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금수산에 가다 (2)

솔뫼들 2016. 6. 2.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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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바위에 앉아서 상큼, 발랄한 바람을 벗삼아 시원한 수박을 꺼내 먹는다.

살 것 같다.

요 며칠 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바람에 배낭은 온통 여름 준비물로 채웠다.

얼음물에 냉커피, 그리고 보냉재로 포장한 수박까지.

이렇게 여름이 일찍 와도 되는 건가?

 

땀이 식어 서늘해질 무렵 스마트폰에서 이곳 기온을 확인하니 섭씨 24도밖에 안 된다.

산과 물로 둘러싸여 있는데다가 열을 방출하는 자동차나 공장 등이 많지 않기 때문이겠지.

그런데도 이렇게 덥다고 느끼니 한여름 산행은 어쩐다?

공연히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갈 길이 멀다.

간간이 나오는 바위를 잡으면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계속 되는 오르막에 숨이 거칠어져도 청풍호를 거쳐온 바람이 한 자락 스쳐가면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걸을 힘을 얻는다.

이게 바로 자연의 힘 아니겠는가.

 

 

바야흐로 5월 하순, 녹음은 한결 그 색이 짙어졌다.

생각보다 참나무 종류가 많다.

참나무가 소나무와의 햇빛 쟁탈전에서 이겼다는 말이겠지.

덕분에 그늘이 많은 것도 고마운 일이다.

 

계단은 다 지났나 싶었는데 연이어 철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만듦으로써 바위 타는 재미와 금수산 풍경이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속도는 도리어 빨라졌네.

정말 한동안은 끊임없는 계단길이다.

멀리 보면 질리게 되므로 바로 발 아래만 보고 철계단을 올라간다.

이렇게 변한 금수산 모습을 보니 또 오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안전 때문이든 아니면 자연 보호 때문이든 지나친 시설물은 도리어 자연을 망치는 것 아닐까?

좀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철계단길을 지나 한참 이어진 숲길을 오르자 머리 위가 환하다.

망덕봉이 가까워졌다는 말이겠지.

안부에 이르니 몇 팀이 여기저기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하기는 벌써 오후 1시도 지났다.

 

 

오후 1시 20분, 갈림길에서 100m밖에 안 되니 망덕봉에 다녀가자 하고 망덕봉 (해발 926m)에 오른다.

널찍한 곳에 흘림체로 멋들어지게 망덕봉이라 쓰인 표지석이 있다.

고문님께서 그걸 보시고는 이렇게 높은 줄 몰랐다고 하신다.

그래서 힘든 거였구나 하시면서.

금수산 정상은 망덕봉보다 해발 100m 정도 높으니 고도는 거의 높인 셈이다.

 

망덕봉 한쪽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고문님께서는 맥주를 시원하게 해서 가져 오셨다.

밥을 먹기 전에 맥주로 목을 축이고 한숨을 돌린다.

나도 오늘은 유난히 힘들다.

정말 고도 때문인지 아니면 내 체력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여유있게 점심을 먹고 냉커피까지 마셨다.

옆자리에 단체로 온 사람들과 섞이기 전에 출발하자면서 정상을 향해 걷는다.

금수산 정상까지는 1.9km.

그런데 내리막길이 나오니 또 걱정이 앞선다.

그만큼 올라가야 한다는 말 아닌가.

 

녹색 그늘이 드리워진 능선길을 걷는다.

약간씩 오르락내리락이 있는데 뒤따라오시던 고문님께서 점심 먹고 바로 출발해서 힘들다고 하시네.

그럼 여기서 물 한 모금 마시며 또 한번 쉬어 주어야지.

그러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악어가 엎드린 모양의 바위가 눈 앞에 있다.

요것도 재미있네.

 

 

정상이 가까워올수록 사람들이 많다.

전에도 정상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섰던 기억이 난다.

정상이 보이는 곳에 올라섰다.

안개 때문에 희미하기는 하지만 발 아래 청풍호도 보이고 우리가 다녀온 망덕봉도 보인다.

살랑이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잠시 바람결을 느껴본다.

정말 무어라 표현할 길 없는 고마운 바람이다.

이건 정말 푸른 바람일세그려.

 

 

마지막에 긴장을 하라고 그러는지 줄을 잡고 낑낑대며 내려가니 이번에는 마지막 오르는 계단길이다.

정말 계단을 많이도 만들어 놓았군.

앞사람 발만 보면서 걸어 오후 2시 55분, 금수산 (해발 1016m)에 도착했다.

역시나 사람들이 많다.

다른 방향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있겠지.

사람들에게 부탁해 고문님과 사진을 찍고 잠시 전망대 한 쪽에 앉아 남은 맥주를 수박 안주 삼아 마신다.

더 늦게 마시면 운전하는데 지장이 있다고 하면서.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았다.

안내지도를 보니 상학주차장과 상천휴게소 갈림길까지 500m인데 무려 50분 걸린다고 나와 있다.

아니 아무리 험하다고 해도 그렇지 하산길인데 이게 말이 되나?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지나가는 사람은 얼마나 돌이 많기에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겁을 먹은 눈치이다.

어찌 되었든 그리로 내려가야 하니 본격적인 하산길로 접어든다.

 

처음에는 하산길이라기보다 옆으로 비스듬히 걷는 느낌이 든다.

흙도 약간씩 흘러내릴 것 같아 조심스럽고 간혹 나오는 바위도 방심하지 말라고 이르는 듯하다.

그래, 속도가 나기는 어려운 길 맞네.

 

 

그래도 주변은 둘러보아야지.

정상 부근에는 아직도 철쭉이 한창이다.

기온이 그만큼 낮다는 말이겠지.

연분홍 흐드러진 꽃과 녹음이 더해져 화사함 그 자체이다.

올해 다른 어느 산에서 본 철쭉보다 더 예쁘다.

몇 번 카메라에 담으며 발길을 옮긴다.

 

 

 

철쭉 핀 날

내 그림자

오히려 길어

 

이 세상

맞잡고 건너 뛸

사랑 하나

그리웠네.

 

정숙자의 < 철쭉 핀 날 >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