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하던 고대산에 눈은 없고...
* 아침 일찍 서둘러 도봉산역으로 향한다.
날씨가 매섭게 추운데도 산꾼들은 꾸역꾸역 전철역으로 모인다.
정말 누가 시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
* 도봉산역에서 8년 전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함께 한 HSBC 고상무님과 고문님을 만나 전철에 오른다.
그리고 동두천역에서 꼬마열차로 갈아타고 신탄리역으로 향한다.
* 고상무님은 고대산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렇게 열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
* 열차에서 차창을 통해 주변 풍경을 감상하는데 어라! 서울보다 더 눈이 없네그려.
이게 무슨 일이람?
북쪽이니 당연히 눈이 많으려니 했더니만 실망이다.
( 한탄강 사진)
* 신탄리역에 내려 고대산 들머리를 향해 걷는다.
신탄리역 주변도 그렇고 들머리로 이동하는 길 주변도 그렇고 연천군에서 고대산 등산객을 겨냥해 신경을 많이 썼다.
이정표는 물론이고 볼거리, 먹을거리 홍보에 열심이군.
* 주차장에 도착 후 산행 준비를 한다.
눈은 없어도 영하 10도를 훌쩍 넘는 기온에 당연히 길은 얼었을 터.
볼을 에는 바람에 버프와 모자, 고글까지 하나하나 잘 챙긴다.
물론 스틱도 필수이고.
* 늘 그렇듯 우리는 2코스로 올라가 3코스로 내려온다.
올라가는 길 옆에는 글램핑 시설이 들어서 있고 그 위에는 자연휴양림 조성도 한창이다.
이 주변에 그다지 볼거리가 없는데 이런 시설들이 제대로 운영될까?
지자체장의 과도한 치적 쌓기 욕심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기우이면 좋겠지만...
* 전보다 산꾼은 그리 많지 않다.
날씨 탓인지 아니면 고대산에 눈이 많지 않다는 정보를 입수했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밀리지 않고 갈 수 있겠군.
* 처음부터 급격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눈이 없어 바위가 드러난 고대산을 가는 것도 드문 일이다.
도리어 먼지가 풀풀 난다.
* 바람이 그다지 세지 않아서인지 등에 땀이 난다.
여기는 서울보다 더 추운데다 계속 올라가고 있으니 기온이 섭씨 영하 15도 가까이 될텐데 옷을 벗을 수는 없고 모자만 귀마개로 바꾸어 한다.
* 어느 정도 오르막길을 올랐다 싶어 잠깐 쉬어 가기로 한다.
스프와 간식으로 배를 채운다.
하기는 새벽에 나왔으니 먹은게 벌써 다 소화가 되기는 했다.
* 등에 땀이 식을 무렵 다시 배낭을 메고 걷는다.
능선을 따라 걷다 보니 위쪽에는 생각보다 눈이 많다.
아니 얼음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기도 하다.
* 그런데 칼바위 전망대는 왜 이리 멀지?
내 컨디션이 안 좋아 그런지 오늘 유난히 고대산이 힘에 부친다.
살짝 언 바닥, 그리고 바위, 그 옆으로는 낭떠러지...
마음을 놓을 겨를이 없군.
* 전망대에 사람이 많이 고상무님 사진 한장 찍어주고 다시 걷는다.
막판에 다시 오르막길이지.
1코스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바닥에 눈이 많지 않아도 겨울은 겨울이니 허옇게 겨울임을 보여주는 주변 산들의 마루금이 반갑다.
그래, 이 맛이야!
* 정상이 가까워올수록 바람이 거세진다.
정상 가기 전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고대정에는 사람들이 꽤 많다.
1코스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2코스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만나는 지점이라 그렇겠지.
* 기념사진 하나 찍고 점심 먹을 자리를 찾으며 걷는다.
인원이 3명이니 그리 넓은 자리가 아니어도 되지만 가능하면 바람을 피하는 것이 좋겠지.
길 옆에 자리를 잡고 고문님께서 가져오신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간다.
순간 아늑하다.
* 치이익~
버너에서 물이 끓고, 라면과 어묵에 떡, 그리고 계란까지 준비한 재료를 모두 넣는다.
이 정도면 영양라면이네그려.
* 참 열심히 먹는다.
늘 그렇지만 산행의 운동량보다 산행중 그리고 산행 후 뒤풀이에서 먹는 것이 훨씬 많으리라.
하지만 먹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 점심을 먹고 밖을 보니 눈이 펑펑 쏟아진다.
눈이 많지 않아 실망했는데 눈을 맞으며 산행을 할 수 있는 행운이 있구만.
* 자리를 정리하고 고대봉에 오른다.
정상에는 사람들이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사방이 뿌옇고, 하얗다.
손도, 발도 시리다.
확실한 겨울이다.
* 우리도 사진 몇 장 찍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이번에는 아이젠까지 제대로 하고서.
늘 내려가는 길에는 복병 같은 얼음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으리라.
* 온 몸을 뒤집어쓰는 복장으로 걷는 사람도 있지만
날씨가 추워서 내리는 눈은 툭툭 털어버리면 된다.
그렇게 많은 양이 아니니 즐기면 되지.
* 급경사 내리막길에 정신이 없다.
한동안 앞만 보고 내려가다 뒤돌아보니 고문님과 고상무님이 안 보인다.
두 분 다 베테랑이니 어련히 알아서 잘 오시겠지만 잠깐 기다리기로 한다.
* 한동안 기다려서 두 분을 만났다.
무슨 일이 있으셨느냐고 하니 열심히 내려왔단다.
또 내 발이 너무 부지런했군.
* 급경사길을 지나니 발 밑에 아이젠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그럼 벗어야겠지.
얼른 아이젠을 벗고 나니 쇠추를 단 것 같던 발이 날아갈 것 같다.
* 이제 경사가 심하지 않으니 마음이 가볍다.
고대산은 그리 높고 험한 산이 아닌데도 깊다는 느낌이 든다.
겨울 가뭄으로 바싹 마른 계곡에는 약간의 얼음밖에 없다.
몇 년째 비슷한 풍경이다.
정말 기후 변화를 확실하게 느낀다니까.
* 범바위, 표범폭포..
모양새가 그렇기 때문일까?
물이 없으면 폭포가 아니지.
* 그래도 내려가다 나오는 약수터에는 물이 나온다.
이곳 물은 정말 산삼 썩은 물일게다.
그렇게 알고 마시면 효과가 있겠지.
물을 한 바가지 받아서 마시자 따뜻한 기운이 올라온다.
겨울에는 땅속에서 나오는 물이 따듯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원리이다.
씨익 웃으면서 물통을 가득 채운다.
* 뛰다시피 다 내려왔다.
그래도 오후 3시 38분 열차를 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5시 8분 열차를 타자고 하면서 두 분이 늑장을 부리시네.
워낙 멀어서 일단 여기에서 나가면 좋겠는데...
하는 수 없지.
* 남는 시간을 어디에서 보낼까 하다가 욕쟁이 할머니한테는 한번 질렸으니 소박한 두부집으로 들어간다.
수수부꾸미와 생두부 한 접시 시켜 놓고 마시는 막걸리.
밖에는 여전히 흩날리는 눈발,
달콤한 부꾸미의 맛과 뜨끈하고 구수한 두부가 더해져 시간을 잘도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