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오늘의 시 - 황사바람이 쓸 만하다

솔뫼들 2025. 5. 1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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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사 바람이 쓸 만하다

                               - 내가 걷는 백두대간 109

                                                이성부

 

철없는 봄눈 쌓여 산책길을 지워 버렸다

대낮인데도 해는 흐지부지 떠서

어디 아편 맞은 하늘처럼 온통 게슴츠레하다

황사 데불고 온 성난 바람이

나를 눈물콧물 흐르게 하고

산골짜기 모두 가려 먼 데를 볼 수 없다

동서남북 어디인지 가늠을 못하는데

내 안에 잠자던 도발끼가 파르르 눈을 뜬다

불확실성이야말로 나를 틔우는 첫번째 힘이다

몇 해 전이던가

이 등성이에서 꼭 이 무렵에

야간행군하던 젊은이들이 많이 죽었다

전쟁이 사라진 뒤 오십 년이 지났어도

적 없는 전쟁은 여기까지 올라와 사람들을 쓰러뜨렸다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 산 위에서도 적지 않아

그 사연들 더듬어 나도야 간다

지도와 나침반과 표지기를 좇아

이리저리 헤맨 지 네 시간여

민두름한 정수리 편편한 곳에 이르렀다

하늘도 세상도 모두 한통속인 찌푸림이어서

그 가운데 서성이는 내가 나도 두렵다

황사는 모래먼지 안개뿐이 아니라

저의 꿈도 보듬고 바다를 건너와서

쓸 만하게

나를 이토록 더 나아가게 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