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이름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 대암산 용늪 (2)

솔뫼들 2018. 8. 2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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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행들과 헤어져 천천히 걷는다.

어느 만큼 올라왔을까?

앞서가던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있기에 살펴 보니 점심을 먹고 있다.

시간이 좀 이르기는 하다.

일행을 기다리느라 서 있는데 땀이 식어서 서늘하다.

대암산 정상 부근은 아래보다 섭씨 10도 정도 낮다더니만 정말 선선하네.


 일행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오늘 SBS 방송국에서 촬영 나왔다는 기자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물은 생명이다.'라는 다큐 프로그램을 찍는다고 한다.

이 사람 저 사람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는데 사람들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지 같은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한다.

점심을 먹을 때 내게도 인터뷰를 하자며 카메라를 들이대었는데 미리 생각해 본 내용이 아니라 내가 말하면서도 내용이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분명히 편집을 당할 거라며 한바탕 웃었다.


 점심 시간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10분 전 12시에 시작해 30분이나 지났을까?

다른 팀들이 떠나는 걸 보면서 우리도 부리나케 자리를 정리한다.

오늘 일정도 꽤 바쁘구만.



 햇살이 보이는 대신 길이 평탄해졌다.

누군가 해발고도가 1000m가 넘었으니 거의 다 올라왔을 거라고 한다.

길이 넓어지더니 길가 큼직한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황벽나무, 거제수나무, 자작나무...

그리고 한쪽으로는 동자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동자꽃 역시 수도권에서는 보기 힘든 꽃이다.

연보랏빛 솔체꽃도 자주 보인다.

이러니 눈이 더불어 바쁠 수밖에.


 여기는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군.

납작한 돌이 넓게 깔려 있어서 여기가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곳인가 고개를 갸웃 하게 될 정도네.

그런데 이 돌에 얽힌 이야기도 있었다.

이 돌은 제천에서 공수해 온 것으로 비가 많이 내렸을 때 토사가 용늪으로 흘러 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세균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이 돌에 살균 처리까지 했다고 하니 용늪 보호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언제 더웠냐 싶게 공기가 선선하고 하늘은 이미 가을이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높이 뜬 모습이 시원스럽다.

바람 솔솔 불지, 날씨 맑지, 자연 황홀할 정도로 살아 있지...

모든게 완벽한 날이다.


 눈을 바쁘게 움직이는데 제대로 만들어진 약수터도 보이네.

그럼 물 한 모금 마셔 주어야지.

물을 한 바가지 받아 마셔보니 시원하다 못해 물이 차다.

하기는 해발고도 높은 곳인데다 오염물질이 없으니 물맛이 좋고 시원한게 당연하겠지.

이런 오지에서 약수를 마시면 보약 먹는 기분마저 든다.

약수를 마시면서 늘 그렇게 말하곤 했지.

산삼 썩은 물이라고.

一切唯心造라고 무엇이든 마음 먹기 나름 아닌가.



 목을 축이고 조금 걸으니 사람들이 웅성웅성 서 있다.

오후 12시 45분, 드디어 용늪(해발 1280m)에 도착했다.

용늪을 알리는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나도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고 뒤에 오는 신사장님과 로미를 기다린다.

일행 넷이 함께 사진을 찍으려니 유사장님께서 극구 거부하신다.

새삼스럽게 사진 찍는게 싫다 하시는데 얼룩이 반바지 때문이 아닐까 피식 웃어 본다.


 앞 팀 20명이 떠나고 우리 팀도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데크를 따라 걷는다.

1년 중 안개가 끼는 날이 170일 이상이라 안개가 올라가는 모양을 보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이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여 용늪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용의 토박이말인 미르가 바로 '물'의 어원이라고 설명을 한다.

여태껏 몰랐던 사실을 듣느라 귀를 쫑긋 하는데 귀에 잘 들어오지 않네.

서너 발자국 걸으면 새카맣게 잊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해설사가 문제를 내면서 정답을 맞추어야 용늪 탐방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아이고! 큰일 났다.

문제는 키가 가장 작은 나무는 무엇일까?

누군가 넌센스 퀴즈라고 생각했는지 뒤에서 '小나무'라고 답한다.

그런데 진지한 문제였네.

아무도 못 맞추자 답을 알려주는데 처음 듣는 나무 이름이다.

제주도에 서식하는 '돌매화'란다.

너무 어려운 문제였군요.


 이번에 내는 문제는 정말 맞춰야 하는데...

다음 문제는 풀 중에서 가장 키가 큰 풀은?

누군가 뒤에서 큰 소리로 답한다.

아! 대나무였다.

우리는 보통 대나무가 나무인 줄 알지만 대나무는 마디가 있는 벼과 식물이다.

학창시절 배워 잘 아는 윤선도의 시조 '오우가'도 한 몫 했겠지.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햐 하노라.


             윤선도의 < 오우가 > 중에서


솔채꽃                    


 용늪 탐방로 입구에는 외래종의 유입을 막기 위해 신발을 털고 가라고 매트가 깔려 있다.

그 한쪽에 솔체꽃이 보이네.

연보랏빛으로 유독 키가 커 껑충해 보이는 모습이 가녀린 여인의 모습을 닮았다.

그걸 보고 해설사는 솔체꽃에 얽힌 슬픈 전설을 이야기해 준다.

꽃 선물을 할 때 이왕이면 꽃말을 알고 선물하면 좋지 않겠느냐면서.

연인에게 꽃 선물을 하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꽃을 선물하면 그런 낭패가 또 있을까?


  옛날에 양치기 소년이 살고 있었는데 마을에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전염되었다.

소년은 약을 구하러 깊은 산으로 들어가 헤매다가 힘이 들어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한 요정이 나타나 약초를 주었고, 소년은 이 약초로 사람들을 구했다.

후에 소년이 다른 소녀와 결혼하자 소년을 좋아했던 요정은 너무나 슬픈 나머지 매일 울다가 죽고 말았다. 신이 이를 불쌍히 여겨 꽃으로 피어나게 한 것이 '솔체꽃'이라고 한다.

그래서 꽃말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용늪은 고층습지로 1년 중 5개월이 영하의 기온을 보여 泥炭濕地가 발달되었는데 세계적으로도 드물어 생태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이탄습지는 낮은 온도로 인해 죽은 식물들이 미생물 분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쌓여 만들어진 이탄층이 존재하는 습지를 말한다.

용늪에서는 1년에 이탄층이 1mm쯤 쌓인단다.

그래서 평균 1m, 최고 깊은 곳은 1.8m에 이른다고.

실수로 빠지면 용이 발목을 잡아당겨 못 빠져나올 수도 있으니 정해진 곳으로만 조심조심 이동해야겠군.

이 이탄층이 무려 4000~ 4500년 전부터 쌓인 곳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그런 귀한 곳을 잘 모르고 한동안 방치하는 바람에 작은용늪은 숲으로 변했다고 하니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