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에서 (1)
느지막이 일어나 다행히 음식 종류가 다양한 조식 뷔페에서 이것저것 많이 찾아 먹었다.
향이 강한 중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거기에 대비해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두자면서.
약속시간에 식당에 안 오기에 종률씨는 이미 아침을 먹고 주변 산책중이리라 생각했는데
늦잠을 잤단다.
술기운이었군.
김사장님은 어제 산행이 힘에 부쳐 고단한 기색이 역력하시다.
저희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군요.
아침을 먹고 시간 여유가 있어 호텔 앞에 나가 시내 구경을 한다.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여기도 차량이 많고 무척이나 복잡하다.
차량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각국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하기는 수입차도 있지만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이 중국에 공장을 가지고 있으니
현지 생산된 차량이겠지.
현대자동차만 해도 꼬리 부분에 중국에서 생산된 자동차임을 밝히며 달리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은 스케줄을 간단히 해서 여유있게 하얼빈에서 놀다가 김사장님 거주하시는 따칭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오전 10시, 하얼빈역에 있다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찾아간다.
막 기념관 앞에 도착했는데 문을 열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김사장님께서 어딘가로 전화를 하시더니만 씁쓸한 표정을 지으신다.
사드 문제로 중국 정부에서 폐쇄를 했는데 언제 문을 열지는 알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나중에 들으니 현지 파견된 기자한테 물어보셨단다.
그런 문제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 보면 중국이 땅덩어리는 크지만 진정한 大國이 되기는 틀린 것 같다.
잠시 묵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자세로 입구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종률씨는 하얼빈에 다시 한번 오게 생겼다고 투덜거린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방문 목적으로 한번은 꼭 올 예정이었단다.
그래서 선뜻 어려운 휴가를 내고 왔는데 이렇게 헛걸음을 했으니...
전혀 예상 못한 사건 앞에서 망연히 서 있다가 발길을 옮긴다.
예전에는 표를 사 가지고 하얼빈역 안에 들어가서 거사 자리를 볼 수 있었단다.
열차를 타지 않아도 표를 사야 驛舍 안에 들여보낸다고.
혹시나 하얼빈역 안이라도 구경할까 싶어 기웃거리니 공항처럼 공안들이 지키고 있다.
여기가 사회주의 국가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작은 위로라고 한다면 올해 인기를 끈 드라마 때문에 중국에서도 유명한 배우 송중기가
중국 통신사 광고 모델로 하얼빈역 앞에 떡 버티고 있는 사진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 사람이 등장하는 광고나 우리나라 물건을 보면 슬며시 미소기 지어진다.
외국에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발길을 돌린다.
하얼빈은 관광도시가 아니라 그다지 갈 만한 데가 없다.
그나마 하얼빈에서 가장 높다는 드래곤타워로 향한다.
하얼빈이 헤이룽장성(흑룡강성)의 省都라서인지 용을 형상화한 타워이다.
대부분의 관광도시에 하나씩 있는 전망타워를 본딴 것이라 별다른 볼거리는 없다.
드래곤타워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씌어 있는데 역시나 큰 것 좋아하는 중국인의 허풍이었네.
최고 높이가 830m라는데 엘리베이터로 180m까지 오른 후 210m까지 걸어 올라가 하얼빈 시내 전경을 본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고 멀리 뵈는 쑹화강이 눈길을 끈다.
박경리 소설 '토지' 같이 근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 속에서 많이 접한 강이라서인지 웬지 친근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중국 동북지방은 漢族이 살던 곳이 아니라 소수민족이 농사를 지으며 살던 곳이다.
그 소수 민속 속에 우리 민족도 끼어 있고.
근대 이곳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황무지를 개간하며 힘겹게 삶을 꾸려간 이야기는 책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다.
어디를 가나 끈기와 성실함으로 인정 받는 우리 민족 아닌가.
계단을 통해 차례차례 올라가며 돌아보고 전망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려니 음식을 주문하지 않으면 불가하단다.
저녁시간도 아닌데 참 까다롭기도 하다.
미련없이 발길을 돌린다.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갈 시간이다.
한 일도 없는데 점심을 먹으려니 조금 민망하네.
아침을 많이 먹어서인지 시장하지도 않은데...
오늘 점심은 한식으로 먹기로 하고 '서래 갈매기'라는 곳으로 향한다.
'서래 갈매기'는 한국에도 여러 곳에 있는 체인점인데 사람들은 주로 고기를 먹는 모양이다.
우리는 순두부와 된장찌개, 돌솥비빔밥으로 골고루 시켜 점심을 먹는다.
여기는 한국 식당인데도 한국말을 하는 종업원이 한 명도 없다.
메뉴판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판인데 김사장님께서 유창하게 중국말로 김치전까지 시키신다.
김사장님은 외모도 그렇고, 중국어 실력도 그렇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는 중국 사람이다.
덕분에 우리는 중국말 한 마디 몰라도 편하게 중국 여행중이고.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는데 누가 식당 안에서 따라 나와서는 한국 사람 아니냐고 묻는다.
음식점 주인인가 싶었더니만 사업상 하얼빈에 왔는데 이것저것 정보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흑룡강성 퉁화에 인삼을 심고 조청공장을 짓기로 市와 협의가 되었는데 어차피 거주를 해야 하니
음식점을 할까 궁리중이란다.
이곳 상황이 어떤지 알고 싶은게지.
하얼빈에 '서라벌'이라는 한국 음식점이 4개나 있었는데 3곳이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김사장님은 경기가 안 좋아 음식점이 생각보다 안 되는 모양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김사장님께서 한국의 은행 하얼빈 지점장 연락처를 알려주시며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하신다.
60 전후로 되어 보이는 부부의 인생 2막이 성공하기를 빈다.
그들과 헤어져 커피 한 잔 할 곳을 찾으니 눈에 띄지를 않네.
커피 추출하는 향으로 커피 전문점을 찾아내라는 김사장님 특명에 내 코를 벌름거리지만 실패다.
우리나라는 과장하면 한 집 건너 커피집인데 여기는 아직 차 문화가 지배적이라는 설명이다.
하기는 우리나라 커피 문화는 지나친 감이 있기는 하다.
그것도 유행이라고 한때는 어떤 커피집 잔을 들고 다니며 먹는 걸 세련되었다고 생각했으니...
김사장님이 내 코를 믿으신 모양인데 제 코는 개코가 아니거든요.
커피집을 찾다가 눈길이 어느 한 곳으로 갔다.
한국 물건을 파는 곳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다 진짜 한국 물건이라고 덧붙여 놓았다.
중국인들이 한국 상품은 신뢰를 한다는데
얼마나 가짜가 많으면 그런 말을 붙여 놓았을까?
하기는 우리나라 음식점이 서로 원조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경우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