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오늘의 시 - 고사리 꺾기

솔뫼들 2025. 4. 2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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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리 꺾기

                          - 제주도 기행 5

                                   나호열

 

맛은 없지만

밥상에 오르지 않으면 왠지 서운한

고사리 꺾으러 간다

새벽 해 뜨기 전이라야

찔레 덩굴 속이나 풀섶에 숨어 있는

고놈이 보인다는데

내 눈엔 그 풀이 그 풀 같다

대궁을 잘라도 여덟 번 아홉 번

순을 올린다는 오기가

나에게는없다

뽑히기를 평생 바랐으나

수많은 군중 속에 하나에 불과한 것이

행인가 불행인가

문득 이 세상 모든 나무의 시조가

바다에서 올라온 고사리라는 진화론의 한 구절이

전생을 스치고 지나는 순간

꼿꼿한 고사리들이 불쑥 돋아 올랐다

소도 말도 먹지 않는다는 고사리

나도 덤불 속에 몸을 숨겼다