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예산 추사 생가에서

솔뫼들 2017. 1. 2.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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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 형!

 

 올해가 가기 전에 어디론가 훌쩍 차를 몰고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수덕사 생각이 났습니다.

만공 스님에 얽힌 이야기며 일엽 스님에 얽힌 이야기 등등을 떠올리며 예산으로 차를 달렸습니다.

 

 평일이라서인지 도로는 그다지 붐비지 않았습니다.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사방을 채우고 있어서 바다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바다 한가운데 만들어진 행담도 휴게소에서 쉬어가는 여유도 부려 보았고요.

 

 굳이 빨리 갈 이유도 없었지요.

재촉하는 사람도 없고, 따라오는 사람도 없으니 말입니다.

 

예산으로 들어서서는 관광지도를 한 장 구했습니다.

먼저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추사 생가를 점 찍었지요.

그러고 보고 최근 추사박물관을 방문한 것까지 해서 의도적으로 추사를 가까이 하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추사가 우리 역사에서 특별한 분인 것은 맞지만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다행히 추사기념관은 문을 열었네요.

반가웠습니다.

가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을 닫은  문학관이나 박물관 때문에 속상한 적이 많거든요.

물론 추사박물관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것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추사 기념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와서 추사의 생가로 발길을 옮깁니다.

꽤 넓군요.

하기는 추사의 증조부가 월성위였다지요.

생각보다 보존이 잘 되어 있어서 보는 이가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당에는 추사가 만들었다는 해시계도 있네요.

그러니 추사는 지금으로 치면 만능 재주꾼일 겁니다.

서예와 그림 그리고 금석학, 거기에 이런 과학적 지식까지 있었으니 말입니다.

재주가 너무 많아서 그리 고생스럽게 귀양살이를 했는지도 모르지요.

물론 그 시간을 통해서 '겸허'라는 값진 보물을 얻었지만요.

 

 

추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의 홍문도 근처에 있습니다.

남편이 39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화순옹주는 곡기를 끊어 14일만에 남편을 따라갔다고 합니다.

영조는 아버지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고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는데 정조가 홍문을 내렸다지요.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었을테니 조선시대 유교 윤리를 따른 것 아니었을까 싶네요.

하지만 아무리 임금이라도 딸의 죽음 앞에 애끓는 심정이야 어찌 하겠습니까.

父性은 어쩔 수 없겠지요.

 

 

 이제 발길을 白松공원으로 옮깁니다.

우리나라에는 오래된 백송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중국이 원산인 백송은 줄기가 하얘서 신비로워 보이지요.

이곳 백송은 추사가 중국에 가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지요.

백송은 서울 통의동에도, 헌법재판소, 그리고 조계사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요.

통의동 추사의 집 근처에 있던 백송은 1990년 태풍에 갑작스레 넘어져  지금은 흔적만 있습니다.

 

 여기는 백송 묘목들을 심었는지 아직 줄기가 흰빛을 띠지 않는군요.

40년이 지나야 수피가 하얘진다고 하니 말입니다.

세월이 흘러 이 나무들의 수피가 흰 빛을 띨 때쯤이면 장관을 이룰 것 같습니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야산 너머에 있는 화암사에 들러보기로 합니다.

화암사에 추사가 새긴 암각이 있다고 해서 말입니다.

동네를 빙 돌아 갑니다.

길이 아주 좁군요.

동네 개들이 낯선 차를 보고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조금은 미안해지네요.

 

 화암사는 아주 작은 절입니다.

백제시대 창건한 절로 화순옹주의 남편인 월성위 김한신이 재건하고 중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추사가 더 자주 드나들었는지도 모르지요.

절 뒤꼍에 있는 바위에서 추사의 글씨를 발견했습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다행히 보존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추사 덕분에 화암사까지 둘러보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