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여수 갯가길 1코스를 걸으며; 무술목에서 우두리항까지 (5)

솔뫼들 2017. 3. 27. 11:18
728x90

 

 다시  포장도로로 내려선다.

여기는 산길이 아닌데도 엉망진창이다.

사방 호텔과 리조트 신축중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공사 자재로 길이 막히고 차량으로 뒤죽박죽이네.

조만간 돌산도 지도가 바뀔 것 같군.

 

 신추를 지났다.

도로를 따라 걷고 있는데 돌에 갯가길 1코스 표시와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혹시 여기가 종점 아니 거꾸로 시작점 아닐까 싶었더니만 친구 말이 아직도 멀었단다.

하기는 돌산공원을 지나게 되어 있다고 했지.

허탈해 하며 바라보는데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운지 흰둥이 한 마리가 짖지도 않고 나를 바라본다.

 

 

 길은 다시 언덕으로 올라간다.

영락없는 달동네 모습이 이어진다.

금세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담벼락에 거북이 표시가 그려져 있다.

간간이 빈 집도 있는 모양이다.

해상 케이블카가 오가는 모습도 보이고 돌산대교와 거북선대교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보니 여기도 무언가 들어서지 않을까.

 

 지붕 낮은 마을을 지나 산길로 접어든다.

또 한번도 쉬지 않고 걸었군.

숨 좀 돌리자며 양지 바른 곳을 찾아 앉는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는 끝이 보이지 않는가.

 

바람이 몹시 부는 날

지붕이 비슷비슷한 골목을 걷다가

흰 비닐에 덮여 있는

둥근 지붕 한 채를 보았습니다.

 

새가 떨고 있었습니다.

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다가

날개를 접고 추락한 작은 새가

바람에 떠밀려가지 않으려고

흰 비닐을 움켜쥔 채

조약돌처럼 울고 있었습니다.

 

네모난 옥상들 사이에서

조그맣게 웅크린

우는 발로 견디는

둥근 지붕.

 

 박형준의 < 지붕 > 전문

 

 

 주변을 살피니 바로 옆에 팔손이가 보인다.

작년 이맘때 한려수도 바다백리길 비진도 산호길에서 만난 녀석이다.

이파리가 여덟개로 갈라져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했지.

이름과 모양을 기억하기 어렵지 않은 식물이다.

비진도가 자생지인데 자생지에는 무성하게 팔손이가 우거졌던 기억이 난다.

 

 

 다시 몸을 일으켠다.

그런데 정말 걷기 싫다.

산길을 따라 걷는 길이 이어진다.

바다 위로 국내 유일의 해상 케이블카라고 자랑하는 케이블카가 오간다.

돌산공원에서 건너편 자산공원까지 운영을 하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꽤 타고 있다.

바다 아래쪽에 그리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닌데 쉽게 돌산공원까지 가려는 목적인가,

아니면 바다 위를 케이블카를 타고 지나간다는 기분 때문일까?

 

 사실 케이블카를 타고 보는 풍광은 뭐니뭐니 해도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 아닐까 싶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는 케이블카라고 했었지.

케이블카를 타겠다고 줄을 서 있다가 시간이 아까워 걸어서 미륵산을 올라가는 바람에 미륵산 케이블카를 못 타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설악산과 지리산을 품고 있는 지자체들은 케이블카만 설치하면 떼돈을 벌 거라고 착각을 하는지 그 계획을 추진하느라 머리를 쓴다.

돈만 들이고 나중에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을텐데...

 

 

 이 길은 돌산공원으로 이어진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사람들과 차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로 돌산공원은 붐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올라온 사람이며 셀카봉을 이용해 사진을 찍는 연인들이며 모두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런 중에 지치고 늘어진 우리는 이방인같이 생뚱맞아 보이겠는걸.

 

 피곤해서 돌산공원을 돌아볼 엄두도 안 난다.

발바닥도 신음을 하고, 무릎도 투덜거리고,  어깨도 아프다.

아니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버린 것 같다.

그냥 안내리본을 따라 돌산공원 안을 지나 내려간다.

 

 

 이번에는 도로를 건넌다.

언제부터인가 친구가 앞장서고 있다.

순간 속도는 내가 빠르지만 나보다 지구력도 좋고 체력도 좋으니 그렇겠지.

 

 스마트폰 앱은 이제 도로에서 내려서서 항구로 들어서란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나도 모르게 주저앉을 것만 같다.

에이구, 이게 무슨 사서 하는 고생이람.

 

 

 오후 4시 25분, 친구가 서 있는 곳으로 가니 갯가길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가 1코스 시작지점이군.

뿌듯하기보다는 화가 난다.

총 23km 7시간 걸린다고 나와 있다.

그렇게 속보로 걸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다.

완전히 안내판에 속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런 길은 그렇게 속보로 걸을 일도 아니지만 반 이상이 산길인데 어떻게 그렇게 걸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오늘 총 6시간쯤 걸었다.

어제 걸은 노독에 오늘 걸은 것까지 합쳐져 몸이 파김치가 되었다.

그나마 어제 무술목에서 진모까지 거리를 줄였으니 오늘 여기까지 큰 무리 없이 걸은 것 같다.

아니면 오후 6시쯤 어두워질 때까지 걸어야 했겠지.

 

 항구에는 곳곳으로 가는 배와 유람선이 정박해 있다.

평일이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지는 않지만 유람선을 보면 일단 기분이 가벼워진다.

그냥 앞에 보이는 유람선을 타고 섬 사이나 누비며 경치 구경을 할 걸 그랬나?

걷기 위해 여기까지 내려오고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그래도 오늘 할 일을 마쳤으니 홀가분하다.

친구는 멀지 않으니 숙소까지 걸어서 가자고 한다.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나 걷는 시간이나 비슷하기는 하겠군.

 

 도보여행을 다니면서 늘 드는 생각이 대중교통망이 너무 안 좋다는 것이다.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오겠지만 아무리 도로를 새로 만들어도 사람들이 개인 차량만 이용한다면 길은 늘 부족하리라.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아깝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 도보여행을 할 때마다 불만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도 내가 선택한 것인걸.

 

 도로로 올라서 돌산대교로 들어섰다.

오가는 차량들의 소음으로 귀가 멍멍하다.

돌산대교와 거북선대교 사이에 있는 작은 섬인 장군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은데 섬을 따라 조명을 설치해 놓았다.

밤이 되면 환하게 불을 밝혀 사람들을 불러 모으겠지.

 

 

 다리가 꽤 길게 느껴져서 앞만 보고 걷는다.

적어도 1km는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 걷고 보니 500m란다.

축축 늘어지는 몸으로 걸으니 500m가 1km로 느껴진 것이군.

생체시계가 엉망이 된 것이다.

 

 바다쪽으로 쭈욱 하모 음식점이 들어섰다.

갯장어 음식점 거리인 모양이다.

점심을 늦게 먹어 아직 밥 생각도 없고 친구가 장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통과.

여수는 여러 가지 먹을거리가 풍부하니 취향에 맞는 걸 고르면 되지.

 

 일단 숙소에 짐부터 풀자.

배낭만 없어도 몸이 얼마나 날아갈 것 같던가.

온갖 차량들이 뒤섞이는 거리를 걸어 어제 묵었던 숙소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