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도봉산에서

솔뫼들 2016. 5. 27.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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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도봉산에 가기로 했다.

20대에 본격적인 산행을 도봉산에서 시작해서인지 도봉산이 내게 산행지로서는 고향 같은 느낌이 든다.

인원은 고문님과 단 둘이다.

난이도가 있으니 여러 명이면 속도도 느려지고 신경이 쓰이는데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겠군.

 

도봉산 입구 만남의 광장에서 커피까지 챙겨 마시고 천천히 산행 준비를 한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는 사람이 많아 보이더니만 생각보다 올라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연휴에 다들 어디로 놀러간 모양이지.

 

 오늘 코스는 은석암 방향으로 올라가 다락능선을 타다가 포대능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주능선을 타는 것이다.

도봉산의 멋진 바위는 다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지.

 

 

 오전 10시 5분,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스틱을 준비하고 천천히 걷는다.

오늘도 미세먼지가 '나쁨' 단계라고 하더니만 서울 시내는 뿌옇다.

산꾼은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산을 찾지만.

 

 초반에 한동안은 흙길이 이어진다.

준비운동 삼아 다리를 풀어주라는 뜻 아닌가 싶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바윗길이 나오기 시작하지만 늘 우회로는 있게 마련이지.

내가 바위를 좋아해서 바윗길을 골라 올라가고 있을 뿐.

 

 커다란 바위 하나 타고 나면 숨을 몰아쉬고,

고개 하나 넘고 나면 물 한 모금 마시고,

줄에 한 번 매달리고 나면 하늘 한번 올려다보고...

 

 고문님께서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 거기 어떻게 갔어요?" 하고 물으신다.

엄살도 그 정도면 수준급이시네요.

 

 

 마음을 비우고 걸어서인지 어느 새 다락능선에 올라섰다.

그쪽에서 오는 사람들과 합류가 되어서인지 산길에 사람들이 늘었다.

숲 한가운데 자리 잡은 망월사가 보인다.

공처럼 둥근 바위도 보이고 날카로워 위압적인 바위도 건너편에 보인다.

 

 철쭉이 소리 없이 피었다가 지는 산길을 따라 걷는다.

도봉산만 해도 산꾼들이 젊은 편이다.

험해서 그렇겠지만 적어도 한 해 한두 번은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말 다닐 수 있을 때 다녀야지.

 

 

 잠시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포대능선이 시작되는 지점에 도착했다.

포대가 있어서 포대능선이라 불리는 단순한 이름과 달리 포대능선은 늘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물론 기분 좋은 긴장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런 맛에 여기 오기는 하지만.

 

 멋들어진 위용을 자랑하는 선인봉과 자운봉, 만장봉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느라 바쁜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오랜만에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면서.

늘 변함없이 그곳에 서 있는 그런 봉우리들이 고맙다.

찾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산이든 강이든 고마운 일 아닌가.

 

 

 

 슬슬 팔 운동을 할 때가 되었군.

발로 딛기에 불편한 곳에서는 팔힘에 의지해 올라가는 거지.

덕분에 전신운동을 하는 것이고.

 

 그렇게 순간순간 긴장을 하며 오르다 보니 바로 코 앞이 신선대이다.

여기는 늘 그렇듯이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고문님께서 갈 거냐고 하신다.

여러 번 간 곳인데다가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야 하니 그대로 통과.

 

 

 주능선 Y계곡은 일방통행을 시키는 바람에 걷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전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밀려 기다리느라 서 있기 일쑤였는데 한쪽 방향으로만 진행이 되니 걸을 만하지.

창원에서 무박 산행을 왔다는 단체 산꾼들은 일방통행으로 못 간다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산에서 웬 일방통행이냐는 듯.

그러더니만 선인봉을 비롯한 삼형제봉을 보기 위해 잠깐 바위 위에라도 올라가야겠단다.

그런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발길을 옮긴다.

 

 

 

 가장 험난한 코스에서 사람들이 더 몰리기 전에 줄에 매달려야겠다 싶어서 서두르는데 몇몇이 어울려 온 서양 젊은이들이 다른 사람들이 쇠줄에 매달리는 걸 구경만 하고 있다.

엄두가 안 나고 무서워 그러는 걸까?

힐끗 쳐다보다가 얼른 내 차례가 와서 줄에 매달린다.

 

 이제 위험한 코스는 끝냈다 싶으니 갑자기 배가 고프다.

시간도 꽤 되었다.

전에는 칼바위 아래까지 갔었는데 이번에는 치마바위 아래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제는 그런 길을 갈 엄두도 못 내지만 20대에는 참 겁 없이 그런 바위에 매달렸구나.

 

오늘은 無酒山行이다.

바위산이라 그런 결정을 내리신게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점심을 먹고 여유있게 계단길을 몇 번 오르락내리락 하니 오봉능선으로 오르는 삼거리이다.

오봉은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그냥 칼바위 아래에서 하산을 하기로 한다.

늘 가던 거북암 방향이 아니라 관음암을 거쳐 마당바위로 가면 어떨까?

거북암 방향은 가장 짧은데 내려가는 길에 너덜이 이어진다.

경치 구경도 하면서 가기에는 마당바위 코스가 좋지.

 

 관음암으로 발길을 하니 우리가 자주 가던 아지트는 누군가가 이미 점령했다.

눈길을 끄는 바위 사진 몇 개 찍고 통과.

발 아래 紙燈이 매달린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당바위를 향해 간다.

 

 

 

 늘 그렇듯이 마당바위에는 사람들이 많다.

마당바위니까 널찍한 바위에 앉아 경치 구경하는 사람에, 뒤늦게 올라와 쉬는 사람에, 늦은 점심을 먹는 사람까지 더해 시끌벅적하다.

우리도 한쪽에 자리잡고 잠깐 쉰다.

점심을 먹은 후 한번도 안 쉬었다고 하면서.

 

 이제는 천축사를 향해 걷는다.

천축사 입구에 못 보던 일주문이 생겼네.

그래서 또 찰칵!

 

 

 도봉산장을 지나고 나니 자연보호를 위해 예전에 다니던 길을 폐쇄하고 계곡 오른편으로 길을 냈다.

내려가는 길에 계곡 물소리가 피로를 풀어준다.

다행히 올 봄에는 비가 적당히 내려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작년 여름에는 계곡에 물이 없어 발 한번 못 담근 것 같은데...

아직 濯足을 할 날씨는 아니지만 산에서 물소리는 늘 반갑지.

 

 오후 3시 30분, 드디어 하산을 완료했다.

둘이어서인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네.

상가들이 몰려 있는 거리 입구 구멍가게에서 맥주를 사서 계곡가 의자에 앉는다.

가져온 육포를 안주 삼아 경제적인 뒤풀이를 하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한다.

전철에서 졸 일만 남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