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처음 만난 봉암사 (2)

솔뫼들 2018. 6. 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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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오전 8시 25분 드디어 일주문에 도착했습니다.

걷는다고 했을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2km니 4km니 하고 겁을 주더니만 거리가 꽤 되네요.

4km 가까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서둘러 걷느라 땀을 뻘뻘 흘렸네요.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5년 지증국사가 창건한 고찰로 고려 태조 18년 정진국사가 중창한 이후 선원으로 맥을 이어온 사찰입니다.

봉암사는 구산선문 가운데 희양산파의 주봉이 되어 흐름을 이어온 사찰로서 1947년 해방 직후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상황에서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흐름을 창출할  결사를 하게 되는데 성철 스님의 주도하에 청담, 자운, 우봉 등이 무슨 일이 있든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뜻을 모았다고 하는군요.

이른바  유명한 '봉암사 결사'입니다.

그 후 20人이 참여해 수행의 근간을 세웠는데  6.25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중단되었다가 1982년 조계종에서 특별수도원으로 지정해 수행도량으로서 분위기를 조성해 줌으로써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친구가 셔틀버스로 올라간 친구들을 찾으니 바로 일주문 주변에서 쉬고 있습니다.

그들과 만나 봉암사를 향해 오릅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내려오는 사람들도 제법 되는군요.

근처에 사는 불자들이 새벽 예불을 드리고 공양을 하곤 내려가는 모양이지요.


저는 이번에 봉암사를 처음 방문하는 건데 친구는 몇 년 전에 왔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험상 일찍 출발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고요.

다른 두 친구들도 저처럼 초행이랍니다.

친구가 이끄는 대로 먼저 마애불을 찾아 올라갑니다.

벌써 줄을 서다시피 오르는군요.

해마다 찾는 사람들도 있는지 많이 알려졌나 봅니다.



 마애불에 오르는 길은 산길입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나무 뿌리며 길이 미끄럽습니다.

앞서 가던 사람 한 명이 살짝 미끄러졌습니다.

물기 있는 나무뿌리를 밟은 모양입니다.

조심해야겠군요.


 10분 남짓 걸어 마애불에 도착했습니다.

봉암사 마애불은 높이 4.5m, 폭 4.4m의 비교적 규모가 큰 마애불로 17C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환적 의천 선사의 願佛이라고 하네요.

願佛이 무언가 싶어 찾아 보니 '개인적으로 사사로이 모셔 놓고 소원을 비는 부처'라고 나와 있습니다.

규모도 규모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드물어서인지 보존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시대적으로 엄청나게 앞선 시대는 아니지만 전혀 마모되지 않고 선명하게 새겨진 대로 모습을 유지하고 있군요.

저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됩니다.


김해 구산동 산 57번지의
도 유형문화재 제186호 마애불 찾아
힘겨운 산행을 한다

숨 가쁘게 정상을 다 올라와서야
암벽 면을 다듬어 선각된
연화 좌에 아미타부처
자태를 드러낸다

청태 낀 어깨 위에
커다랗게 늘어진 귀
세상 온갖 풍상 다 듣고자 함인가

바람을 끼고 흐르는 계곡 물소리
나무와 숲이 하늘을 이고
억겁을 쌓아 가는 듯 신비가 흐른다

인적이 드물어 재만 남은 향로에
향을 피우고 합장하노라니
적막이 나를 에워싸고 우주를 연다

 이현주의  < 마애불 > 전문


 마애불을 지긋이 바라보다 주변 다른 바위들에 눈을 줍니다.
엄청난 바위들이 너럭바위에 버티고 제각각의 형상으로 서 있네요.
어린아이처럼 숨바꼭질을 하게 생긴 바위도 있고, 두 바위가 만나 문을 만든 경우도 있고, 사람들이 정성껏 쌓아 놓은 돌탑도 보이고...

 사진 몇 장 찍고 주변 경치 구경하는데 일행 중 한 친구가 작은 웅덩이에 미끄러져 주저앉았습니다.
이끼가  낀 걸 미처 발견하지 못 했나 봅니다.
겉옷에 이끼가 묻고 왕창 젖었군요.
손을 잡아 일으켜세워 주면서 웃음이 나기는 하는데 미끄러진 사람 생각해 대놓고 웃을 수는 없었지요.
젊은 친구 말에 의하면 그 친구가 미끄러지는 걸 본 어떤 사람이 잘 참고 있다가 우리가 시선을 돌렸을 때 혼자서 킥킥거리며 웃더라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도 한바탕 웃었지요.


 하기는 어쩌다 제가 산에서 넘어지거나 미끄러져도 많이 다친게 아니라면 아픈 것보다는 창피해서 얼른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다 그렇지요.
심하게 다친 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 넘어진게 재미있기는 합니다.
두고두고 할 이야깃거리 하나 만든 셈이지요.

친구는 미끄러진 친구의 겉옷을 벗겨 계곡물에 대충 빨고 물기를 털어냈습니다.
날씨가 많이 풀렸으니 들고 다니다 보면 마르겠지요.
한참 소란을 떨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불경을 읽고 계신 분이 근처에 계셨네요.
얼마나 죄송한지...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물은 그대로 떠마셔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맑군요.
가만히 계곡물을 바라보니 올챙이가 꼬리를 흔들며 좋아라 합니다.
평소에 구경하기 힘든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까요?
조금 큰 녀석은 등에 개구리 무늬가 선명하군요.
동요에서처럼 '뒷다리가 쏘옥' 나왔는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산중이 깊어서 다른 곳보다는 좀 늦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신발을 걷고 계곡에서 왔다갔다 하네요.
계곡이 얕고 물이 맑아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절로 바로 내려가는 길이 계곡을 건너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덕분에 濯足을 하겠구나 싶어 머뭇거림 없이 신발을 벗어 들었습니다.
종아리까지 물이 올라옵니다.
생각보다 물이 차고 꽤 깊네요.
가장 젊은 친구는 신발 벗고 계곡에 들어왔다가 얼른 다시 나가서는 바지를 더 걷어 올립니다.
후후!



 발에 물기를 닦아내고 있는데 바로 위쪽 바위에 스님 한 분이 앉아 계시군요.
혼자서 무얼 하시나 싶었는데 친구 말이 산에서 내려오는 산꾼 막으려는 목적 같다고 하는군요.
어차피 오늘 일반인에게 개방을 하는데 좀 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듭니다.
그 스님 혼자서 종일 앉아 계시려면 심심하겠다 하니 친구 왈,
"다양한 사람들 쳐다보고 있으니 심심할 일 없지." 하는군요.
하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있고, 계곡에서 아예 재미있게 노는 사람도 있고, 연인끼리 즐기는 사람도 있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게다가 싫증이 날 만하면 무대는 같은데 등장인물이 바뀌니까요.
우리도 이제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