면 낮에도 날씨는 좋을 것 같은데...

긴 산행을 하려니 날씨도 매우 걱정이 된다..

날씨에 따라 체력이 얼마나 달라지는 줄 잘 알기 때문이지.



 앞에서 무언가 푸드득 날아간다.

아이고! 우리가 숲의 주인들 잠을 깨웠구만.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찌 할꼬.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급하게 피한 중생들은 자다 말고 날벼락을 맞은 셈이 되었겠다.


 어둠 속에서도 우뚝우뚝한 소나무 자태가 심상치 않다.

낮에 보면 얼마나 대단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이렇게 밤도깨비가 되어 매번 쉰움산을 찾는 건 안타까운 일이네.


 몇 번이나 길을 헷갈리고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어둠 속에서 줄을 잡아야 할 때는 어찌나 긴장이 되는지...

게걸음치듯 줄을 잡고 실실 옆으로 발자국을 옮긴다.

아무 것도 보이지는 않지만 바로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같으니 제 정신이 아니다.



 그렇게 더듬거리며 걷다 보니 오전 5시 10분, 쉰움산 정상(해발 670m)이다.

전에 와본 기억이 있어 정상인 걸 알아볼 수 있었다.

택시 기사분 말씀에 1시간 10분 걸린다더니 쪽집게처럼 맞추었네그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얼떨결에 쉰움산까지 온 느낌이다.


 쉰움산은 쉰 개의 우물이 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한자로 五十井山이라고 하더니 신기하게도 정상 바위 곳곳이 움푹 파여 있고 그곳에 물이 고여 있다.

전보다 이번에는 물이 고인 곳이 더 많이 눈에 띈다.

랜턴 불빛을 이리저리 비추며 우물을 찾아본다.

바위와 거기에 고인 물과 소나무와...

정말 희한한 광경이다.


깊은 산골 우물 속에 두런두런
천일기도하고 있는 청개구리 한 놈
하늘 나라 은하수 은두레박이
깊은 밤 우물까지 물 길러 오네


 임보의 < 깊은 산골 우물 속> 전문



 주변을 둘러 보니 전에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무속신앙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돌무더기에 갖가지 색깔 헝겊을 줄에 매어 둘러놓은 모습이 신새벽에 섬뜩하게 다가왔었지.

동틀 무렵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풍경에 기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제대로 쉬지도 못 하고 허겁지겁 올라왔으니 좀 쉬자.

배도 고프니 잠깐 앉아서 요기를 하고 숨을 돌린다.

어둠 속에서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무언가를 먹고 잠시 몸을 움직여 본다.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겨우 1시간 남짓 오기는 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자신감을 채우고 몸을 일으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