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산에 가다 (1)
그리 먼 거리도 아닌데 벼르고 별러 충북 제천과 단양에 걸쳐 있는 금수산에 가기로 했다.
사람이 적다고, 비가 온다고, 아니면 다른 이유로 미루던 금수산 산행을 이번에는 무조건 결행(?) 하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이번에도 고문님과 둘이 가게 되었다.
은퇴하신 후 생활리듬이 바뀐 고문님 시간에 맞추어 예정시간보다 30분 늦은 오전 7시 30분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 출발했다.
금수산 들머리 상천휴게소까지 2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오는데 믿어도 될까?
그러나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자마자 도로가 만원임을 확인하게 된다.
마음을 비우고 가야겠구나.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로에서 지쳤는지 많은 차들이 여주 휴게소에 들어가려고 줄을 섰다.
우리는 거기를 벗어나 일단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들어갔는데 다음 휴게소는 천등산휴게소로 한참을 가야 한단다.
그래도 시속 80km 정도 달릴 수 있으니 살 만하다.
평소에 잘 달리던 도로인데 여기도 이제 호시절이 끝났다는 얘기구만.
차에 타자마자 지난 밤 불면을 이야기하시며 주무시던 고문님께서 도대체 무얼 하러 사람들이 이렇게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남들은 우리 보고도 그렇게 이야기할텐데요.
천등산 휴게소는 평택제천 고속도로상에 있는데 규모가 작아서 사람들로 꽤 바글거린다.
대형버스 한 대만 들어오면 곳곳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는데 보기만 해도 질리게 되는군.
간단히 우동 한 그릇 먹고 차에서 커피를 챙겨 마신 후 얼른 다시 출발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도로가 밀려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그러면 상경하는 시간도 늦어진다는 얘기가 되니 마음이 바쁘다.
오전 10시 40분 상천휴게소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대형 버스가 두어 대 서 있고 승용차는 꽤 많다.
우리가 늦었으니 그렇겠지.
얼른 주차를 하고 오전 10시 45분 안내지도를 확인 후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도 꽤 덥겠는걸.
각오는 했지만 따끈따끈한 햇볕이 무섭게까지 느껴진다.
다녀간 지 오래 되어 오르는 길에 멋진 바위들이 줄지어 있던 기억과, 산이 깊어 계곡물이 좋았던 기억이 나는데...
錦繡山은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한 산으로 말 그대로 비단을 수 놓은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에 4번 다녀갔는데 마지막에 갔을 때는 망덕봉 코스가 막혀 바로 금수산 정상을 향해 오른 후 E.S리조트 방향으로 내려간 기억이 난다.
3월 말이었는데도 눈이 무릎까지 쌓여 있는 바람에 엉뚱한 길에서 헤맸었지.
마을을 지나 바로 들머리에 들어섰다.
찔레꽃 향기가 코를 찌르는 길에서 마음이 한결 느긋해진다.
모자를 쓰고,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스틱을 꺼내고...
단단히 준비를 하고 한 걸음 옮기는데 다행히 숲이 우거져 햇볕 때문에 고생을 하지는 않겠구나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좌회전해서 망덕봉 방향으로 오른다.
초반부터 심하지는 않지만 바위가 나온다.
계곡을 건너고 짧은 밧줄도 잡고...
그런데 고문님께서 인터넷을 보니 계단이 많더라고 한 마디 하신다.
전에는 온통 바위였는데, 그 바위를 타는 맛에 금수산에 오는 것이고...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니 용담폭포 전망대이다.
우렁차지는 않지만 쏟아져내리는 물소리가 들린다.
물을 보는 것만으로 시원함이 느껴져 더위가 가시는 것만 같다.
전에도 용담폭포가 있었을텐데 내 머리 속에는 없네.
최근 들어 부쩍 믿을 수 없는 것이 내 기억이기는 하지만 또 자동삭제된 모양이다.
한 가마니씩 쏟는
저 하얀 웃음
누가 저렇듯 웃을 수 있을까
산이 쪼개지듯 말입니다
한바탕 지르는
저 우렁찬 소리
누가 저렇게 소리를 지를 수 있을까
산이 흔들리듯 말입니다.
이진호의 < 폭포 > 전문
폭포를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다가 갈 길이 멀다 싶어 부지런히 발길을 옮긴다.
계속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숨이 턱턱 막힌다.
망덕봉까지 1.5km라는 이정표를 지나고 이제 꽤 왔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아직 500m밖에 안 왔단다.
맥이 탁 풀린다.
심리적인 내 거리가 잘못 된 건가?
아니면 이정표가 잘못 된 건가?
고문님께서는 수평거리를 표시해 놓은 것 같다고 투덜거리신다.
GPS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언제적인데 설마?
더군다나 국립공원인데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계속 오르막길에 힘이 들어서 그렇게 느껴질 거라고 여기며
가다 쉬다...
오늘 산행은 중모리 장단이다.
산길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산행 시작이 늦어서 다들 올라갔나 보다고 했더니만 뒤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단체 산꾼들이 몰려오는 모양이다.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선두로 나선 사람이 망덕봉까지 얼마나 남았느냐 내게 묻는다.
가다가 드디어 고문님께서 사진을 잃어버렸다고 애석해 하시던 개바위를 발견했다.
상천휴게소에 근무하던 국립공원 직원은 개바위가 아니고 코끼리바위 또는 독수리바위라고 부른다던데 내 눈에는 아무리 보아도 개바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영락없이 귀여운 개가 머리를 앞으로 쑥 내밀고 있는 형상이다.
이리저리 개바위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는 뒤에 오시는 고문님께 개바위가 나왔다고 말씀드렸다.
개바위를 찍으려고 오랜만에 카메라까지 가지고 오셨다는데 사진이 기대되네.
거리가 멀어서 최대한 줌을 이용해야 하니 생각처럼 사진이 잘 나오지는 않았었는데...
고문님께서 개바위 사진을 찍으시는 걸 보고 나는 다시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어디에서 좀 쉬었다 가야겠다.
목도 마르고,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주중에 피로가 쌓여서 그런지 힘이 든다.
적당한 바위를 찾아 그늘에 앉아서 고문님을 기다렸다.
한참이나 오시지 않아 전화를 하려던 찰나 고문님께서 올라오셨다.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느라 늦으셨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