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청양 장승공원에서

솔뫼들 2017. 8. 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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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차를 타고 열기를 식힌 후 천천히 움직입니다.

내려가다 보니 오른편으로 장승공원이 있군요.

일부러 찾지는 않겠지만 가는 길에 있으니 한번 둘러보아야지요.

 

  개인적으로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승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고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해학적인 표정이며 짓궂은 악동 같은 자세며...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장승을 여기저기 많이 세워 놓습니다.

서울둘레길 관악산 구간에도 그곳의 쓰러진 나무를 이용해 장승과 솟대를 만들어 놓았지요.

오가며 여러 번 보았지만 그때마다 미소가 지어지곤 합니다.

 

 

  청양은 한국 최고의 장승문화 보존지역이라고 합니다.

무려 100년 전부터 장승제를 지냈다고 하네요.

전통 장승에 대한 애착이 많은 곳인가 봅니다.

 

  선배는 차에 그냥 남아 있겠다고 해서 혼자 장승 사이를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장승과 눈을 맞추어 보기도 합니다.

한국 최대 10m짜리 장승도 보이네요.

정말 고개를 꺾어가며 올려다보아야 합니다.

 

 선배 말에 따르면 전에 왔을 때는 이 정도로 많지 않았다더군요.

근처에서 한 사람이 장승을 깎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답니다.

그런 정성이 모여 이렇게 장승공원이 만들어진 것이군요.

모양이 참 다양하기도 합니다.

 

 

 장승에 새겨진 문구도 재미있습니다.

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문구도 있고,

메르스 퇴치에 관한 문구도 있고,

풍년을 기워하는 문구도 있고,

물론 청양의 발전을 바라는 문구도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 장승도 보입니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해도 이렇게 장승을 만드는 문화는 참으로 대동소이합니다.

전설이나 장승이 비슷비슷하니 지구촌 사람들이 생각하고 바라는 것이 다 보편적인 것 아닌가 싶네요.

 

 

 

 장승 사이에 금줄을 띠워 놓은 것도 보입니다.

오래 전 아이들 낳은 집에 부정한 기운이 들어오지 못 하도록 고추와 숯 등을 새끼에 끼워 매달아 놓은 것이지요.

아마도 우리가 태어났을 시절에도 그런 풍습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금줄이 새삼스럽게 여겨지는 걸 보니 지난 세기 일이어서 그럴까요?
아니면 정말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아니 사람들 마음 때문일까요?

요즘 아이들은 책에서나 보는 이야기이겠지요.

바로 전 세대 부모들이 살던 시대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혼자서 이쪽저쪽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차에 있던 선배가 심심하니 나왔군요.

다산을 기원하는 장승을 보고는 둘이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립니다.

풍만한 여인을 표현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습니다.

농업시대 농사 지을 일꾼을 위해서 다산을 빌었을텐데 인구가 줄어 걱정인 우리나라에 지금 딱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물론 그런 장승을 세웠다고 아이들 숫자가 늘어날 리 만무이겠지만요.

 

 

 

  선배와 걷다가 또 한번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두 개의 장승이 나란히 서 있는데 씌어 있는 문구가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 아따, 잘 왔다."

" 정말 그려."

충청도 사투리로 써 놓은 모양인데 요즘은 그런 말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더운 날 씨익 웃음짓게 만드는 것만으로 그 역할을 다한 것 같군요.

 

 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늘 비어서 슬픔의 하중을 받던 곳

 그 쪽으로 죽음의 방향을 정하고서야

 꽉 움켜 잡았던 흙을 놓는다

 

새들도 마지막엔 땅으로 내려온다

죽을줄 아는 새들은 땅으로 내려온다

새처럼 죽기 위하여 내려온다

허공에 떴던 삶을 다 데리고 내려온다

종종거리다가

입술을 대고  싶은 슬픈 땅을 찾는다

 

죽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서 있다

아름다운 듯 서 있다

참을 수 없는 무게를 들고

정신의 땀을 흘리고 있다.

 

 최문자 시 < 닿고 싶은 곳 > 전문

 

 

  역시나 덥습니다.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차에 오릅니다.

꼭 어디를 가겠다는 생각 없이 차가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